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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8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2월
평점 :
이방인으로 살았던 순간들을 곱씹어 본다. 나는 전에는 절대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아빠의 말인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도 이제는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방인,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처연하면서 잔혹한 상태가 되어버렸던 나를, 나는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방인이라는 말은 어쩌면 평생토록 나를 따라다닐 이름과도 같다. 나의 모습은 언제나 같은 것 같지만 이곳에서와 저곳에서 다른 다중적인 인간이기도 한데, 그런 나에게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이들 덕에 녹록지 않은 이방인의 삶도 즐거이 지내고 있다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기에 나는 이방인이 된 나를 가엾게만 여기지 않기로 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그래서 읽고 싶지 않았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순간들을 열렬하게 부정하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던 날들을 지내면서 구태여 부랑자(라고 말해도 된다면)가 된 타인의 모습을 읽어내려가고 싶지가 않았던 탓이었다. 제목만으로 유추하는 것은 이래서 위험하다. 하지만, 허공을 부유하는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떨쳐낼 수는 없었다. 책을 읽고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해둔 이유이기도 하다.
27.
에서 느껴지는 문장이 이 책의 전부가 된다는 사실을, 읽은 독자라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방인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 뫼르소의 짧은 날들을 기록했다.
1부_ 양로원에 모신 엄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른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꾸려나가다가 이웃인 레몽과 연관된 아랍인 중 한 명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
2부_ 재판을 받는 뫼르소
이 책을 읽고 고등학교 시절의 동아리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의 아버지가 아주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입원해계셨고 그 친구는 그 영향을 받아 간호대학교를 졸업하여 간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구는 장례식장에서 슬퍼했고 장례식이 끝난 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게 과연 도덕성에 위배되는 일인가? 나는 당시에 친구를 봐도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삼을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친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뫼르소는 어머니의 시신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는 등의 행동과 눈물은커녕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 이후의 유희들로 인해 도덕성 결여라고 판단하고 그것이 ‘살인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인간’으로 분류되면서 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해 어떤 변호를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다. 단지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고 했다. 그가 자신을 변호했다면 끝은 좀 달랐을까.
139.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를 매장했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그렇지만, 나는 뫼르소를 책으로 읽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의도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너무나도 분명하게 태양 때문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막을 모른다면 그가 의도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더라, 그런데 그가 최근에 이런 행동을 했다더라라는 말들을 듣게 되면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할 것임을 분명하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재판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됐다.고 말하면서도 두 가지의 생각이 자꾸만 충돌한다.
인간은 자신의 신조대로 사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행동이, 나의 말이, 나의 눈빛이, 나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결국 인간은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곁에 두고 오래도록 재독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