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김나연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을 주로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책 표지에 쓰인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라는 제목이 보이지 않게 잘 가려서 읽었었다. (...작가님 죄송) 이제까지 내가 누군가의 사생활을 이토록 침해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부모님과 남동생, 남편말고는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우습게도 생면부지의 김나연 작가가 그 사람이다. 읽는 내내, 내가 이 사람의 사생활을 너무 깊이 들어온 거 아닌가? 이 정도면 침해 아니야? 허락된 무단침입을 감행했다, 내가.

 

 

이토록 솔직하고 대담하고 용감하고 거침없는 글이 존재하다니, 그런데 그 글이 밉지가 않다니, 오히려 더 빠져든다니. 이것은 내게 모순임을 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솔직한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나의 협소한 독서 경험으로는 솔직한 글들은 대개 고집이 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글들은 내가 읽기엔 아집으로 똘똘 뭉쳐져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물론 내가 이따금 쓰는 나의 보잘것없는 글들도 그런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의 이야기는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다. 더 깊숙하게 들어가 그의 내면과 그를 이루는 풍경까지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싶어지기까지 하다.

 

 

 

65. 왜, 보통 내가 누구한테 상처를 줬을 땐 나도 모르게 그러는 경우가 많잖아. 물론 작심하고 할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나는 사람들이 언제나 타인을 찢어발길 준비를 하고 산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렇다고 해도 내가 부지불식간에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게 무죄가 되진 않아. 상처를 받은 사람이 과민한 게 아니라, 거기까지 미처 배려하지 못한 내가 무심했던 거라고 생각하는 게 현대 지성인의 자세 아닐까?

 

그러니까 모르는 건 죄야.

늘 죄인의 마음으로 살아.

 

 

타인이 내게 무례함을 범한 순간들을 생각하다가, 내가 타인에게 무례함을 범한 일들을 생각한다.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면 나는 내가 사과를 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례함에 대해 사과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이건 일회성임을 안다. 나는 일회성 인간이다. 책을 읽어도, 공부를 해도, 다짐을 해도 일회성으로 끝나버릴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일회성은 많은 작용을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일회성 사과를 건넨다. 무수한 타인들에게, 내가 나도 모르게 범한 무례함에 대해.

 

 

 

97. 이상형

침대에서 독서와 섹스를 함께 할 수 있는 남자를 찾습니다.

 

많이, 제법, 꽤, 매우, 굉장히 멋있는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상형을 나는 J한테 보여줬다. 그는 매우 당당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본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웃긴 녀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멋있다고 생각했던 이상형을 나는 가지고 있었네. 라고 생각하니 좀 우스웠다. 각도에 따라 맞는 말이기도 했고, 틀린 말이기도 했으므로. 그와 나는 침대에서 밥을 먹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을 다 하기 때문이다.

 

 

 

218. Life is full of tragic comedies

사는 거 너무 어려운 게, 돈도 벌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책도 봐야 하고, 잠도 자야 하는데 그 틈틈이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날짜 맞춰 분리수거도 해야 돼.

 

책에는 가족과 사랑, 그리고 그를 이루는 주변의 풍경까지 말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작가의 ‘나 자신’이 되는 것이었다. 이 책에 대해 작가는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모르겠다고 한 점에 대해 어떤 독자가 “소설이 아니라면 어쩌려고...” 라며 난색을 표한 서평을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이 책이 솔직하게 쓰인 일기였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내밀한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응어리도 풀어내었으면 싶었고, 외로움의 냄새에 대해서도 좀 더 다가갔으면 싶었다. 그 외로움의 냄새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으면 싶기도 했고 이따금은 외로움의 냄새를 껴안아줄 어떤 다른 향의 냄새와 뒤섞여 외로움의 냄새가 좀 옅어졌으면 싶기도 했다. 비록 연두색 별이 뜨는 방 천장에서 쓴 글은 아니(겠)지만, 마음에 연두색 별을 간직한 채로 성장한 한 인간의 일기를 나는 게걸스럽게 먹었고, 만족감에 트림도 마음껏 토해냈다.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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