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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더라도 ㅣ 책고래세계그림책 1
디파초 지음, 김서정 옮김 / 책고래 / 2024년 6월
평점 :
콜롬비아의 작가가 그리고 쓴, 한국에서는 처음 출간한 그림책
휘리릭 몇 초도 되지 않아 넘길 수 있는 그림책이라 아주 짧지만 매우 강렬하다.
그래서 책을 덮고 다시 몇 번이나 돌아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최근에 무릎을 치는 문장을 보게 되었다.
연인은 안 맞으면 헤어지지만, 부부는 안 맞으면 해결하려고 한다.
전에는 그게 말도 안 되는 말이라 생각했을 거다.
서로에게 사랑이 남아있다면 당연히 노력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만약 우리가 연인이었다면 헤어졌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함정이다.
우리 부부는 좋을 땐 너무 좋고 싫을 땐 너무 싫어서 탈인데
한편으로는 이럴 바에야 무던하게 주욱 이어지는 그런 관계가 좋지 않나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의 첫 장을 열면 작은 펭귄이 우뚝 서있다.
혼자였던 내가, 서로를 찾아내기까지. 그리고 함께였던 우리가 헤어졌다가 다시 함께이기까지.
여러 펭귄에서 두 펭귄, 그러다가 다시 한 펭귄이 다시 두 펭귄이 될 때.
어떤 고난이 와도 견디면서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임을 잘 알고 있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주면 더없이 좋겠지만 분명 지칠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본인이 이미 너무 지쳐있어 상대를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것을 알았을 때, 불씨가 지펴진 것을 알고 있지만 망설이다가 끄지 못했을 때 등등 우리가 결국 나중이 되면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우리 부부가 평소에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쓸데없는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그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원하지 않는 상황을 해결하려면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결혼 11년 동안 거리를 둬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거리 두는 것이 힘들다면 싫은 것들에 대해 포커페이스를 잘 해서 상대에게 내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이 전달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야 할 텐데... 상대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일그러지니 이걸 어쩐단 말인가.
우리는 책에 나와있는 펭귄처럼 또 한 번의 벌어진 틈을 열심히 헤엄쳐서 다시 메꾸게 되었다.
살면서 틈이 생길 때마다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우리일 수 있도록.
(그렇다고 이 책을 자주 보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하는 바람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