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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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에 앞서 나는 맥주를 1리터가량 먹은 상태이고, 지금은 클래식FM에서 비발디의 겨울이 나오고 있다. (2019.05.19. PM9:22) 이렇게 써두고 나는 익스플로어를 껐다. (;;;) 그리고 이틀 정도 지난 오늘, 다시 이어서(?)(도대체 뭘?) 쓰는 서평.

이 말을 꼭 쓰고 싶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처음이다. 라는 말. 들은 말이 많았다. 그 작가의 책은 어렵다, 심오하다, 잘 읽히지 않는다 등등. 그런데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은, 뜬금없게도 책 제목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랭 드 보통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우리는 사랑일까>인데 사실 제목치고는 조금 가볍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으니까. 그런데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는 물음표가 가득 메워지는 것. 나의 경우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펴보고 그 이후로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하고 기피했는데, 한 이웃님의 서평을 보고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 생활에 대해 쓰인 책들을 찾아 읽게 된 게 결혼한 지 몇 년째 되던 해-라고 명명할 수 없을 만큼 주기적으로 있어왔다. <엄마의 주례사>를 2014년 이맘때 즈음에 읽었고, 그 이후에도 힘들 때마다 손에 쥐고 읽어나갔다. 2014년에 처음 쓴 서평을 읽어보니 결혼했다는 느낌이 없다고 쓰여있었다. 그때의 서평을 읽으니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아 맞아, 그랬어. 큭큭. 지금은 웃음이 난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이유로 하지만 완전히 다를 수는 없는 이유로 울음도 새어 나온다. 그때 결혼 생활이 힘든 것은 적응이 느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다. 결혼 생활이라는 건, 여전히 좋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어렵고 힘들다. 즐거움과 힘듦이 공존하는 생활이라니, 이런 생활이 가당키나 하단 말이야? 어후, 절레절레-

16.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나는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사랑은 사랑으로써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낭만이고 로망인 동시에 현실에 스며드는 것이라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낭만과 로망이 현실을 갉아먹으면 안 되지. 그러는 순간부터는 현실에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충돌을 하니까. 그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어땠을까마는, 지금이라도 아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래전의 당신을 떠올린다. 그때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엄연히 다르지만, 사랑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한다. 그때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이 모양이 달라졌고, 깊이 또한 언제가 더 깊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31.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 그들 역시 혼란스러워하고 망연자실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지지자라는 새 역할을 부여받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더 가까워지게 된다.

평택에서는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았기에 그는 나를 많이 배려해줬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징징거렸고 그는 그것을 받아주었다. 적응하느라 힘들겠지,가 그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을 테다. 그러다가 진주로 이사를 하고, 또 대구로 이사를 하면서 그런 배려가 사라졌다. 나도 처음인 만큼, 그도 처음이었으니까. 그렇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를 미워하면서 그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신도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구나. 라고 느끼는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당신도 많이 힘들구나.

결혼 6년 차에 깨달은 것.이 그것이었다.

배우자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결혼 생활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는구나.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를 힘들게 하니 그가 미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여전히 나는 미움과 가엾음의 사이에서 방황한다.

여보, 이제 그만 미워하게 할 때가 됐어. 알고 있어?

58. 그가 청혼한 것은 그와 커스틴이 서로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을 보존하고 '동결'시키길 원해서다. 그는 결혼이라는 행위를 통해 황홀한 기분이 영원해지길 기대한다.

59. 라비는 어느 한 느낌과 결혼하여 그 느낌에 영원히 고착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특별하고 순간적인 일련의 상황들에서 운이 좋게도 그런 느낌을 공유하게 된 사람과 결혼하려는 것이다.

이것 사이에는 어쩐지 조금 괴리가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건 이해하기 나름인 것 같다.

동결시킨 감정을 꺼내어보는 일.

그게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좀 알겠다.

그것은 이따금 현실의 나를 부정하게 만들기도 할 텐데,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것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낭만/과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74. 그럼에도 별것 아닌 일들이 두 사람 사이에 계속해서 놀랍도록 자주 끼어든다.

라비와 커스틴은 유리컵 하나로 다툼이 시작된다.

고작 유리컵 하나로!

하지만 고작,이라는 명사를 붙이기에는 좀 미안하다.

결혼 생활 중에 나타나는 다툼은 연애할 때의 다툼보다 더 사소하고 시시하며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78. 사실 라비와 커스틴의 결혼 생활에서 '아무것도 아닌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말다툼은 거의 없다. 작은 쟁점들은 사실 단지 필요한 관심을 받지 못한 큰 쟁점들이다. 일상에서의 논쟁은 그들 성격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어져 나온 실밥이다.

작은 쟁점은 더 큰 쟁점으로 언젠가 다시 나타나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성격의 사람이 함께 한 집에 산다는 게 쉽지 않다.

그렇기에 당연히 크고 작은 쟁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위에서 나는 /사소하고 시시하며 보잘것없다/고 말했지만,

그것들은 지나고 나서야 아 진짜 시시했네~ 하지,

당시에는 (우습지만) 그것이 결혼 생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쟁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77. 바다흐샨의 부상당한 아이에게 피를 나눠주거나 칸다하르의 어느 가족에게 물을 날라다 주는 것이 아내에게 몸을 기울이고 미안하다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울 듯하다.

이 부분 너무 웃겨서 나도 그이한테 보여줬다.

나는 그가 사과를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명백하게 잘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지가 않다.

그런데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

나는 명백하게 내가 잘못한 경우에도 역시, 좀처럼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저 문장은 아마 나한테 하는 말 같다는 말을, 나는 그에게 하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잘도 하고,

안내 데스크에 뭔가 물어볼 때도 “죄송한데~”로 시작하는 나를 대입하면 그를 포함한 나의 친족에게만 그렇다.

언젠가 그는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여보한테 자존심이야?”

그 말을 듣고 생각난 것이 있다.

대여섯 살의 나,

책 열 권을 들고 팔을 올리고 무릎을 꿇고 벌을 선 적이 있었다.

발가락이 저렸고, 팔이 바들바들 떨렸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아빠는 내게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부드럽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상태로 한 시간을 유지했다.

그리고 정말 참지 못하겠을 때 잘못했다고 말했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면 끝날 것을 나는 고집을 많이 부렸다고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좀 나아진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다시 도졌다.

나만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일까. 나만 잘못한 일도 몇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라비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말이다.

그렇다.

나는 그냥 변명을 하고 있는 거다. (허허)

79. 협상을 위한 인내심이 없으면 비통해진다. 원인도 잊은 채 화가 나는 것이다. 잔소리를 하는 쪽은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내려고만 하고, 잔소리를 듣는 쪽은 자신의 반발이 합리적 반론이나 그도 아니면 가엾고 용서받을 만한 성격상의 결함에서 나온 것임을 더는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양 당사자는 그들에게 똑같이 지루하기만 한 이 문제가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내가 아마 이 책을 1년 전쯤 읽었다면 어땠을까, 공감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협상을 위한 인내심이라니! 협상을 하는 데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왜?

... 하지만 이제는 안다.

협상을 하는 데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은영 박사의 <화해>에서 /새 날이 밝았구나/를

내 배우자에게 아무리 대입을 시켜도 인내심의 범위는 넓어지지 않았다.

협상은 되지 않고, 더불어 인내심도 넓어지지 않으니,

크고 작은 모든 문제가 그 문제로 귀결되기 시작했다.

81. 일상적 문제에 시달리는 관계는-이상하고 무익하게도- 도외시되는 주제로만 남는다. 자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양극단, 즉 더없이 행복한 관계 아니면 살인적인 파국이다. 그래서 미성숙한 분노, 한밤의 이혼 협박, 부루퉁한 침묵, 쾅 하고 닫혀버리는 문, 평상시의 부주의하고 잔인한 행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로 인해 얼마나 외로움을 느껴야 하는지를 가늠해보기가 쉽지 않다.

음~ 난 이런 문장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이해가 된다는 게 억울하기까지 하다. 너무 잔인한 일이야.

86.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덧붙이자면, 토라짐의 대상자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벨라 왜 그래? 또 말 안 해?”

“말을 해줘.”

... 아몰랑 하나로 다 해결되는 것이,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이라니.

아몰랑으로 인해 다툼이 더 심화되는 경우는 어쩐단 말인가.

나는 전이나 지금이나 입을 다문다.

예전에는 화가 나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화난 이유가 뭔지 정말 모르겠어? 라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말을 하다가 더 화가 날 것 같아서.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고.

결혼 전에 내가 말을 하지 않거나 대꾸를 하지 않으면 엄마는 말하곤 했다.

“또 삐졌어?”

... 안 삐졌어!!!! 삐진 게 아니라 화가 난 거야!!!!!!!!!

180.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의 두려움과 불안정함은 관계가 시작될 때 한 번만 경험하고, 일단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공동 명의로 대출을 받고, 집을 구입하고, 자녀를 몇 낳고, 유언장에 서로의 이름을 넣는 등으로 명시적인 약속을 맺은 후에는 불안이 사그라질 거라고들 상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간격을 극복하고 우리가 필요한 존재라는 보증을 획득하는 일은 단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그런 일은 틈이 생길 때마다-외박, 바쁜 기간, 야근- 반드시 반복된다. 모든 막간에는 상대가 여전히 나를 원하는가라는 의문을 매번 새롭게 되살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보증이 대단히 필요하다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기분 좋게 인정할 만한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여러 해를 함께 보낸 후에도 욕구의 증거를 요구하려면 두려움이 가로막는다. (…)

나는 그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여보는 나랑 헤어지면 아마 다른 사람을 못 만날 거야.”인데, 이것은 그가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완벽하게 ‘벨라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더 다른 이유로 그와 헤어지면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데, 그는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인 까닭이다. 우리 오늘 뭐 하기로 했지? 라는 물음에 사랑- 하고 대답하는 사람. 물론 그 사랑이라는 녀석은 형태와 성격이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사랑 말이다. 그는 그것을 잘 안다. 나는 무척이나 감사하게도 매 순간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과 잦은 회식, 늦은 시간의 귀가 등등의 이유로 이 사람이 나를 생각은 하고 있는 건가? 나는 도대체 이 사람한테 뭐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에너지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단순하지 않다.

언제라도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다.

어쩌면,

취급 주의 스티커가 백 개는 붙어야 하는 물품인 셈이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점은,

그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277. 결혼한 지는 16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좀 늦게 라비는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 사실상 그는 적어도 열두 번은 이혼과 재혼을 겪어온 셈이다. 오직 한 사람과 말이다.

...이 글을 보고 솔직히 좌절했다.

16년? 16년이라고?!!!!

280.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 몇 가지가 나오는데, 사실 나는 그것들을 다 공감할 수는 없었다.

이해되기를 단념한다...는 문장이 개인적으로는 매우 안타깝게 느껴진다.

결혼 6년 차인 나는, 더 이상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사람의 감정이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했던 나는,

나의 감정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며 참을 수 없는 회의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 감정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었다.

호랑이 탈을 쓰다가도 양의 탈을 쓰기도 했다.

똑같은 일에 대해서도 오늘은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내일이 되면 내 모든 분노가 구더기 안에 들어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사실에 입각하여 인정을 하려고 하면, 왜? 라는 말보다 그래, 그건 그런데- 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을 경험했다.

278.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그와 결혼 생활을 6년째 지속하고 있지만, 최근 1년이 정말 최악이었다.

어째서? 왜? 또? 라는 말을 습관처럼 말했고, 그에게 나는 이래서 당신과 살 수 없어. 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이미 알고 있던 그의 모습에서 억제되어 있던 것들이 분출하는 것을 느꼈고,

그것에 대한 변명은 너무나도 많았다.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도 인간이라면,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도 인간이니까.

늘 좋은 환경이,

늘 좋은 상황이,

있을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우리에게 좋은 양분들만 채취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때라야,

그 환경과 상황이 좋았다고,

우리는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일 테니까.

65.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고.

그 행복의 가치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많이 다른 것이겠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어떤 불행이 와도 이 사람이라면 함께 이겨낼 수 있겠다는 확신,

그것을 우선으로 두어야 하겠다고.

생은 , 결코 단순하지 않다.

매일 좋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매일 나쁘지만도 않다.

매일 좋지 않다는 건 불행으로 여겨지지만,

매일 나쁘지 않다는 건 다행으로 다가온다.

정말 한끗차이.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며 살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가진 최대의 강점이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

달려갈 때가 있고,

쉬어갈 때가 있지.

그때를 나와 당신, 우리.가 잘 알아차리기를 바란다.

그것에 맞게 우리의 행동반경이 확장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도 지내고 있다.

나 너무 행복해!

나 너무 불행해!

를 반복하면서.

성장하다가 멈추다가 퇴화하다가 다시 성장하고 또 퇴화하고 멈추고의 반복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가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저 과정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물론, 지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당신과 나, 나와 당신.

그렇게 천천히 우리가 되어가기를.

/

결혼이, 결혼 생활이 뭐냐고 묻는다면,

재작년까지만 해도 사랑이 깃든 다정하게 건네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서로를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이 추가되었다.

몇 년 후의 나는 또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궁금하다.

그래서 남기는 서평.을 빙자한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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