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언니 - 언니들 앞에서라면 나는 마냥 철부지가 되어도 괜찮다 아무튼 시리즈 32
원도 지음 / 제철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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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몸으로 노동에 시달리던 엄마는 임신 7개월 만에 조산했고, 병원 과실로 산소 공급 미확보로 뇌병변 1급 장애인 판정을 받은 아들을 낳았다. 또 다른 희망과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으면 어쩌나의 고민에서 전자를 택하여 딸을 낳았다. ‘오빠 때문에 너를 낳았다.’라는 필터 되지 않은 문장이 주는 폭력성은 ‘장애인 오빠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위해 설계된 목숨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겠지.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오빠의 수발을 들라고 하면 들었고, 대소변을 치우라고 하면 군말 없이 치울 수밖에 없었을 어린 여자아이를, 대형마트에서 오빠의 휠체어를 밀다가 학교 친구와 마주쳤고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장애인 동생이라는 소문을 견뎌야 했던 어린 여자아이를, 학교폭력을 당하는 것을 언니에게 털어놓았을 때 ‘니가 그러니까 왕따를 당하는 거’라던 언니의 말을 듣고 상처를 입었을 어린 여자아이를, 너무 어린 나이부터 나를 잃어버린 어린 여자아이를 상상했다. 읽으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가장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대상은 가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못내 쓰렸다.

나도 언니가 갖고 싶었다. 친구에게 다 하지 못하는 은밀한 말들을 속닥거리기도 하고 일상을 나누기도 하는 그런 언니. 주변에 보면 언니랑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이럴 때 남동생은 정말 필요 없어... 나도 언니가 갖고 싶다는 말에 j는 자기가 언니 해주겠단다.

<아무튼, 언니>에서 자신의 혈육인 언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니들을 구원자라고 믿는 저자를 보면서 언니라는 대상이 타인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114. 가족끼리는 좀 더 타인처럼 굴 필요가 있다.는 말에 조심스럽지만 완강하게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으로 힘들어하던 언니가 동생의 책을 내준 독립서점에 감사의 표시로 선물과 택배를 보냈다는 부분을 읽으며 코끝이 시큰거렸다. 혈육만이 줄 수 있는 온기가 따로 있는 모양이라고, 언니 없는 나는 또 언니가 갖고 싶어진다.

44. 운전이 단순히 먼 거리를 빨리 갈 수 있게 해주는 것만은 아니다. 기동성이 확보되는 순간,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다. 특히 대중교통의 종류나 노선이 서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지방에서는 자동차가 확장해주는 생의 넓이가 어마어마하다. 버스로 한 시간이 걸리는 곳을 내 차로 15분 만에 주파하는 쾌감이라니… 그건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는 (j라는) 기사를 두고 운전하지 않는 삶을 꿈꿨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운전을 함으로써 내 세계가 확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 와서 많이 힘들었고, 이곳은 있는 동안 적응을 할 수 없을 것이라 느껴서 그 사실이 나를 좌절하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살만하네?라고 생각했다. 1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8km 떨어진 도서관을 운전해서 가는 것뿐이었는데 내가 아무 때나 아무렇지 않게 갈 수 있는 곳이 있네.라는 생각과 함께 편안해지던, 그때를 잊을 수 없다. 거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했다면, 그 마음은 아니었을 것 같다. 대중교통을 두어 번 갈아타야 하고, 도서관까지 직진으로 1km를 걸어서 가야 하니까 오히려 귀찮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버스로 한 시간 걸리는 곳을 차로 15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 이거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운전은 제대로 배우고 거리에 나오자. 깜빡이는 버릇처럼 켜주고, 무슨 일 있거나 후진할 거면 비상 깜빡이도 좀 켜고, 밤에는 라이트도 좀 켜고... 억지로 끼어들지 좀 말고...

84.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스크린 속을, 어떤 말이든 얹기 쉬운 휴대전화 액정 속을 벗어나 진짜 현실에서 마주하는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딱 한 발자국만큼만 앞으로 가는 사람이다.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앞만 보고 가는 장군 같은 사람이 아니다. 가끔 현실에 타협하고 자주 자괴감이 시달리면서도 어떻게든 옳은 방향을 향해 엔진 없는 오리 배의 페달을 낑낑거리며 밟는 사람이다. 악을 쓰고 욕을 하면서도 결국엔 가슴이 시키는 정의를 따르는 사람이다.

나도 열심히 오리배 굴리고 있다. 영차영차.

14. 어디에든 언니들이 있었다.

그 언젠가 j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몇십 년이 더 지나면, 세상은 좀 더 그로테스크해질 것 같아. 더 냉담해질 것도 같고. 나는 중년 아줌마들의 오지랖이 너무나도 싫거든. 지금도 그런 아줌마들이 너무 싫어. 그런 거 하나도 듣고 싶지 않으니 그냥 나에 대해 신경을 꺼줬으면 좋겠어. 그런데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가 났다고 앉으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도 아줌마고, 가방이 무거워 보이니 들어주겠다는 것도 아줌마야. 길을 가다 위치를 물어봐도 마음을 다해 알려주려고 하는 것도 아줌마야. 진짜 웃기지 않아?

아줌마들한테도 언니가 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언니라고 불릴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면 좀 의아해진다. 그렇다면 지금의 언니들이 그런 아줌마가 될 수 있나?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도 언니가 갖고 싶다.

나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인데도 언니, 그놈의 언니에 대해서는 자꾸만 미련이 생긴다.

나만 언니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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