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일 :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
전혜진 지음 / 구픽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임신한 여자와, 임신이 안 되는 여자와, 임신을 기다리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은주, 재희, 지원, 은주

 

 

임신을 하고 나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작가는 이들을 빌려 말하고 있다.

다 읽고 나니 두 가지가 선명하다.

A. 임신을 말했을 때 회사의 반응과 B. 임신 기간 동안 신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들.

 

 

A. 선경은 아이를 두 번을 유산했다. 임신을 반기지 않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임신을 성공했을 때 회사에서 보인 입장은 유세를 떤다고 말을 한다. 정말 저렇게까지 말을 할까 싶어서 소름이 돋았다. 결국 선경은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데 마지막 선경이 토해낸 말들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경은 뒤로 갈수록 참 유난이긴 하더라만, 임신을 안 해봐서 그렇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B. 나는 임신 기간이 체질일 정도로 수월하게 잘 보낸 사람을 안다. 또 임신 기간 동안 무척 힘겨웠던 사람도 안다. 이건 개인의 탓이 아니다. 그런데도 후자의 경우에는 자신을 탓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행복한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미웠다고 했다. 그들은 수월하게 임신기간을 보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2.

내가 앞서 선경에 대해 유난이라고 했던 부분은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알지, 아이가 가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도 그 간절함이 엿보여 임신에 성공하기를 바랐으니까.

 

그런데 의사가 제왕절개를 권유하는 부분에서 자연분만에 대한 미련, 모유 수유에 대한 의견,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돌잔치 언급, 정신이 없어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둘 겨를이 없었다는 남편에게 나가라고 소리 지르는 부분에 대해 정말 질렸다.

 

 

368.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신 얼굴은 하나도 안 궁금하니까 애들 사진을 내놓으라고. 그리고 울고 싶은 건 내 쪽이니까 자기 연민에 취해서 죽다 살아난 아내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자신에게 잔뜩 도취된 채 헛소리하지 말라고.

 

371. “제발 좀 닥쳐. 지금 내가 너무 힘들어서, 당신이 징징거리는 걸 참고 들어 줄 수가 없어.”

 

 

그러면서 남편이 곁에 있는데 은주랑 통화하면서 오열을 하더라-

물론 그전에 남편이 욕을 먹을 만큼 잘못한 게 있긴 했었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인 것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느끼는 거북함은 오롯하게 나만 그런 것일까.

 

 

 

 

3.

14. 하지만 세상은 이 나이의 여자들이 자기 인생이 있고 자기 일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아 줄 생산 자원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저출산이라고 한다.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고자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중 정말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한 건, 신혼부부에게 주택 매입 및 전세자금 대출이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결혼을 시켜서 출산을 늘리겠다는 취지 같았는데, 결혼은 하되 출산은 하고 싶지 않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출산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헛웃음이 나왔던 대책 방안이었다.

 

아이 위주의 개선보다는 부모 위주의 개선이 더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도 일자리가 보장받을 수 있는 것, 남성의 육아휴직을 권고하는 것 같은 것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부분은 참 많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저출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니까.

 

 

 

 

4.

나는 딩크다. 이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지금도 명확하게 어떤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지만, 그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여전히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대한민국이 아니라 그 어떤 나라에서도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지 못하겠다. 나에게 환경이라는 것은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단지 내가 아이를 낳기를 거부하는 것은, 나는 그러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아요.” 혹은 “아직 부모 될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라는 말에 돌아오는 말은,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돼.” 였다. 하지만 내 주변을 포함하여 뉴스에 나오는 생면부지의 그들은, 아이를 낳아도 부모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근래에 읽고 있는 <상처 주는 엄마와 죄책감 없이 헤어지는 법>을 읽으면서,

내 엄마의 모습을 보았고 아이가 있다면 너무 분명하게 나의 모습도 포함될 터였다.

 

 

나는 진실로 무서웠다.

언제나 태어난 동물을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은, 나한테는 너무 어렵고 두려운 문제였었다.

하지만 나의 고민을 타인은 너무 쉽게 묵살하고 무사하고 말로써 폭력을 가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아이를 잉태한,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그 부분을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생각을 존중받은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로 인한 반항일지도.)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적어도 그들을 비난하거나 배척하거나 힐난하거나 불평하거나 비꼬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경외심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나는 지레 겁먹고 포기해버린 부분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 대한 도전 정신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5.

<280일 :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를 읽으며 하마터면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릴 뻔했다.

나는 그 책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이므로 이 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지닐 뻔하였으나,

끝마무리에서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내 멋대로 해석하자면, 아이를 갖기에 앞서 충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점.

 

 

 

 

6.

나한테는 명분이 필요했다.

실제로 나는 결혼 후 아이가 있는 부부에게 자주 물어보았다.

어떻게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게 되었느냐고.

적어도 한 번쯤은 새롭고 놀라운 대답을 들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고.

가장 진부했던 건 결혼했으니 당연히 낳아야 하지 않냐. 는 것이었다.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은 예행연습이 없기 때문에,

신중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와는 절교할 수 있고, 연인과는 헤어질 수 있고, 부부는 이혼할 수 있다.

시기를 놓쳐 공부를 하지 못했다면 다시 시작하면 되고,

사업이 망했다면 다시 일어나거나 남의 밑에 들어가서 일을 해도 된다.

 

늦기는 하겠지만, 모든 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탄생과 죽음은 '다시 시작할 수 없음'이다. 되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탄생'은 '축복'이고,

모든 '죽음'은 '슬픔'이다.

 

 

 

 

7.

나는 이 책에서 한 쌍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부부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네.

 

 

 

 

8.

책에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만 써놓았는데, 아이를 양육하는 환경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게다가 외압(양가 부모님)까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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