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 <나목>에 대한 이야기가 슬쩍 나왔었다. 원고 부피에 끔찍한 생각이 났다는, 그래서 지긋지긋해졌다는, 우송까지 끝마친 뒤에 너무 허전해 울고 싶었다는 그 소설을. 독서모임에서 <나목>이 지정도서가 된 걸 알고는 나도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도서관에 간 김에 제일 먼저 찾았다. 하지만 책의 연도와 그 역사에 걸맞게 책의 상태는 더럽혀져 있었다. 내가 책의 구매를 망설였던 것은 필시 이전에 작가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에서 왔는데, 책 구매를 실행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대부분의 책을, 사전 지식을 갖추지 않은 채로 읽는다. 알게 된 것은 모르겠지만, 부러 찾아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사전 지식을 갖추고 읽으면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기존보다 넓어질 것을 모르지 않지만, 성격상 그것과 이것을 별개로 두지 못하고 프레임에 갇히게 되는 꼴이 되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 내 입맛에 맞게 책을 읽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기억해야 하는 것과 기억하고 싶은 것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교집합이 되어 결국은 과부하가 되었다.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한 채로, 끄적거렸던 독서노트만 준비해서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내가 어느 부분들에 마음을 두고 이 책을 읽었는지를.

유난히 소설에는 부연, 회색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쓰인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부연 하늘, 부연 화면, 부연 혼돈, 부연 눈, 그리고 회색빛 고집, 회색 머리, 회색 건물, 회색 휘장, 회색빛 절망. 그 부연 것과 회색은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머니를 이루고 있는 부연 회색을 미워하는 이경인 까닭이다.

321. “나 때문이었을까?”

오빠들이 머물고 있었던 곳을 큰아버지와 그 아들에게 내어주고 오빠들은 행랑채에 머물게 하자고 한 것이 이경이었고, 그 행랑채가 폭격을 당해 오빠들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은 어머니의 말과 행동들에 의해 더 선명해지고 만다.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살아 있다는 것이 거리낌 없이 좋았던 날들은, 그 말에 의해 살아 있다는 것을 송구스럽다고 느끼게 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이경은, 가끔은 처절하고 가끔은 가엾고 가끔은 처량하게까지 느껴진다.

51. “식기 전에 잡숴보셔요. 식을까 봐 가슴에 품고 왔어요.”

이번에야말로 설마 어머니의 눈빛이 무슨 뜻을 지녀오겠지 기대하며 주시했다. 어머니는 시들하게 받아놓고 습관화된 딴 일을 시작했다. 국을 데우고 상에다 수저와 그릇들을 올려놓고. 어머니의 눈은 결코 딴 뜻을 지니지 않았다.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뿐이라는 완강한 고집 외에는. 나는 빈대떡 산 것을 후회했다. 가슴에 품고 왔음도.

특히 내가 한 나중 말, “식을까 봐 가슴에 품고 왔어요”를 후회했다. 물건이라면 뺏고 싶도록 그 말을 돌려받고 싶었다.

이경은 그렇게 어머니를 원하지만, 결국은 미워하게 되고, 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겉에서 맴돌며 보살피는 건 이경이다. 다만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한, 집요하게 나를 쫓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 부연 눈에 공포와 증오를 동시에 느끼는 이경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시절, 그렇게 아들이 중요했던 걸까. 장가는 급하지 않아도 손주는 급하다던, 더구나 세상이 이러니 빨리 씨를 받아놓고 봐야 한다던 그 말이, 그 시대를 짐작게 했지만, 종족 보존과 번식을 향한 인간의 욕망에 좀 질리는 부분이기도 했다.

종족에 대한 열망이 아니더라도 아픈 손가락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은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한숨을 자주 내쉬어야만 했다. 결국 이경이 어머니에게 원했던 것이, ‘때때로 아주 가끔만이라도, 자상한 시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옥희도 씨의 부인이 건넨 자상한 시중은, 때로는 샘이 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는 위안이었고 위로였으며 따듯한 손길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360. “오, 어떡하면 자네가 알아줄 수 있을까? 내가 살아온, 미칠 듯이 암담한 몇 년을, 그 회색빛 절망을, 그 숱한 굴욕을, 가정적으로가 아닌 예술가로서 말일세. 나는 곧 질식할 것 같았네. 이 절망적인 회색빛 생활에서 문득 경아라는 풍성한 색채의 신기루에 황홀하게 정신을 팔았대서 나는 과연 파렴치한 치한일까? 이 신기루에 바친 소년 같은 동경이 그렇게도 부도덕한 것일까?”

옥희도 씨와 이경은 과연 사랑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옥희도에게 이경은 본인이 가질 수 없었던 풍성한 색채였고, 이경에게 옥희도는 어머니가 주는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버지이자 오빠들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행보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나는, 가난을 궁상맞지 않게 다스리는 부인이 자꾸만 떠올랐으므로.

소설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온다. 결국은 전쟁을 겪었고, 겪어냈고, 겪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깊은 밤, 오지 않기를 바라는 내일, 삶과 죽음을 번갈아가며 격렬하게 소망했던 날들, 결국 나로서 살고 싶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소망들이, 그들의 삶 깊숙이 숨어들었고, 스며들었다. 우리는 모든 것들에 노크를 할 수 있다. 이미 지나왔던 시간, 지나가는 시간, 머물러있는 시간, 다가올 시간들에. 새로운 생활에의 노크들을 망설이지 않기를, 그 노크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그 노크에 마음이 가닿았기를.

덧_ 이후 박완서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을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몇 가지 사소한 이유로 에세이를 좀 더 가까이 두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좀 더 강해서) 뜬금없이 이번 소설 전집 표지가 마음에 든다. 어릴 적에 신문에 있는 글자들을 오려 글씨조합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데, 이건 내가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참.

 

 

 

 

*책 속의 문장

62. 그는 난리 통에 하나도 다치지 않은 그의 아들딸의 이름을 나열하며 완전히 주름을 폈다. 순간 그는 거침없이 행복해 보였다. 우리 집의 처지와 자기들과를 비교함으로써 그의 행복은 완벽한 것 같았다. 남의 불행을 고명으로 해야 더욱더 고소하고, 맛난 자기의 행복…….

65. 나는 할 수 없이 옥희도 씨를 생각했다. 그리고 주문처럼 ‘그는 딴 사람과 다르다. 그는 딴 사람과 다르다’고 외었다.

나는 그런 되풀이를 통해 어쩌면 새로운 생활에의 노크를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123. 난 쓰기를 그쳤다. 밤이 깊다. 밤은 텅 빈, 무엇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텅 빈 내일을 몰고 오리라. 차라리 내일이 없었음 좋겠다.

바람은 아직도 멎지 않은 채 고가의 허술한 곳들, 함석 차양, 수많은 문짝과 창문을 흔들었다. 설음질을 끝마친 어머니가 분합문을 드르륵 닫으며.

124. 나는 여기서 기억의 소급을 정지시켰다. 몇십 년이나 묵은 은행이 그 가을엔 왜 그렇게 처절하도록 노오랬던가. 난 그것을 보며 왜 그렇게 살고 싶고, 죽고 싶고를 번갈아가며 격렬하게 소망했던가. 지금도 그것이 궁금할 뿐 내 기억의 소급은 노오란 빛 속에 용해되어 다시는 헤어나질 못했다.

145. 육친이라서 주저되던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서 북받쳤다.

그 놀라운 인색, 무서운 고집,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타인을 그토록 참담하게 만들 권리는 없으리라. 그토록 자혜롭기에 인색할 수가.

227. “사람이고 싶어. 내가 사람이라는 확인을 하고 싶어.”

“내가 아직도 화가인가 알고 싶어.”

“그냥 그림이 그리고 싶어. 미치도록 그리고 싶어. 정진과 몰두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

261. 그 그림은 물론 그녀 때문일 리는 없었다. 그것은 필경 그 회색 휘장 대문일 게다. 부옇게 그의 시선을 가로막은 휘장 때문일 게다. 그 휘장이 그의 영감을, 그의 상상력을 억압했을 게다.

257.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오톨도톨한 질감을 주는 게 이채로울 뿐 하늘도 땅도 없는 부연 혼돈 속에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257. 나는 그런 그림들에서 어떤 언어를 시작했다기보다는 그냥 그 빛과 빛깔을 즐겼었다. 삶의 기쁨이 여러 형태의 풍성한 빛깔로 나타난 그림들을 사랑했다. 이렇게 나의 그림에 대한 눈은 오색 풍선을 동경하는 아이들처럼, 포목점 앞에서 아름다운 천을 선망하는 여인처럼 소박하고 단순했다.

322. 내가 내 허물에 관대해졌다 해서 어머니의 허물에까지 관대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결코 어머니를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다.

329. 우리는 우리 속에 갇힌 원숭이인 것이다. 유쾌한 구경꾼들이 자꾸만 몰려들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아무런 재주도 부릴 줄 모르는 무능한 원숭이일 뿐, 우리의 절망이 그들에게 미칠 리 없고 또한 그들의 애환이 우리에게 생소하다. 우리는 휘장을 밀었다.

366. “어렸을 땐 맴을 돌고, 커가면 술을 배우고, 사람들은 원래가 똑바로 선 채 움직이지 않는 세상이 권태롭고 답답해 못 견디게 태어났나 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