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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 - 리스본에서 피니스테레까지 순례길 700km
정선종 지음 / 작가와비평 / 2024년 11월
평점 :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무언가 목표를 설정해두고 걷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바람에 따라 되는대로 흐지부지 걷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작년인가 재작년 즈음에, 남편이 그런 말을 해왔다. 본인 퇴직 전에 주어지는 1년이라는 기간에서 한 달 정도를 할애하여 도보여행을 하고 싶다고. 그 말에 “나는?”이라는 말을 되묻지 않은 까닭은, 사람에게는 모름지기 혼자 하는 여행이 꼭 필요하고 그게 걷기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또 나는 (운동 부족인지) 발목이 약한 데다가, 발가락이 약간 기형이라 (생긴 건 멀쩡한데 좀 오래 걸으면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퉁퉁 부어 며칠을 고생하는 편) 장시간 오래 걷는 걸 지향하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하는 며칠이 아닌 기간 동안 걷는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남편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템포를 맞추기가 굉장히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고 혼자 가고 싶다고 말을 한 것이리라.
여전히 나는 긴 시간 동안의 도보가 목적인 여행을 '함께' 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 흥미는 생겼다. 그래서 이전부터 순례길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들어봤을 때 감흥이 없던 것과 달리 약간의 흥미를 가진 채로 <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을 읽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해서 산티아고까지의 여정, 그리고 번외로 땅끝마을 피니스테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들을 따라가고 그 끝에서 나는 한숨이 폭- 쉬어졌다. 여보 미안해, 혼자 다녀와.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신 우리는 간간이 등산이나 둘레길을 걷는 거로 대신하자.
나는 그동안 순례길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시작점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저자와 저자의 아내는 60대 중반이라는 나이로 800km의 프랑스 루트를 완주한 바 있고, 이번에는 70대의 나이로 721km의 포르투갈 루트를 완주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목표를 설정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포르투갈이 시작점인 순례길에서는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표지판이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끔 등산을 할 때나 둘레길을 걸을 때에도 표지판이 친절하지 않은 곳이 더러 있어서 난감한 적이 많았는데 순례길이니 장기전을 목표로 가는 것일 텐데 가다가 되돌아오는 수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젓게 된다. 중간마다 이벤트가 한 번씩 있어서 조마조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순례길을 무사히 완주하게 된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저자의 나이가 있다보니 더욱 응원하게 되는 것도 있기도 했고.
책의 마지막에는 순례길을 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부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순례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순례길인데도 읽는 것에 이질감 없이 술술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중간마다 실려있는 사진과 그림이 있어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아내분이 그린 그림들은 따뜻하고 예뻐서 한참을 봤다. 그런데 아내분은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으셨다고. 흐흣.
책을 읽으며 사는 게 뭘까, 생각했다. 요즘 들어 더욱 그런 생각이 깊게 든다. 정말 사는 게 뭘까. 사는 게 재미가 없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살다보니 재미도 있고 잔바람도 있고 행복도 있고 풍파도 있다. 어느 날은 웃음들에 그릇이 깨어질 것 같더니 어느 날은 눈물을 바다 삼아 배영을 할 것도 같다. 누구나 행복해보이고 누구나 불행해보여도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달라서 감히 비교조차도 할 수가 없다. 각자에 맞는 행복과 불행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들을 잘 어루만져 달래가며 살아가는 게 삶이 아닐까. 앞으로도 사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될 테고 최선을 다해 살아볼 테지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렇게도 사는구나. 하는 것들을 좀 더 깊이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하지만 중간에 저자가 말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현재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굳이 이 책에 들어갈 내용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남을 평가하는 데 있어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기반이었다.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을진대 본인이 살아본 삶이 아닌 삶에 대해 그것이 아니라고, 틀렸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닌 삶도 없고 틀린 삶도 없다.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