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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미술 산책 - 그 그림을 따라
길정현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19년 10월
평점 :
내게는 가고 싶지 않은 나라가 몇 있다. 이탈리아가 그랬고, 스페인이 그랬고, 프랑스가 그랬다. 이유가 각기 다른데, 프랑스에 대해 말을 하자면, 모두 로망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에펠탑이 나한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탓이다. 철골구조물을 좋아하지 않다는 것을 넘어 싫어한다는 것이 첫 번째이자 마지막까지 아우르는 이유가 된다. 에펠탑을 보지 않기 위해 에펠탑 안에서 식사를 했다던 모파상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의미로 나는 포르투의 동 루이스 다리를 멋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건축을 공부하며 철골구조물에 대한 매력도 있음을 분명하게 배우기는 했으나, 나는 어쩐지 그것이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나오는 뼈’ 아니면 ‘공룡의 해골’처럼 보인다. 언젠가 이런 생각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바뀌지 않았다. 더불어,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가 철골구조물로만 건설되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처럼 열렬하게 사랑할 자신이 없다는 것도.
그러다가 1-2년 전이었나, 세계의 이곳저곳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여행을 부추기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에서 프랑스가 나왔다. 채널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남프랑스에 있는 어떤 건물이었다. 그걸 보자마자 나는 사진을 찍어두었고 다음날 배우자에게 여기 가보자고 말을 했는데, 그곳이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고 찍어둔 그 사진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찾다 못해 인연이 된다면 다시 내 앞에 나타나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더불어, <프로방스 미술 산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남프랑스를 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기쁘고도 난감하면서 설레는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복잡 미묘한 감정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진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설령 무엇 때문에 그곳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그게 주가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고 부수적인 것들도 내게는 필요하다. (물론 나는 여기 찍고 저기 찍고 식의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면 술도 먹어야 하고, 야경도 보고 싶고, 골목을 산책하고 싶기도 하고, 나른한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켜며 오랜 시간 카페에 앉아있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와는 다르게 주제가 명확한 여행이라니, 엄청 프로페셔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 궁금해서, 미술이 궁금해서 하는 여행이지만, 결국은 그 속에 녹아들어있는 ‘사람’이 궁금해서 하는 여행이겠구나, 어떤 여행일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래서 어떤 부분들을 따라가며 보아야 하는지도 조금은 보였고, 나는 그 속에서 어떤 것들을 보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13세기 무렵 로마인의 침략에 절벽 위까지 피난을 와서 마을을 꾸렸다는 에즈는 니체의 산책로는 너무 험해서 걷기가 힘들겠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미스트랄(육지에서 지중해 쪽으로 부는 차고 건조한 바람)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느릿느릿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게 생긴, (심지어 공짜 화장실이 있는) 카뉴쉬르메르는 남프랑스 여행을 촉진시키기에 충분히 차고 넘쳤는데, 그 까닭은 내가 찬미할 수 있는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였다. 가야겠다. 가봐야겠다. 자연은 예술가를 고독하게 한다던 그 말이 어디에서 기인한지는 모르겠으나, 눈으로 그가 있던 자연의 풍광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리고 마르크 샤갈이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던 생 폴 드 방스, 여러 화가들의 눈에 비친 모습이 인상적인 에트르타의 코끼리들, 마치 거제의 매미성과 부다페스트의 어부의 요새와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 낯익었던 (나만의 착각일지도), 몽 생 미셸의 수도원도 가보고 싶은 곳들이라며 동그라미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외에 하나의 커다란 놀이동산 같다는 모나코도 있고, 폴 세잔의 도시인 엑상 프로방스, 고흐와 폴 고갱의 충돌지역 아를, 앙드레 로테가 사랑한 고르드, 사무엘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구상했던 루시용,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떠오르는 아비뇽 등등, 두껍지 않은 책에 알차게 들어있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떠났지만, 작가는 그곳에서 책 속에 나열되지 않은 깊이 있는 다른 무언가를 더 많이 안고 돌아왔겠구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보는 것은, 모든 것은 조각이구나. 어떤 하나를 알고자 떠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전체를 보기 위함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여러 형태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고, 나는 그 조각들을 궁금해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보고, 잡아보기도 하고, 내려놓기도 하면서. 이제 나도 조각을 들고 퍼즐을 맞추러 가야지.
* 참, 가장 궁금한 것은 아무래도 ‘시드르(cidre)’이다. 스파클링인 것 같았는데 아닌 것도 있으려나. 개인적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알지도 못하는 맛인데도 입맛을 다시고 있다. 기회가 되면 마셔보고 싶은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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