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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에서 국선으로 - 국선변호사의 사건 노트 : 법정에는 늘 사정이 있다
김민경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4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를 옭아매는 지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다행히 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세상은 참 만만찮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 역시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고가 났을 시에 업무상 과실치사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긴장한 채로 일을 하다보니 업무에 임할 때의 태도가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걸 느끼게 된다.
세상 어떤 일에도 관심 없는 것처럼 살지만 아파트를 위해 직책이 부여된 이후 나는 선한 척을 좀 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아파트 경비실 앞에 핸드폰이 하나 떨어져있었고, 나는 그 핸드폰을 주워 후문 경비실에 갖다드렸다. 핸드폰이 떨어져있던 곳과 경비실까지의 거리는 기껏해야 3m 남짓. 하지만 경비대원님은 본인은 아파트 순찰을 위해 자주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본인이 있는 후문이 아닌 정문으로 내가 그 핸드폰을 가져다줄 것을 요청했고 나는 정문까지 갈 여력이 되지 않았기에 그럼 후문에서 정문으로 전달해달라 말씀드리고 상황은 끝이 났다. 차에서 나를 기다리던 남편에게 늦은 이유를 설명하니 남편은 불같이 화를 냈다. 점유이탈물로 횡령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것. 난 이런저런 이유로 점유이탈물 횡령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편 입장은 일단 핸드폰 주인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었고, 만일 그 일로 신고가 들어갔을 때 돌려줄 생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 내가 증명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부러 자신의 물건을 놓고 유인하는 못된 사람들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그런 일에 휘말리는 것 자체가 번거롭다는 것이 논지였다.
남편의 말을 전부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몰아붙이니 알겠다고 하고 말아버렸다. 그러고 까먹고 지내다가 책의 [4-1] 수요 없이 베푼 친절이 공소장이 되어 돌아왔다를 읽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어쩌면 내 얘기일 수도 있기에. 분명 강 씨도 나도 선한 의도로 한 것이지만 그게 화살이 되어 찌를 수 있다는 것. ‘나쁜 마음’이 아니라 ‘서툰 배려’의 결과라며 서툴렀다면 단순한 ‘부주의’의 문제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함정은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
책에는 사선변호인, 국선변호인, 국선전담변호사의 차이점을 명확히 짚어주고 있어서 이해하는 데 좀 더 수월했다. 나는 살면서 변호사를, 또 노무사를 수임해야하는 일이 있었다. 전부 사선으로 알아보았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사건을 들을 때보다 수임료를 얘기할 때 더 적극적으로 말하는 그들을 보며,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돈’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승패로 가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찾아주는 것이라는 말에서 인간미를 느꼈다.
책에는 수백 개, 수천 개의 사건 중에서도 몇 개의 사건들을 책에 실었다. 故 김광석 이상호 기자 명예훼손 사건, 다이버 사망 사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사건, 공동퇴거불응 사건, 위법성조각사유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 공공주택특별법 위반 사건, 보이스피싱 사건, 재물손괴죄 사건. 뉴스나 다큐로 익히 보고 익힌 것들이 있고 처음 보는 것들도 있어서 흥미롭게 읽어내려가다가 세상에는 억울한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묵직해졌다. 이 책을 덮으면서 생각한 건 단 한 가지였다. 세상에는 정말 의도치 않게 법을 어길 수가 있다는 것과 세상은 ‘왜’라고 자주 되물어야하는 하나의 거대한 물음표라서 ‘왜’ 그런 일을 해야하는지, ‘왜’ 그런 일을 내가 해야하는지, ‘왜’... ‘왜’... ‘왜’... 그 ‘왜’를 들여다보면 결과를 알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따뜻하기만 한 세상에서 살고 싶지만,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올가미가 더 거세지고 있다. 모든 것에 왜를 붙일 수는 없지만 자질구레한 일을 겪고 나면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낯선 사람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고의성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건 상당히 ‘귀찮은’ 일임에는 분명하니까 말이다.
+ 참고로 저자의 아이를 낳기 위해 선택한 결혼 스토리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와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