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MD의 우리 작물 이야기 : #사계절 #힐링 #리틀포레스트
전성배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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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책 냄새를 몸의 안에 깊숙이 채워 넣으며 책 사이를 어슬렁거리다가 작고 귀여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계절을 팔고 있다니, 무엇을 파는 걸까. 하며 책을 꺼내는데 책을 꺼내기 전부터 알겠다. 과일이구나. 책의 옆 귀퉁이와 표지에는 한라봉이 채도 높은 주황빛으로 칠해져있었다. 어쩐지 한라봉의 달큼함이 입속에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표지에는 농산물 MD의 우리 작물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과일을 팔며 글을 쓰는 사람, 퍽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책에는 계절에 나는 과일과 채소들을 하나씩 열거하며 그에 따른 유년시절과 경험들과 기타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봄 : 대저 토마토, 설향 딸기, 산채, 황매

여름 : 수박, 참외, 대석 자두, 토마토, 복숭아, 샤인머스캣, 패션프루트

가을 : 무화과, 홍로 사과, 보은 대추, 배, 석류, 단감, 참다래, 홍시

겨울 : 귤, 유자, 한라봉, 곶감

농업의 발전과 부지런한 농부 덕분에 우리는 제철 과일을 원하는 때에 손쉽게 구해서 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과일들이 있는데, 재작년 겨울에 그렇게 먹고 싶던 복숭아와 캠벨포도가 그랬다. 요즘은 다 파니까 하며 찾아보려고 했지만 찾기가 너무 어려웠었다. 파는 곳을 찾아서 기뻐서 들어가 보면 이미 품절이어서, 왜 나한테 포도를 안 팔지, 왜 복숭아를...하며 억울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먹고 싶던 포도와 복숭아를 작년에는 죄책감 때문에 사먹지 못했는데, 올해는 기필코 사먹고야 말 거라며 나는 다짐을 한다. 올해는 좋아하는 거봉도 많이 먹어야지. 그런데 왜 거봉은 이름이 거봉일까? 꺼벙이도 아니고... (별 걸 다 시비)

결혼을 한 순간부터는 집에 과일을 두는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과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과일을 사두고 초반에 열심히 먹다가 며칠이 지나면 무르거나 곰팡이가 펴서 버리기 일쑤였다. 어떤 과일은 처음에 구매해서 너무 잘 먹어서 똑같은 과일을 두 번째 사면 그것도 같은 방식으로 버림을 당했다. 그러다보니 과일을 사는데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고, 고민하다가 어차피 다 못먹는데 하며 구매하지 않는 일도 허다했다. 한번은 귤이 먹고 싶어서 지역에 있는 조금 큰 농산물 시장엘 갔더니, 한 박스가 아니면 팔지 않는다고 하여 당황한 채로 돌아 나온 적도 있다.

19. 나는 소망한다. 현재의 고난과 시련에 우리가 맞서는 것이 허사가 되지 않기를. 대저 토마토와 같은 결실을 보기를.

이번 달부터 토마토를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토마토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재작년에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을 땐 기껏해야 한 팩 또는 한 봉지 정도였는데 한 박스씩 구매를 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토마토를 구매하게 되면서 대저 토마토(짭짤이)라는 것도 처음 먹어보았고, 흑토마토도 처음 먹어보았다. 나는 딱히 어떤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j는 흑토마토가 신맛과 짠맛이 덜하다고 했다. 난 그냥 열심히 먹기만 했나보다. 나는 아마 j의 요청에 의해 앞으로도 토마토를 꾸준히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이게 ‘일년감’이라는 것에 조금 낙담을 했다. 일 년 내내 나오는 채소라니...

영화 <리틀 포레스트> 중 “먹고 남은 꼭지를 저렇게 던져두어도 내년이면 토마토가 열리더라. 신기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 영화가 보고 싶어졌고 한편으로는 정말 꼭지를 흙에 심어두면 토마토가 열릴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도 해볼까?

5월 초, 갈비뼈가 골절된 것을 알고는 그동안 먹고 싶던 참외가 트럭에서 파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사왔다. 참외가 10개도 안 되는데 만 원이었고, 그렇다면 개당 어림잡아 천 원 정도였다. 과일을 자주 사지 않으니 이게 싼 건지 비싼 건지 감도 안 오지만, 참외가 비싼 채소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조금 놀랐던 기억이다. 참외가 이렇게 비쌌었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년 전에도 참외가 먹고 싶어 구매했다가 맛이 없어서 실망했는데, 이번에는 그 보상을 해주는 건지 맛이 기가 막혔다! 그런데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이 꼭 맞게도, 점점 냉장고에서 물러가고 있어서 한 알 남은 거 오늘 저녁에 먹어야겠다.

책을 읽으며,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지금 집에 있어 심심할 때마다 한 알씩 먹고 있는 토마토도, 추운 겨울에 먹는 게 이상하지 않게 된 맛있는 딸기도, 민소매 입고 먹어야 할 것 같은 시원한 수박도,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맛있는 참외도, 신맛을 본 뒤로 자주 찾지 않게 된 자두도, 올해는 꼭 딱딱이와 황도와 백도를 먹어볼 예정인 복숭아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사과도, 결혼할 때 처음 맛보았는데 생각보다 맛이 있어서 눈이 동그래진 대추도, 뜬금없이 먹고 싶어지는 배도, 한 알만 먹어도 몇 년은 생각이 나질 않는 석류도, 매년 겨울이 되면 찾게 되는 귤도. 읽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책이었다. (책에는 있지만 나열하지 않은 것은 좋아하지 않거나 먹어보지 않았거나. 감, 홍시, 곶감은 너무나도 성실하게 빠뜨린 걸 보니 나는 감은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나보다. 매우 성실해...)

책에 의하면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기온 상승이 가파른 나라 중 하나라고 말한다. 지구 지표면의 온도가 평균 1˚미만으로 상승한 반면, 한국은 1.8˚가량이 상승해서 열대 과일이 강세를 보이는 사이에 한국의 작물은 점점 밀려나고 있다. 한국의 재배 한계선이 기온 상승과 함께 남에서 북으로 빠르게 올라가면서 제주의 전유물이었던 감귤은 전남과 경남으로, 멜론은 곡성에서 강원도로, 무화과는 전남에서 충북으로, 사과는 대구에서 강원도로 북상했다. 이대로 간다면 작물의 재배지 북상이 아니라 소멸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염려가 책에 들어있다. 다시 한번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마침 도서관에서 빌려온 환경책을 읽을 때가 되었다.

오탈자 56p. 교실 한쪽에서는 삽겹살을 구웠고 ▶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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