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 코로나19로 남극해 고립된 알바트로스 호 탈출기
김태훈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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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엔 같이 세계 일주를 떠납시다.”

하지만 그들은 마흔이 되어서도 떠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_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누운 날, 아직 두 다리가 튼튼하고 배낭을 짊어질 힘이 있을 때 그 계획인 세계 일주를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크고 작게 아팠던 사람이라면 미래와 별개로 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는 계속해서 마음에 두고 있었던 남극 여행 티켓을 1,000불이나 내린 가격에 추가로 할인을 받아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섀클런의 항로를 따라서 남극을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설적인 남극 탐험가 섀클런 탐험대의 항로를 따라 여행을 하고, 22일 후 아르헨티나의 도시 푸에르토 마드린으로 귀항 예정이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남극 여행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바다 새의 일종인 펭귄을 보는 일도, 펭귄의 종류는 18종류지만 실제 남극에서 서식하는 펭귄은 6종류(황제, 임금, 아델리, 젠투, 턱끈, 마카로닝)뿐이라는 것도, 하얀색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푸른색이고 아랫부분은 짙은 남색이라는 빙하도, 남극 바다에 풍덩! 빠지는 폴라플런지도, 아문센과 스콧의 이야기도.

 

 

 

 

 

 

하지만 남극 14일차, 남극 탐험이 중지됐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였다.

169. “지금 이 시간부로 즉각 남극 탐험을 중지합니다. 우리는 이 배의 입항이 예정되어 있는 아르헨티나가 국경을 봉쇄하기 전까지 최대한 빨리 되돌아가야 합니다. 최대한 서둘러 우리의 입항이 예정된 도시 푸에르토 마드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배는 평상시 두 개의 엔진으로 이동하지만, 지금 이 시간부터는 비상 엔진 두 개를 추가로 가동하여 엔진 4개를 모두 켜고 최대 속력으로 귀항지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3일간 전속력으로 드레이크 해협을 건널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승선한 크루즈는 포클랜드 섬, 푸에르토 마드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차례로 입항을 거절당했고, 그들은 곧이어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로 향했다. 우루과이에서는 입항을 허가해 주지는 않았지만 배에 본국으로 가는 항공 티켓을 가진 승객은 하선 후 경찰차로 공항(출국장)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니까 우루과이를 떠나는 출국 티켓이 있다면 하선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172. 도대체 세상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하지만 래리는 사람들에게 약 50명의 비 호주권 승객들이 스스로 항공권을 검색해 보는 것을 멈추어 달라고 했다. 5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항공권 검색 사이트에 접속해서 몬테비데오를 떠나는 항공표를 조회하면 항공권의 가격이 올라갈 테니, 자신의 표를 사기 위해 티켓의 가격을 올리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고,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표를 내일까지 끊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래리에게 받는 티켓들은 대사관이나 지인을 통해 알아본 겻과 경로뿐만 아니라 가격도 2배 정도 높았다. 굳이 추천하지 않는 경로를 2배나 높은 가격으로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래리가 말한 것처럼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기다렸고... 나흘 후, 자신이 찾은 표는 좋은 것 같지 않으니, 너희의 표는 너희가 직접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래리는 통보했다.

 

 

읽던 도중 설마설마했는데, 욕지기가 나왔다. 영화 <부산행>에서 김의성의 행동을 욕하면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생존에 대해 생각하며, 생존과 관련하여 긴박하고 급박한 상황에서는 ‘나의 판단’밖에 믿을 게 없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구한 정상적으로 대한민국으로 오는 티켓이 영어-스페인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예정되었다는 말이 취소되었다는 말로 오역이 되면서 그들은 다시 배에 남았다. 그때의 억울함은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이때가 되니 읽는 나도 좌절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잠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덮고, 아직 그때 받았던 고통이 생생하게 다가올 텐데 어떻게 글로써 내보일 용기를 냈을까 싶었다. 그런데 역시나, 저자도 몇 번이나 책을 쓰는 것을 중단해야 했다고 한다. 당시의 고통을 잠시 묻어둔 것뿐이지, 다시 꺼내는 순간부터 새로운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 마음을 가만히 읽어보는 것으로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상황, 당시의 간절함, 당시의 눈물과 울분, 억울함,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는 말들이 떠돌았던 크루즈에서, 탈출(이라는 말을 써도 된다면)한 것을 축하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일 테니까.

 

 

 

배에 승선한 사람 중 한국인 두 명을 위해 각국의 대한민국 영사님들의 도움과 지인들의 도움이 저자뿐만 아니라 읽는 독자로 하여금 희망과 정서적 지지를 맛보게 하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이 조마조마했던 그들의 생존기는 그렇게 막이 내렸다. 아직 그때의 코로나가 지금도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그들의 귀국을 축하하고, 매우 환영한다. 안전한 우리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그간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날들이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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