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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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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이 쉬운 편은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아침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었는데도,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고 읊조리기도 했다.

단어들이, 문장들이 입속에서 웅얼거렸다.

목차에는 나와있지는 않지만, 책은 크게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나눌지 몰라도, 나는

1.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에 대한 서론

2. 작품 삽화

3. 누드화

4. 작품 삽화

5. 자본

6. 작품 삽화

7. 광고

정도로 나누었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건, 누드화와 광고였다.

(작품 삽화는 정말 작품만 띡띡 넣어두었다 뿐이지, 작품명은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나와있지 않아서 도대체 무슨 의미로 넣어뒀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각종 영상에서 볼 수 있는 명화들을 이제는 좀 아니꼽게 보게 될 것 같다. 명화에는 어째서, 왜, 누드화가 많지? 그것도 왜 하필 여성 누드일까?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하긴 했었으나 깊게 관여하지는 않았다.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 자체를 완전히 날려버린 셈이었다.

54.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주어진 한정된 공간에서, 남자들의 보호, 관리 아래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자들의 사회적 존재는 이렇게 제한된 공간 안에서 보호, 관리를 받으며 그 여자들 나름으로 살아남으려고 머리 쓰고 애쓴 결과로 이룩된 것이다. 그렇기에 여자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어려운 문제다.

벌거벗은 여자를 그리는 이유는 벌거벗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시늉을 한다. 참 거지 같다. 또한 그림을 보는 이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려진 누드화가 더 많다는 사실에 우리는 격분해야 한다. 여성은 남성을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는 성적 인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책에서는 말한다. 전통적인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보자고. 그런 전환이 주는 폭력은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이다. 앞으로 텔레비전에서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는 명화들을 바라볼 때 이전보다 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왜 하필 그 그림이 왜 거기에?

154. 광고가 약속하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행복이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외부적으로 판단되는 행복이다. 선망받는 행복이 곧 매력인 것이다.

이 문장은 참 모순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외부적으로 판단되는 행복과 쾌락은 어떤 방식으로 다른가? 이렇게 말하면 엄청난 광고들만 선망받는 행복을 줄 수 있음을 뜻하지만, 실제로 내가 본 광고 중 선망받는 행복을 줄 수 있는 광고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을 행복이라고 규정지어버린다면, 행복에도 가짜 행복과 진짜 행복이 생겨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어쩌면 알게 모르게 세상에는 가짜 행복이 무참하게 널브러져 있는지도 모른다.

154.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광고는 ‘현재의 결핍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내내 해왔었다. 그런데 책에서는 광고라는 것이, ‘미래의 구매자’를 대상으로 했다고 해서 갸웃했다. ‘그 이미지를 본 구매자들 자신이 마치 그렇게 된 것인 양 느끼게 하여 자신의 변한 모습을 부러워하게끔 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광고를 보고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내가 그런 욕구가 크지 않아서 그런 걸까. 내가 자랑할 것이 고작 나 오늘 초콜릿 하나를 다 먹었다! 정도여서 그런 걸까. 광고가 현재를 불만족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행복을 가져다준다에는 적어도 나는 부인한다.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이라는 문장은 시대가 지난 지금 훨씬 더 걸맞은 문장이 되고 있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나라고 그 족속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도 나를 꽤 비참하게 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여성이 가진 고유의 성은 대상이 되어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에 아무렇지 않게 걸려있는 명화를 삐딱하게,가 아닌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을 때라야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게 고착화된 가치관이나 보편화되고 있는 생각을 좀 더 각성하게 하고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즐겁게 읽었다. 오늘도 존 버거 해야겠다.

덧) 오탈자가 너무 많아서 화가 날 정도였다. 번역가는 ~로서와 ~로써의 차이를 제대로 알고 번역을 했으면 한다. 정말 너무 많아서 질려버렸다.

ex. 행위로서, 거리로서, 경험으로서, 저속한 것으로서, 전체로서의, 한 시스템으로서의....

*책 속의 문장

56. 남자들은 행동하고 여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남자가 보는 그녀 자신을 관찰한다.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 여자 자신 속의 감시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감시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그녀 자신을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153. 그러나 광고는 쾌락의 실제적인 대상을 제공할 수 없다. 어떤 쾌락을 얻는 본래의 방식을 떠나서 정말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광고가 따뜻한 고장의 먼바다에서 수영하는 즐거움을 더욱 확실히 나타내면 나타낼수록, 광고를 보는 구매자들은 자신이 그곳으로부터 수백 마일 떨어져 있고, 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자기와는 아무 멀리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광고가 선전하는 물건이나 기회를 아직 즐겨 보지 못한 구매자에게 진짜로 제공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178. 광고 안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광고 안에서 사건을 실제처럼 만들어 주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이내 명백히 드러났을 것이다. 광고가 보여주는 것들은 모두 장차 어떤 사람에 의해 획득되기를 기다린다. 획득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행동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고,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은 다른 모든 느낌들을 없애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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