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세상의 끝 포르투갈
길정현 지음 / 렛츠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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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보자마자 아줄라주! 포르투갈! 하며 반가워했다. 게다가 현재의 삶이 썩 만족스럽지 못한 탓에 작년 이맘때 즈음에 다녀왔던 포르투갈이 너무나도 과격하게,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리워져서 나는 포르투갈에 대한 그리움을 필터를 거르지 않은 채로 내비쳤다. ‘우리 작년 오늘 뭐 하고 있었는데, 우리 이 시간에 이거 하고 있었잖아.’ 하면서 그때의 철없는 시시한 행복들이 생각나서 울먹울먹거리다가 결국 나도 모르게 와르르 울음을 쏟아내버리던 이번 여름. 그렇다고 포르투갈에서 우리가 대단한 걸 한 게 아니었다. 관광지를 순회하는 그런 여행을 한 것도 아니었다. 손을 잡고 걷고 밥을 먹고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어딘가를 갈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곳은 그런 곳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곳.


작년 포르투갈 여행을 앞두고 포르투갈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을 때, 포르투갈'만' 다룬 책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스페인과 엮인 여행서적이 많아서 왜 포르투갈은 독자적이지 못하고 스페인에 껴서 나올까? 포르투갈은 그만한 존재감이 없는 나라인 걸까? 하고 반문했다. 하지만 다녀온 포르투갈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고작 열흘 남짓만 있었을 뿐이었지만, 아쉽고 아쉬운 곳이었다. 내가 포르투갈 여행기를 낼까? 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하며 철없게 해사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데 포르투갈 여행기라니. 여행 지침서 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여행 이야기가 가미된 여행서라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8. ‘아무리 그래도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회사에 하루라도 더 붙어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주위에서 달래주었지만 이미 내 삶에서 그런 승패는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그녀가 포르투갈을 여행하기로 한 마음을 먹은 이유가, 근래에 내가 포르투갈을 자주 생각하는 이유와 너무나도 동일해서 놀랐다. 회사라는 프레임 안에서 나만 힘들어하고, 나만 못 견디는 것 같고, 나만 질질 짜는 것만 같았다. 종전에는 이러한 현상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힘들면 나름대로의 힘듦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고안했고, 그것들은 내게 꽤 큰 위안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로 내가 그동안 너무 자만하며 살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분명, 타인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 역시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며 살았던 까닭이었다. 그녀는 회사가 힘들기 때문에 도망을 친 곳이 포르투갈이라면, 나는 회사의 문제로 인해 힘든 상태를 지내고 있는 상황에서 도망치는 곳이 작년에 다녀온 포르투갈이 있는 기억 저편이었다. 같은 마음으로 함께 여행을 할 수 있겠다는 그녀의 여행을 통해서 나 또한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포르투 in, 리스본 out의 여정이었던 그녀의 여행에는 포르투와 리스본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녀는 포르투와 리스본 외에도 피냥, 브라가, 아베이루, 코스타노바, 레이리아, 파티마, 투마르, 바탈랴, 알코바사, 오비두스, 신트라 등 근교 여행을 많이 다녔다. 나는 근교라고 해봤자 신트라에만 다녀왔던 터라 다른 지역도 궁금했는데 그녀의 여행을 통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처음에 여행 계획을 짤 때에 아베이루와 코스타노바는 포르투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어 다녀오려고 생각했던 곳이었지만, 포르투에 있는 시간만으로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결국 가지는 않았던 곳들이었다. 내가 그때의 시간에 다시 놓여진다면, 아베이루와 코스타노바를 갔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그렇다면 아마 포르투에 있는 시간을 하루 정도 더 연장했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하하. 그러면서도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베이루의 운하에서 한가로이 배를 타고 떠다니고 싶기도 했고, 줄무늬 마을인 코스타노바에서 대구탕 한 사발을 들이키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알아보지 않은 도우루 밸리는 사진을 보고 마음이 동해 좀 더 찾아보았다. 뭔가 근사한 할 거리가 있는 지역은 아니지만 “여기 가보고 싶어. 이곳에서 며칠 묵으면 정말 좋겠는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내가 있다는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테주 강이 바다가 아니라 강으로 불린다는 것에 당시에도 그랬지만 책으로 보면서 여전히 감탄했고, 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열심히 포르타 두 솔 전망대를 오르던 기억과 도착해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옆에서 울고 있던 여인도 생각났으며, 리스본의 골목길들을 누비고 다니던 그때의 우리는 얼마나 근심이 없었나 생각했다. 맥주를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근처 벤치에 잠시 앉아있을 때, 우리에게 한국인이 물어왔다. “혹시 불 탄 성당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 그 성당은 알고 보니 상 도밍고 성당(산토 도밍고 성당)이었는데, bultan Catholic church이라는 것이 명칭인 줄 알고 얼마나 우스웠던지. 그녀의 여행을 따라다니며,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은 그녀의 시선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근처에는 가봤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지 못했던 곳들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낯익은 곳들에 대해 “어! 여기 나도 가본 적이 있는데!”라면서 나의 추억들도 소환하여 그녀의 여행과 나의 여행을 포개놓으며 즐거워했다. 아, 이토록 매력적인 곳들이라니.



그리고 그녀가 벨렘에서 만났던, 아니 스쳐 지나갔던 “한국인이야, 짜증 나.”라고 내뱉은 한국 여성을 보면서 생각하기를, 여행자 중에서 한국 여성들은 대부분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한 양상을 나도 느꼈다. 포르투에서 만난 한국 남성은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며 기꺼이 자리를 비켜주기도 했고, 리스본에서 만난 다른 한국남성(bultan Catholic churchㅎㅎ) 역시 거리낌 없이 웃으면서 다가온 반면, 한국 여성들은 만나면 같은 인종이어서 너무나도 싫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리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러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 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유쾌한 감정은 그날 하루는 나를 따라다니곤 한다.



여행을 할 때에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는 하지만, 평소에는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바닥까지 다 뚫을 기세로 찾아보면서도 여행을 준비할 때에는 최소한의 것들의 정보만을 수집하는 편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녀와서도 모르는 경우가 왕왕(아니 사실은 많이) 있는데 그녀 덕분에 “아, 이게 그거였어?”라고 이제야 알게 되는 것들이 꽤 많아 여러차례 당황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리스본 호시우 광장 근처에 있는 놀이동산 컨셉이었던 그 가게가 통조림 가게였다니! 사진을 보자마자 나도 어! 할 정도로 알아차렸던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놀이동산 컨셉이었는데 심지어 예뻤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물건이든 예쁜 것은 뇌리에 콕 박히기 마련이었다. 나는 그 가게가 사탕을 파는 가게인 줄 알았는데. 흐흐. 그 외에도 (특히 성당에 대해서만큼은) 그녀의 깊고 넓은 여행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성당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지 않기도 하고, 굳이 찾아다니면서 보지 않는 편에 속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나는 골목길들을 걸으면서 길을 잃는 것이 더 즐거웠다. 미로 속에 갇힌 길을 잃는 여행자의 놀이는 포르투갈에서는 더욱 즐겁기만 했다. 어디로 가든 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전혀 모르는 곳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색다른 짜릿함을 주기 마련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성당 찾아다니기 놀이에 또다른 매력을 느끼며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다.

 

 

245.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것 또한 거대하고 요란한 무언가라기보단 아주 작은 틈새다. 그 틈새로 슬며시 빛이 들어오면서 우리의 삶은 비로소 변화한다.

 

요즘 힘든 날에는 특히 더, 나는 호카곶을 많이, 자주, 또 오래도록 생각하곤 했다. 핸드폰 배경화면도 그것으로 해두었다. 그때를 소환하며 숨을 쉬기 위해서. 그곳에서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내’가 되기로 결심한 게 전부였다. 무엇도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다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때처럼 호카곶은 내게 ‘나’를 위해 살라고 말해줄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때의 공기와 바람, 햇빛을, 나는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동안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호카곶은 내게 오랫동안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그녀의 마음에 위로를 건네주던 단 한 곳의 장소는 어느 곳이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책에서는 그녀가 벨렘에 갔을 때 발견 기념비탑이 공사 중이라고 하여, 너무 아쉬운 마음에 내가 찍어둔 사진을 한 장 남겨본다.

내가 리스본에서 가장 좋아했던, 벨렘지구. 개인적으로는 벨렘탑을 가장 좋아했는데 시간이 늦어 벨렘탑에 들어가보지는 못했던 아쉬움을 그녀의 사진과 글로 인해 조금은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어쩌다 보니, 가장 마지막날에 가게 되어 더욱 아쉬웠던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지막날에 갔기 때문에 더 마음이 동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얼마나 있엇든, 얼마나 느꼈든, 얼마나 동요했든,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 했든, 여행의 마지막은 늘 아쉽기 마련이었다.





305. 모두가 다 내 생각 같지 않다는 점이 세상살이의 즐거움이자 어려움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감정에 치우쳐진 상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에서는 벗어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그때와 지금의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일었을지 묻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힘든 게 인생이니까. 그저 그때의 생채기가 조금은 아물었기를 바라며, 그녀의 오늘에 파이팅을 공손하게 내어본다.



 

오탈자 8. 남의 돈으로 벌어먹고 사는 삶 중에 만만한 삶이 어디 있겠냐만은있겠냐마는

오탈자 92. 그 시간표를 시키는 걸 본 적이 없다 ▶ 지키는 걸

오탈자 238. 일상에 메여있는 동안 ▶ 일상에 매여있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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