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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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들은 정말 폭풍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숨 고르기를 하며 책을 읽은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숨이 턱턱 막히는 책은 없었다. 이 책을 읽은 한 줄 평은 연극 라이어를 본 느낌이라고 짤막하게 요약할 수 있다. 이유라함은, 것은, 존!!! 스미스!!!! 호모!!!!!!! 보기만 하고 듣기만 해도 숨이 차고 내 목이 다 아픈 것 같았던 그 느낌. 이 책이 그랬다. 읽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오고 최고조의 스트레스에 올랐다. 등장인물들이 어째서 이렇게 하나같이 다 악다구니를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제3자일 뿐인데, 내가 정신질환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 쓰는 것이 조금은 걱정도 된다. 이 서평 역시 악다구니를 쓰며 써재끼는 그런 글이 될까 봐.

록우드는 드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를 든 사람으로 집주인을 만나기 위해 워더링 하이츠로 간다. 그런데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뭔가 기괴하고 괴기스럽다. 록우드는 이들이 궁금하다. 다시 한 번 워더링 하이츠를 찾았을 때는 눈보라가 심하게 치는 날이었고, 발이 묶인 그는 그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그 집에서 캐서린의 일기장을 읽다가 잠이 든 록우드는 꿈을 꾼다. ‘캐서린 린튼’이 나오는 꿈(이라기보다는 악몽)을. 드러시크로스 저택으로 돌아온 그는 열병을 가정부인 엘렌 딘(넬리)에게 드러시크로스워더링 하이츠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리버풀로 출장을 간 언쇼 (힌들리와 캐서린의 아버지) 씨는 ‘누더기를 걸친 새카만 머리의 더러운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드러시크로스와 워더링 하이츠의 모든 재앙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무책임하게 언쇼 양반은 죽고 만다.)




133. “나는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에드거 린튼과 꼭 결혼할 필요도 없는 거지.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던들 내가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136. “(…) 이 세상에서 내게 큰 불행은 히스클리프의 불행이었어. 그리고 처음부터 나도 각자의 불행을 보고 느꼈어.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생각한 것은 히스클리프 자신이었단 말이야. 만약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역시 살아갈 거야. 그러나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없어진다면 이 우주는 아주 서먹해질 거야. 나는 그 일부분으로 생각되지도 않을 거야.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




캐서린 언쇼가 넬리에게 하는 말을 들은 히스클리프는 떠났다. 복수심을 안고서. 캐서린 언쇼는 에드거 린튼과 결혼하여 캐서린 린튼이 되었다. 그의 결혼생활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히스클리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히스클리프가 나타나면서 모든 것은 엉망이 되어버리고 만다.



힌들리의 죽음, 캐서린의 죽음, 캐서린(캐시) 린튼의 탄생, 린튼 히스클리프의 탄생, 이사벨라의 죽음, 에드거의 죽음 …

모든 일들이 무척이나 급하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천천히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그러한 사건들은 린튼이 캐시를 바라볼 때를 제외하고는 평온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히스클리프는 꼭, 이미강의 <푸른 수염의 아내>에서 나오는 남편을 연상시켰고 그때 알아차렸다. 아! 나 그 책 읽을 때도 이렇게 숨이 막혔는데 - 하고.





550. ‘그런데 사람 좋은 언쇼 어른이 데려다 길러 결국 자신의 재앙의 씨가 된 저 검은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편협한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을 퍽 신뢰하고 살았다. 물론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었겠지만, 티브이에서 나오는 몇몇의 범죄 사건들을 통해서 더욱 그 믿음은 확고해져만 갔다. 나에게는 일종의, 배우자와 이혼을 하거나 사별을 하고 노년에 만나는 사람과는 만남을 유지하되, 절대로 혼인신고는 하지 않겠다는 가치관처럼 견고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편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뽑을 생각도 못했던 그 가치관이 더욱 고착화되는 것을 느꼈다.





287. “배반이나 폭력은 양쪽 끝이 뾰족한 창과 같아서, 그것을 쓰는 사람이 그걸 받는 사람보다 더 크게 다치는 법이지요.”


히스클리프는 마땅한 벌을 받았을까?

누군가는 며칠 동안 캐서린의 환영을 보면서 먹지도 자지도 못할 정도의 괴로운 벌을 받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한 사람도 아니고 몇 사람의 생을 그렇게 망쳐버린 그가, 마땅한 벌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겠다. 어떤 한 사람의 생을 파괴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롯이 스스로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일 뿐이었다. 그는 그런 특권을 짓밟아버렸다. 특히 헤어튼에게서.


나는 교육은 8할이라고 생각해왔다. 인간이라는 것은 동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온 까닭이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심지어 부모에게서도 사랑을 받지 못한 채로 자라난 헤어튼의 모습을 보며, 인간이 되지 못한 동물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헤어튼 언쇼_ 어떤 이는 말했다. 어차피 헤어튼은 마지막에 행복하니 된 것 아니냐고. 결론이 행복하니까 어쨌든 그는 행복하다. 라고. 글쎄. 그렇기 때문에 그는 행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그게 행복이라는 것을 알까? 그는 이제 그게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것일 뿐이다. 그에게 처음부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회로가 있었을 리 없다. 선택권이 있었을 리도 없다. 그에게 이제야 주어진 것이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등장인물들 속에서, 그래서 힘겹기만 했던 책 읽기에서도, 유독 마음이 가던 헤어튼이 즐겁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자문했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했던 걸까? 이 책은 사랑을 말하고 있는 걸까?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혹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필시 우정에 관한 사랑이라고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나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런 사랑을 본 일이 없다. 혹여라도 이것도 사랑의 한 종류라고 말한다면, 나는 세상이 모든 사랑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을 잘 주는 사람만이 사랑을 잘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마음에 담아두어야지. 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잘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써놓고, 생각했다. 사랑을 잘 주는 사람도, 잘 받아본 일이 있으니 잘 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내가 받는 크고 작은 사랑들을 놓치지 않고 사랑이라고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사랑을 잘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로 고쳐야겠다. (나는 이 책이 사랑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명명백백 말하고 있으면서도,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캐서린이 죽기 전에 금빛 크로커스를 보고 기쁨에 반짝였는데, 찾아보니 참 예쁜 꽃이다.




 

​/ 책 속의 글

23. “참 이상하지요. 습관이라는 것이 우리의 취미나 관념을 만들어 버리니까요.”


102. “10시까지 누워 계시면 안 돼요. 그때는 벌서 아침의 가장 좋은 시간이 지나버리니까요.




/ 책 속의 등장인물

록우드

힌들리 언쇼

캐서린 언쇼

히스클리프

​에드거 린튼

이사벨라 린튼

헤어튼 언쇼

캐서린 린튼

린튼 히스클리프

엘렌 딘

질라

조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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