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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이라는 무기 - 자극에 둔감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롤프 젤린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18년 7월
평점 :
나는 내가 예민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 예민함을 긍정적일 때보다는 부정적일 때 더 많이 느꼈기 때문에, 예민함이라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좋을 리가 없었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 나의 예민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마 내가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몇 번 꺼내어 말한 적 있었던, 맞벌이 부모 밑에서 크는 첫째가 가질 수밖에 없던 것들. 물론 그런 상황이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그때 생각했던 것은, 차라리 내가 학원에 맡겨졌으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라는 것이 지금의 내 판단이었다.
나는 남동생과 함께 이모라고 부르던, 생판 남인 엄마의 친구에게 맡겨졌던 적 있다. 기간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곳에 있었던 A와 B는 남매였고 C와 D도 남매였다. 하지만 A, B, C, D는 친인척 관계였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이었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 중 나와 남동생만 엄마가 부재했다. 엄마가 부재했다는 것은 그렇게나 컸다.
엄마의 퇴근 시간이 되어 우리를 데리러올 때면, 나는 나의 영역에 들어온 듯 그렇게나 어깨가 으쓱거리기도 했지만 어떨 때는 두렵기도 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다시 한 번 곱씹어야했기 때문이었다. 이모들이 우리를 혼내는 적은 없었다. 다만, 엄마가 오면 우리들의 행동들을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그걸 나는 노는 척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물론 좋지 않은 얘기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엄마는 우리를 그곳에 둔 '잘못'으로 우리를 혼내지는 않았다. 그저 혼내는 척했을 뿐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나와 남동생이 이모들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는지, 눈치 없이 굴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나는 재빨리 파악해야만 했다. 이모들의 말투, 행동, 눈빛에서 나는 모든 것을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예민한 아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전의 '나'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기 때문에 내가 그전에도 그러한 성향을 가졌는지 어쨌는지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알 길이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때부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나의 기질 중 하나인 예민함을 자주, 많이 탓했다. 예민한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여전히 가슴 한편에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예민함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보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어떻게 예민함이 무기가 될 수 있지. 나는 이렇게 피곤해 죽겠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들었다.
68-69. 사실 예민함 자체는 거슬리고 튀는 행동을 초래하지 않는다. 방해만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자기 지각에 맞서 싸우고(지각을 억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려는 노력 때문에 다양한 부작용이 생긴다. 이런 어긋난 적응을 하려는 노력은 우선 자신의 신체를 지각하지 못하게끔 하며, 자신의 필요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로 만든다. (…) 자신의 신체를 지각하는 대신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점점 더 많이 지각하다 보면 힘들어지고 무력감에 빠진다. 이런 느낌은 '위험한' 외부 자극을 더 강하게 지각하게끔 한다. 그렇게 되면 외부 자극에 더욱 부담을 느끼게 되며, 이것은 다시금 예민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제대로 지각하지 못한 채 무기력으로 빠져들게 한다.
156-157.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경계가 무시되면, 뭔가 불쾌한 기분이 느껴지고, 심한 경우 갈등이 생긴다. 예민한 사람들은 본질상 균형과 화목을 중시하는데, 종종 경계를 무시함으로써 긴장, 시비, 불화 등 자신이 가장 원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생기면 더욱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화목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 다시금 자기 자신을 무시한다. 그러면 또다시 자신의 경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토록 원하던 것과 달리 평화와 조화는 멀찌감치 도망가버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읊조렸던 것. 나도 이런 사람에 속할까? 정답은 예스였다.
예민함으로 똘똘 뭉친 나는, 지금도 여전히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편이다. 특히나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그랬다. 출근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컸던 것도, 취업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급한 것도 아니었는데, 처음 들어간 회사는 단추가 잘못 꿰어져 나는 한 달 만에 퇴사를 하고 나왔다. 내가 아닌 다른 직원에게 실장은 욕설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육두문자 그대로, “야 이 미친년아, 그것도 못해?”라고. 그 직원의 다음 차례는 꼭 우리 같았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그 회사를 나온 건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아니, 더 빨리 빠져나올걸. 하며 좀 후회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최근에 정말 힘들었을 때,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에게 자주 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만 이렇게 저렇게 하면~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예민함 때문이라면 나의 태도를 수정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고,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153. 우리는 경계에서 성장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세운 경계에 서있다. 나의 경계는 어디인가.
148-150페이지에서 우리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이 우리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구역을 침범했을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이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 보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정확히 관찰하는 테스트가 있었다. 그 테스트를 하면서 나의 행동들을 깊이 탐구했던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157. 경계를 감지하기
우리가 안정감을 느끼고, 최대한 재능을 펼치고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구역을 확보하면, 우리는 이런 경계 안에서 가장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체 상태에 주의하여 유쾌한 지점과 약간씩 불쾌해지는 지점 사이 과도 지대에서 자신의 경계를 감지해야 한다.
가령 두 사람 간의 경계는 그 두 사람이 서로 최대한 잘 지낼 수 있는 영역에 있다. 이런 경계는 작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스스로 가진 예민한 성향을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를 확보하는 데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164. 우리는 자신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 상대방의 기대와 요구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경계를 견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끝까지 물러나지 않으면 상대는 우리를 존경하고 존중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나는 내가 세운 경계에서 나의 인간성이 무시되는 듯한 것들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했다. 결국 그것들은 더 커졌고, 나는 그곳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세상의 모든 회사가 이런 환경밖에 없다면, 나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좋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이 지쳤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격적인 예의가 빠졌다는 사실은 나를 힘들게 했다. 그것이 나의 경계였다. 말을 하면 할수록, 그들에게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 하나뿐이었다. 사회에서 맺는 인간관계가 이렇게 힘든 것이라는걸, 나는 처음 깨달았다. 나는 사회부적응자인가, 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자책하고, 나 자신을 힐난하기에 이르렀다.
146.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지? 이 일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를 물어야 한다.
200-201. 의식적으로 사고하려면, 우선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지각해야 한다. 종종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라고 물어라. 그래야 비로소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지 아니면 생각을 바꾸고 싶은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자신의 정신 능력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자주 들여다본 시간이 아마 그때였지 않을까 싶었다. 6월의 끝.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안락, 나의 평온만 생각했던 때.
177. 예민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자극을 더 많이, 더 강하게 받아들이며, 맺고 끊는 것을 잘 못하고 경계를 긋는 걸 힘들어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자극들을 처리해야 하고, 자극들에 더 오래,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더 다그치고 더 쉽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주변 세계를 위험하고 위압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스트레스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273-274. 결점에서 강점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강하게 지각을 한다. 나는 이런 강점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보고, 더 다채로운 체험을 하고, 더 민감하게 자극들을 연관 짓는 능력들을 잃고 싶지 않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의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높은 감수성으로 인해 더 민감하게 괴로움을 느끼지만, 그만큼 더 민감하게 기쁨과 행복도 경험할 수 있다. (…) 우리가 자신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높이 평가하고, 스스로의 지각을 조절하고, 자극과 정보의 처리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고자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재능은 우리에게 축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책은 내가 예민하다는 사실을 여러 논리와 사례로 입증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시에 예민함이라는 성향이 지닌 보편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일깨운다. 자신의 성향을 결점에서 강점으로 바꾸어 나가라는 것. 바꿀 수 있다고 강하게 조언하고 피력한다. 높은 감수성으로 인해 더 민감하게 괴로움을 느끼는 반면, 더 민감하게 기쁨과 행복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비가 오는 날 밟은 물웅덩이에 질척거리는 신발처럼 없애버리고만 싶었던 예민함을, 처음으로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이론을 앎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예민함이라는 성향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희망 같은 것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