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드로잉 내가 좋아하는 것들 4
황수연 지음 / 스토리닷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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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노래를 못 불러 음악시간을 싫어했고, 모든 운동에 겁을 내기도 했고 체력이 안 되기도 하여 체육시간을 싫어했고, 손재주가 없어 미술시간과 가정시간을 싫어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과목은 너무나도 협소했다. 아니, 어떻게 신은 내게 이렇다 할 재주 하나 주지 않은 걸까, 많이 원망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도대체 내가 잘 하는 건 뭐지? 하고 깊은, 정말 아주아주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하찮게 여겨져 생각을 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하지만, 본질적으로 노래를 좋아하지 않고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고 손재주가 없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10. 정말 닿고 싶지만 닿지 않아 애틋함까지 느꼈다. 미술은 나와 거리가 먼 영역이니 바깥에서 우러러볼 뿐, 그 안으로 들어갈 일은 없었다.

 

그중에 미술을 말하자면, “두 시간 동안 그린 게 이거야?”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선을 그렸다가 지우개로 지우고, 원을 그렸다가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그러다 보니 스케치북은 금세 너덜너덜해졌고 주위에 완성된 그림을 제출하는 친구들을 보며 자주 조급함을 느꼈고 자괴감을 느꼈다. 그러다 보면 스케치북을 찢고 도망을 가고 싶을 때도 여러 번이었으나 매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대충 아무렇게나 그려서 제출하기 일쑤였다. 점점 그렇게 재미없는 과목이 되었다. 하지만 그림을 더 이상 강제로 그리지 않아도 될 때, 나는 비로소 자발적으로 그림을 보기 시작했고 감상하는 것을,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에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경외심을 가지며 존경하게 되었고 그뿐이었다.

 

 

어느 날 글을 쓰다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게 있는데, 그것을 글로 나열하기에는 내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런 일은 빈번하게 찾아왔지만, 그때는 왜인지 글로 써낼 수 없는 그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가 처음 그림을 배워볼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게 세 달 전이었다. 바로 실천에 옮길 수도 있었지만, 아직 적절한 학원을 찾지 못해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내게 학원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림을 더 숙제처럼 생각하고 더 두렵게 생각해서 멀어질까 봐인데, ‘잘 못 그릴까 봐’, ‘실패할까 봐’라는 두려움을 걷어내면 그림은 재미있는 놀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지만, 쉽게 배워봐야지!라고 생각하기에 내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유튜브로 배워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책으로도.

 

 

 

이번에 읽은 책이 단순히 드로잉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이었다면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드로잉이 있었다. 그림을 못 그려 보는 것만 좋아할 수밖에 없는 나와는 달리,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겠지? 아, 좋아하는 게 그림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림’이 주제인 책이다 보니,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나도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곳곳에서 그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도 많아서 어쩐지 슬몃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책에는 표지 외에 저자의 그림이 실려있는 페이지가 없어 아쉬웠는데 찾아보니 다른 그림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참 다채로운 색감을 쓰시는 분이구나, 그래서 그런지 통통 튀는 생동감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걸 보니,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내 그림 실력이 생각나 또다시 주눅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못 그린 그림은 없다.는 문장이 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서 그게 언제가 되든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작가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이런 나도 반가워해주시려나. 하하.

 

 

 

163. 저는 뭔가 선택을 할 때 어려움에 놓이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무엇을 질투하고 있는가. 무엇을 부러워하고 있는가. 그게 제가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일 확률이 높거든요. - 유튜버 ‘이연’

그런데 글을 읽다가 문득, 좋아하는 것들은 어떻게든 삶을 살게 해주고 삶의 자세를, 삶의 매무새를 고쳐주는 역할을 하는구나. 좋아하는 것들을 꽉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를 살게 하는 것을, 나의 기쁨이 되는 것들을, 다시 하나둘씩 적어본다.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척도는 될 수 있지 않으려나 하는 마음에.

 

 

 

 

덧, 몇 달 전에 j랑 핸드폰으로 코끼리를 그렸는데... 내가 그린 코끼리를 보고 j가, “넌 코끼리를 본 적이 없어?”라고 물었다. 아무래도 그이는 나의 안티인 것 같으니 무찔러야겠고(!)

 

 

 

 

 

 

 

 

 

 

*책 속의 글

103. 끝이 정해지지 않은 자유 속에 던져진 나를 겪어보니 나는 별로 즉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사소한 것까지 미리 정하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그럴 때 안정감을 느꼈다. 계획이 차근차근 실현될 대 행복감을 느꼈고 정해둔 일정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발견했다.

더욱이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면 괴로웠다. 스스로 생산적인 일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여행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어 올리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흐지부지 지나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두고자 했다.

 

168. 결과를 갈망하는 욕심들을 지나고 지나 다시 과정을 잘 겪어 내며 살고 싶은 마음으로 되돌아왔다. 물론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렇다 할 결과를 손에 쥔 누군가를 보면 잔잔했던 마음이 소란해질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목표했던 결과를 얻는 것보다, 과정 내내 나를 잃지 않고 나답게 살아나가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매 순간 나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며, 타인에 상관없이 내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갈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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