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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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사는 지역에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레플리카展을 전시했고 다녀왔다. 페르메이르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북방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다. 그 작품은 1665년경에 그려졌고, 현재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작품을 보자마자 오래전 읽었던 트레이시 슈발리에의《진주 귀고리 소녀》를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읽고 있던 책들을 마무리한 뒤 바로 꺼내들었다.


이 책의 마지막을 덮은 후 여운이 길게 남았다. 그리고 뒤이어, 오래전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상이 궁금해져 찾아봤다. 이 책을 읽은 건 2010년으로 16년이 지난 뒤에 재독을 한 것이었는데 그때의 감상을 읽어보니 당시의 나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에 아는 것 하나 없는 상태로 읽었던 게 분명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레플리카展에서 보고 큐레이터로부터 듣고 찾아보고 이 책을 읽은 지금은, 책의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소설인지, 또 사실과 소설의 경계에 있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 알게 되어 좀 더 빠져들 수 있었다. 


​​


이야기는 그리트로부터 시작되어 그리트로 끝난다. 그리트는 가상의 인물로,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리트가 타일공인 아버지가 불운한 사고로 실직하게 되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화가 페르메이르의 저택에 하녀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녀에게 페르메이르 작업실의 청소가 주어졌고 화가의 물감을 씻고 재료를 가는 역할까지 도맡게 된다. 136. 나는 점점 그와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가끔 우리는 작은 다락방에 나란히 서서, 내가 백연을 갈고 있는 동안 그는 청금석을 씻거나 황토를 불에 구웠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나 역시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창으로 쏟아지는 빛 속에서 흐르던 그 시간들은 평화로웠다. 일을 끝내면 우리는 서로의 손에 주전자로 물을 부어주며 씻었다. 이야기는 아주 천천히, 고요하게 흘러간다. 평소의 나는 상황을 반전시키거나 급박하게 흘러가는 걸 기대하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이 침묵과 고요함이 지루하거나 답답함을 느끼지 못했다.



​235-236. “네 주인은 특별한 사람이야.” 반 레이원후크는 계속 말했다. “그의 눈은 황금으로 가득 찬 방만큼이나 가치가 있지. 그러나 가끔은 그도 자기가 그랬으면 하는 세계만 보곤 해. 실제로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자기의 그런 시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초래한 결과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그는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작품만을 생각한단다. 네 생각을 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너는 조심해야……” 반 레이원후크가 말을 멈췄다. 그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무얼 조심해야 하나요?” 나는 속삭였다.

“너 자신으로 남아 있도록 해라.”

나는 턱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하녀로 남아 있으란 말씀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그의 그림 속에 있는 여자들…… 그 여자들을 그는 자기의 세계에 가둬놓고 있어. 너 역시 거기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어.”


진주 귀고리를 하기 위해 피부를 마비시키는 정향유를 이용하여 귀를 뚫는 모습은 마치, 소녀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는, 그리트를 사랑했던걸까? 그 대답은 여전히 알 수가 없고 할 수도 없다. 그에게 그리트는 그저, 그의 그림을 완성시켜줄 진주 귀고리에 불과할 뿐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후로 페르메이르에 대해 찾아보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뿐만 아니라 작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누굴 그린 것인지, 어떤 연유에서 그려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페르메이르에 대해 알려진 게 많지 않다는 건 그만큼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작가는 오히려 더 좋은 일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가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트의 시선에서 참, 애달프게 읽었다. 그녀 손에 쥐여진 5길더는 영영 열리지 않을 것이다.




책 속의 밑줄_


​271. 결심을 했을 때, 나는 알았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임을. 별의 한 꼭지점에 주의 깊게 발을 딛고, 그 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는 어김없이 걸어갔다.


284. “그래, 인생이란 한바탕 연극과 같은 거야. 자네도 오래 살다보면 놀랄 일따위는 없을 걸세.”


292. 이제 내게는 설명할 수 없는 오 길더가 더 있는 셈이었다. 나는 동전 다섯 개를 빼내 손바닥 안에 꽉 쥐었다. 피터와 아이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숨겨두리라. 오직 나만이 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그런 장소에.

나는 이 다섯 개의 동전을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

피터는 나머지 돈을 보면 기뻐하겠지. 빚이 깨끗이 청산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피터에게 더는 치를 것이 없었다. 한 하녀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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