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망고 아일랜드>는 여행사진집이다. 우연히 그리스 풍경사진에 꽂혀 스무 살에 사진을 시작했다는 작가는, 그동안 다녀온 보라카이, 홍콩, 마카오, 방콕, 끄라비, 다낭, 호이안, 발리를 담아내었다. 짤막한 글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해외로 나가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벗어나 낯선 나라에서 느끼는 것들에서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의 안정감을 나는 최우선으로 둔다. (대한민국의 곳곳을 다니는 국내여행 역시 무척 좋아하지만) 국내여행과 다르게 해외여행은 신경쓸 것도, 경계를 해야할 것도 많기 때문에 안정감보다는 마음이 붕 떠있는 상태가 더 많았던 까닭이다. 말로는 편안해,라고 말하지만 진짜 편안함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였다. 그 안정감이 찾아올 때, 여행을 복기시키며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다닐 때마다 그날그날 쓴 일기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부터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날씨는 어땠고, 순간순간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지를 때로는 뭉툭하게 때로는 세세하게 기록한 일기장. 내게는 그때 썼던 고작 몇 줄의 글자들이 다시 그때로 나를 돌려보내곤 한다. 나는 오롯이 그때를 회상할 수 있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평온하다. 안정감이 주는 평온은 참으로 벅차다.
그런데 코로나가 확산이 되면서 더 이상 해외여행을 염두에 두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가겠지 하고 매달 모았던 돈들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서도 나는 해외여행을 갈 자신이 없다.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많은 것을 바꿔놓을 것이 분명하다.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나는 부정적인 측면을 감내하고서라도 여행할 자신이 아직까지는 없다. (음, 그런데 종식 후에는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사진집을 보면서 그 마음들이 조금씩 어긋나고 흐트러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지내고는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시간들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이 일었다. 지난번에 남동생를 만났을 때 마카오 얘기를 했었다. 포르투갈을 다시 갈 수 없다면 마카오라도 가야겠다는 말을 남동생이 기억하고 말을 꺼낸 것이었다. 한번 땡기러(크크) 가는 김에 에그타르트나 양껏 먹고 올까? 우리는 아마 마카오에 가게 되지 않을까? 하며 웃기도 했다. 사진집에는 마카오 분량이 적어 조금 아쉽기는 했다.
이 중에서 작가가 가장 좋았던 곳은 방콕이었나 보다. 방콕에 대한 사진과 글을 보면서 다른 것보다 조금 더 빛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콕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50번은 더 오고 싶은 곳이라니, 헤롯의 스콘은 어떤 맛일까, 에프터눈티는? 쿤나 코코넛 과자는? 덕분에 조금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사진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진이라는 것은 사각 프레임일 뿐이라서 프레임에서 벗어난 곳은 어떨지 모른다는 것과, 사진은 변형(보정)이 가능하기에 온전하지 않다는 것, 또 사진 그 자체는 온전히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이라서 쉽게 공감할 수 없기에 단순하게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서포터즈 활동에서 자유 도서 중에서도 굳이 사진집을 고집한 것은 평소보다 힘을 빼고 타인의 여행을 엿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명절 연휴가 길었다. 무슨 일이 있어 길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길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때보다 여유가 생겨 느슨하면서도 게을러진 상태로 사진집을 보았다. 아, 작가는 이 여행들을 모음으로 만들 때 참 좋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진을 넣을지, 사진을 넣었다 뺐다가 하며 얼마나 행복한 고민을 했을까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가끔 j가 “뭐해?”라고 물어볼 때 “응, xxx에서 행복해했던 내 사진 보고 있어.”라고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곳에서 모옷~쌩긴 얼굴을 하고 먹고 있는, 웃고 있는, 즐거워하는 내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하게 행복해진다. 아무래도 나는 오늘 또 행복해하는 나를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