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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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기 이전에 J가 먼저 이 책을 읽었다. 쓰고 보니 먼저라는 말은 좀 이상하다. J와 함께 독립서점을 찾았을 때 J는 이 책을 읽고 싶다고 하며 뽑아 들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리고 다 읽지 못했기에 그 책을 사서 나왔다. 그는 그 책을 읽으며 내게 자주 물었다. 삿보도가 뭔지 알아? 오함마가 뭔지 알아? 반생이가 뭔지 알아?... 아니 여보 내가 동바리라고 알려줬는데 그걸 삿보도라니... 그 책 뭐야 싶어서 뒤따라 읽게 된 것이었다.

전직 기자가 형틀 목수로 전향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노가다를 언젠가부터 고단하다, 노곤하다로 읽게 되었다. 고단한 삶을 끝마친 뒤에 찾아오는 노곤함이랄까. 하지만 그들의 삶을 나는 알 수 없다. 함께 현장에서 얼굴 보고 인사해도 우리는 각자의 일을 할 뿐이니까. 나는 그들의 삶에 깊숙이 관련되지 않으려 하니까. 하지만 나 역시 노가다판에서 일을 했었고, 앞으로도 향후 몇 년간은 할 것 같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점은 분명하다.

2020년 어느 날의 일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데 앞서가던 두 사람을 보며 한 여성이 아이에게 “공부 안 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뒤에 따라가던 우리는 듣지 못했다. 차장님은 그 말을 이미 진물 나도록 들었다고 하셨지만, 이후로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나가서 점심을 먹을 때면 가깝더라도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원청 소속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것과 관계없이 더럽고 어렵고 힘든 일이었겠지.

그런데 불현듯, 건축과를 지원하겠다는 내 말에 아빠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니가, 더울 땐 시원한 데서 일하고 추울 땐 따뜻한 데서 일했으면 좋겠어.” 건축에는 여러 세부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말씀하셨겠지만, 건축이라는 것은 그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역시 듣는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않음을 넘어 속이 쓰린 이야기다.

그렇지만, 나 역시 그들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다. 갈팡질팡하다가 중간에 섰다가 결국 다시 기울어버리다가 다시 곧게 허리를 편다.

저 목공이에요, 저 철근공이에요, 저 타일공이에요, 저 석공이에요, 저 미장공이에요.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반응은 고작 아~ 노가다~? 하는 반응이다. 왜 노가다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가 힘들까.

나는 현장에서 있으면서 자주 어지러웠다. 노상방뇨는 기본이요, 마루를 깔아놨는데 내 공종이 아니라고 해서 마루에 침을 찍찍 뱉질 않나, 싱크대나 마루에 똥을 갈겨놓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많다.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것을 알면서도 보고 들을 때마다 알록달록한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일부를 전체라고 일반화시켜서는 안 되겠지만, 전체의 일부라는 점은 틀린 것이 아니니까.

다른 부분들은 그렇게 읽어나갔다. 아는 부분은 아는 대로,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대로.

그러다가 변호하고 싶은, 변명하고 싶은, 화를 내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또 길게 써봐야 할 것 같다.

260. 노가다 판엔 ‘시어머니’ 같은 사람이 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사사건건 쫓아와서 잔소리하는 귀찮은 사람. 바로, 안전관리자다. 안전관리자는 원청에 속한 직원이다. 현장의 모든 안전을 책임진다. 현장 규모에 다라 다르긴 할 텐데, 보통 열 명 정도가 수시로 돌아다닌다.

1. 안전관리자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당신의 안전을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다.

2. 안전관리자는 원도급과 하도급의 기준이 좀 다르지만 공통으로 120억 이상이면 선임 대상 현장이다.

3. 현장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아파트 현장의 경우 원도급에서만 2-3명이면 적당하다.

10명이 돌아다니는 경우라면 발주처에서 내린 안전감시단이 포함되었을 경우다.

263. 이 모든 게 정말 눈 가리고 아웅이다. 나는, 내가 안전난간대 설치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다고 떨어질 사람이 아 떨어질까? 말하자면 이런 안전 대책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까 싶었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 원인 분석과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매번 절절히 느끼곤 했다. 좀 건방지게 얘기하자면 노가다 판 현실은 X도 모르는 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내놓은 대책 같은 느낌이랄까.

(…) 빠릿빠릿 안 하면, 하나씩 들고 다니면, 오야지한테 일 못한단 소리를 들을 테고 그러다 보면 잘릴 수도 있다. 그런데 뛰지 말란다고 안 뛸 수 있겠냐는 말이다. 생계가 달린 문젠데.

(…) 오야지 입장에선 안전관리자가 잔소리한다고 한 묶음씩만 뜰 수 없다. 자재를 빨리 떠줘야 인부들이 일을 빨리 할 수 있고, 그래야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그러니 눈치 봐가며 두 묶음씩 뜬다.

(…) 어쨌거나 이 ‘불법 다단계 하청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인부들은 뛰어다닐 수밖에 없고 안전사고는 언제든 터질 수밖에 없다. 안전관리자 20명 배치할 거 30명 배치한다고 해서 터질 사고가 안 터지지 않는다.

(…) 10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은 변할 세월이고, 기술이 발전했어도 한참을 발전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안전 대책이 아무 의미 없었단 얘기다.

(…) 책상에 앉아 고민할 게 아니라 현장에 와서 보고 듣고 느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아니냐고. 그렇게 했는데도 10년째 사망자 수가 줄지 않았다면 진짜 무능한 거고, 그렇게 안 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현장에 와 보시라고.

저자를 응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화가 많이 났던 부분들이다. 그냥 안전에 관한 그 페이지 전체가 화가 났다. 단지 각자의 위치가 달라 서로의 위치에서 화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당신의 건강과 안녕을 누구보다 바란다.

나는 대전에 본적을 두고 있지만, 태생적으로 말이 빠르고(충청도는 돌 굴러와유우yyy 라고 말할 만큼 느리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니까) 거침이 없다. 거침이 없다는 말은 겸손하지 않다거나 거만하다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다 하는 편이라는 것과 동일하다. 특히 직장에 있을 때 그렇다. 그래서 자주 오해를 샀다.

2015년에 함께 일하던 새끼 반장으로부터 싸가지가 없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말투가 그게 뭐냐고. 이 대리처럼, “반장님 이것 좀 해주이소~”라고 말을 해야 자기들이 하기 싫던 마음이 풀어져서 할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살고 있던 지역의 사투리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고향의 말씨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핀잔을 종종 들어야만 했다. 그러면 내가 그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장님 안전모 좀 써주세요 제발~ 질질질 해야한다는 의미인가. (이 미친)

고용노동부에서 오래전부터 안전모를 쓰지 않거나 안전지침을 어기는 근로자에게는 과태료를 문다고 하고 이와 별개로 안전규정을 세 차례 위반하면 퇴출도 당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용노동부의 권한인 거고.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현장 점검을 나온다는 것은 달갑지 않음을 넘어 비상사태 중 하나다. 그냥 참 잘했어요 찍어주는 것은커녕, 과태료 하나라도 물지 않고 그냥 가는 법이 없다. 오죽하면 “다 잘했는데 우리가 그냥 가면 안 돼서요. 과태료 이거 두어 개만 합시다.”라고 말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요식행위가 따로 없다.

중대재해처벌법만 보더라도 사고가 나면 우선적으로 사용자의 안전 관리 책임을 묻는다. 형사처벌까지 가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근로자를 제재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근로자가 안전화를 안 신고 발에 못이 박혔다거나 안전모를 안 쓴 상태에서 비래되었을 경우에도 사용자의 책임이다. 안전대책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자기의 생명을 지키려면 최소한의 안전보호구는 다들 하셨으면 좋겠다. 이건 근로자든 관리자든 현장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실천해야 하는 문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안전관리자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의 건강을,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다. 하루의 무사한 안녕을 기원하는 사람이다.

H차장님이 지금 아내분과 결혼한 스토리를 말씀하신 적이 있다. 소개팅을 하는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콘크리트 타설 시간이 늦어져서 늦게 퇴근을 하게 되었다고. 그러다 보니 작업복도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서 그대로 가셨다고 했다. 자신의 행색이 부끄러웠던 차장님은 “미안해요.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서...”라고 얼버무렸는데, 그분이 그러시더란다. “일하고 온 건데 뭐 어때요.” _ 듣는 내가 다 감동이었다. 감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의 속뜻은,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저자는 일이 끝난 뒤에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불유쾌한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뭐 어때요. 일하고 온 건데.”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비계공에 대해 생각했다. 결과물이 없는 비계공.

하지만 꼭 있어야하는 비계다. 비계 없이는 모든 공종도 무사할 수 없고 원만할 수 없다.

+) 책에는 직영을 하도급에서 둔다고 설명했는데, 때에 따라서는 원도급에도 직영을 두는 곳도 있다.

원도급의 공사팀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으로 여러가지 일을 도맡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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