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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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들이 툭툭 끊어져내리는 무료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었다. 가다 말다 가다 말다 하는 억지스러운 마음들을 부여잡고 책 한 권을 간신히 읽어내렸다. 무척 좋았지만, 단편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수선해져버려 그 감정들이 소멸되는 것만 같았다. 이럴 때 소설을 읽는 게 아니었나 하며 혼자 툴툴대고 있었는데, 이건 단순히 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좀 깊숙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마음을 내려놓고 싶어서 장편을 찾았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고, 한 챕터가 끝났다. 이게 웬걸, 이거 단편이었어?

편혜영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어떤 책이 가장 좋았나 하고 물으면 궁색해지는 대답이 그 이유를 대신한다. 하지만 어떤 점이 좋은가 하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다. 인물의 형상이 아니라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들이 책을 아우르는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그런데 이번 책을 읽다가, 나는 첫 번째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밤이 지나간다>도 아니고, <저녁의 구애>도 아니고, <선의 법칙>도 아니고, <홀>도 아니고, 이 책, <어쩌면 스무 번>이라는 것을. 한 단편씩 서평을 쓰고 싶었는데,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몇 번을 더 읽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 이해라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아서. 뒤편에 있는 이야기의 결말을 조심스럽게 상상해보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껴넣어보기도 하고, 그냥 놔둬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단편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그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나 그랬다. 이 책이.

올여름은 옥수수를 많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스무 번>

“여기가 어쩌다 이렇게 됐어?” <호텔 창문>

“소령님 덕에 우린 좀 좋아졌잖아요.” <홀리데이 홈>

“항아리 다음에 말이야. 차라리 이름을 부를걸.” <리코더>

남편은 선택했다. 돌아오지 않기로. <플리즈 콜 미>

우리가 불리해서 키운 전장은 언제나 우리 자신을 낱낱이 드러낸다고. <후견>

흘러가는 건 다 좋은 거라고. 좋은 건 다 흘러간다고 말했다. <좋은 날이 되었네>

아줌마는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구했다. <미래의 끝>

읽는 내내 등 뒤가 서늘해져 자주 뒤를 돌아보아야 했고, 으슬으슬함에 이불을 목까지 덮어야만 했다. 뒤를 돌아보면 머리카락이 다섯 가닥만 남고 혀가 꼬부라진 채로 나를 내려다보는 좀비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내 안의 괴물을 닮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건 정말이다. 크고 작은 몰락이 만들어낸 커다란 ‘홀’은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었고 우리는 그 구멍에 발을 내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일단 시작한 일을 끝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 구멍은 내가 만들었을 수도, 니가 만들었을 수도, 제3자가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 누구도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구멍을 만든 이를 힐난하고 책망하다가, 우리는 곧 현실을 깨닫고 체념하고야 만다. 그러다 보니 현실을 깨닫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나... 하고 자문한다.

근래에 내가 가장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가족, 가족이란 무엇일까였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거였나, 하고 절망스러울 때가 종종 있는데, 장인을 대하는 아내(<어쩌면 스무 번>)를 보면서, 나를 구하고 죽은 형의 이름을 나에게 부르는 큰어머니(<호텔 창문>)를 보면서, 누군가 그를 알은척을 할 때면 두려움이 먼저 든다는 아내(<홀리데이 홈>)를 보면서, 깨진 항아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남편(<플리즈 콜 미>)을 보면서, 도울 방법이 없으니 괜찮겠거니 생각하는 엄마(<플리즈 콜 미>)를 보면서, 자신이 모든 것을 통솔하려는 아버지(<후견>)를 보면서, 아는 바가 없었기에 사이가 좋았을 어머니와 아들(<좋은 날이 되었네>)을 보면서, 바깥의 부모가 미래를 만들고 깨뜨리는 것을 보는 딸(<미래의 끝>)을 보면서, 나는 여러 생각을 했다. 그 생각들은 완전하지 못하고 흩어져서 종착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그 덕분에 조금 덜 절망스러워질 수도 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언제 다시 절망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이야기들에서 삶의 애환이 녹아있었다. 그들의 삶의 가지를 천천히 상상했고, 내 삶의 가지는 어느 부분에 있는지 점쳐보며 어떤 구멍이 있었는지, 앞으로는 어떤 구멍이 있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지. 분명 그 가지의 어느 부분에는 내가 예견하지 못한 자리에 구멍을 만들기도 하고, 이곳에는 구멍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부분의 구멍은 메꿔지기도 하며, 어떤 예상치 못한 부분에 다른 어린 가지를 만들어내 더 풍성하고 다양한 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을 테니까.

_책 속의 문장

28. 조금 더 기다리면 하늘에 희미하게 달이 떠올랐다. 운 좋게 둥근 달을 보는 날이면 옥수수밭에 숨어서 이렇게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싶어졌다. 어쩌면 스무 번, 기껏해야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눈가가 시큰해졌다.

33. “오늘은 옥수수 없어?”

“가서 따올게.”

“아니, 이제 옥수수는 없어.”

49. 운오는 간혹 형을 두려워하고 미워했지만 결코 형이 죽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자기를 죽일 줄 알았던 형이 자신을 살린 것을 ㅇ라고 운오는 구역질을 했다. (…) 그렇기는 해도 형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무섭고 겁이 났다. 죽기 전에도 형은 그런 존재였는데 죽고 나니 더 두려운 사람이 됐다. 고마운 적은 없었다. 자신을 구해줬어도 마찬가지였다. 형이 자신을 살린 걸 생각하면 언제나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82. “소령님 덕에 우린 좀 좋아졌잖아요.”

“소령님이 멀리서 걸어오시기만 해도 우린 다 쫄았어요.”

이진수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는 권위와 위계를 칭찬으로 여겼다.

“우릴 엄청 팼으니까요. 툭하면 팼잖아요. 우리더러 악마에 씌웠다면서요.”

83. “사진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남아 있잖아요. 나를 때린 사람도 있고 내가 잘못한 사람도 있고요. 심지어 죽은 사람도 있어서 기분이 이상해져요. 소령님도 그럴 때가 있어요?”

86. “그런데 소령님.”

“소령님.”

“예? 소령님.”

106. 그후 수오와 무영은 어떤 의미에서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둘이 있으면 적어도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미안해지는 일은 없었다. 서로에게는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있었다. 죽을까봐 무서웠지만 죽지 않아 더 무섭다는 말 같은 것. 모든 건 지나간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나는 이유나 밤에도 불을 켜고 자는 사정을 털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함께 살아났다는 것에 감동받은 적 없지만 적어도 안심은 됐다.

113. 어떤 말은 내내 품고 있지만 결코 소리 내어 말할 수 없게 된다는 것도.

118. 미조가 거짓말을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하기 싫은 말을 하지 않았다.

121. 술은 미조가 온종일 잠을 자든 소리 죽여 울든 내버려두었다. 오히려 잠을 자도록 도왔고 마음껏 울도록 도와주었다. 미조에게 그렇게 해주는 건 술이 유일했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면 느긋하고 애틋하게 지난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순간이 짧다는 게 문제였지만. 조금 더 마시면 금세 낙담에 빠져들었다. 취하면 사정은 더 나빠졌다.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 찾아왔고 알고도 간과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126. 딸은 요즘 들어 그런 말투를 썼다. 달래고 어르는 말투. 대화를 하려는 게 아니라 설득하고 안심시키려는 말투.

미조는 웃었다. 누군가 가까이 있기만 해도 충분할 때가 있다는걸, 미조에게 딸이 그런 존재라는 걸 딸은 모르는 것 같았다.

130. 남편은 황당하거나 불쾌한 일을 겪으면 화를 내는 대신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남편이나 미조나 어떤 일은 겪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경험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

130. 여보.

어서 와요.

그래, 알았어요. 잘 있어요.

133. 여보, 나는 돈 새는 깨진 항아리가 되었어요. 열심히 살았는데 기껏 깨진 항아리라니.

미조는 애써 웃어 보였지만 자신에게 부쩍 다가와 있는 미래에 가느다란 두려움을 느꼈다.

134. 남편은 순전히 길을 잃어 돌아오지 못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헤매다가 종내는 스스로를 잃게 되는 일도 있으니까.

138. 미조는 모른 척했을 뿐이다. 남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울 방법이 없으니 괜찮겠거니 생각해버린 것이다.

139.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지 않고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린 걸까. 자신이 그랬듯 딸 역시도 도울 수 없으니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일까.

189. 생각해보면 어머니와 나는 서로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지만 언제나 사이가 괜찮았다.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것으로 충분했다.

195. 어머니가 가고자 했던 곳이, 멈추려던 곳이 어디인지, 날카로운 가위를 휘두르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윤에게 가위를 휘둘렀을 때, 어린아이의 팔뚝을 세게 움켜쥐었을 때, 어머니에게 남은 것은 상처 입은 마음과 가위뿐이었으리라는 것을 막연히 이해했다.

201. 부모는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다.

209. 무엇보다 아줌마는 바깥의 공기를, 미래라 부를 수 있는 들뜬 마음을 환기시켜주었다.

210. 미래를 위한 보험이 있다고 해서 외로움이 달래지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집에는 언제나 나 혼자뿐이었다.

221. 아줌마는 한 사람에게 좋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거라고 했지만, 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자 여러 사람이 궁지에 몰렸다. 미래는 바닥나버렸다.

223. 우리 미래를 부순 돈이 아주 적은 액수가 되어 돌아왔다.

224. 어떤 더한 일이 생겨야 엄마가 아줌마를 찾을지 생각했다. 무슨 일인가 생기기를 바랐고 더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다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아줌마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시련이 닥치면 아무도 찾을 수 없다. 도움이 필요치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

작가의 말 _ 내게 있어 소설은 언제나 처음에 쓰려던 이야기와 조금 다른 자리이거나 전혀 다른 지점에서 멈춘다.

이제는 도약한 자리가 아니라 착지한 자리가 소설이 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그 낙차가 소설 쓰는 나를 조금 나아지게 만든다는 것도. 그렇기는 해도 나아진 채로 삶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것 같다.

이 낙차와 실패를 잘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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