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색깔 - 그림에 비춰 마음을 보다
김병수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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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감정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정의 실체를 그대로 볼 줄 아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날것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내 감정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하지 못하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힘이 들어서 결국 나 자신과 타협하기도 할 때가 많다. 타협을 한다는 건, “그래. 어쨌든 내가 잘못했네.”라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정은 쉬이 사그라들지 못하고 갇혀버린다. 지금의 나, 감정이 며칠째 고여있다. 도무지 감정을 추스를 수 없어 나를 놓고 지내는 삶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나는 나를 탐구하면서 나라는 인간에 대해 며칠 동안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주변을 탓하기도 했고 사람들을 탓하기도 했고 결국은 이전과 동일하게 그것들을 뭉뚱그려 탓하고 있는 나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타협이 불가능했다. 나는 나의 고집을 끝까지 내세웠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 보니 이런 문제들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반추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것도 아닌 나의 전체적인 삶을. 물론 나는 나 스스로도 나의 환경이나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다들 나보고 잘못되었다고 말을 해도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명확한 근거와 함께 그 문제를 제시하는 한, 나의 가치관과 생각을 올곧게 가지고 가겠다고, 말이다.



74. 나를 괴롭히는 것을 향해 돌진해서 싸워보는 것도 좋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묵묵히 버티면서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문제를 해결하고 스트레스를 풀고 부정적 감정을 날려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교과서에 나온 대로 상담을 받고 자기 관리 잘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져야겠지만, 그저 견뎌내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없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그렇게 파도가 하나둘 지나고 나면 나라는 사람도 어느새 이전보다 단단한 사람으로 변해 있기 마련이다. 성숙이라는 것도 이렇게 시간을 견뎌내며 얻어지는 법이다.

이 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쓴 글이다. 혹은, 이 책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정신과 의사가 쓴 글이다. 의 틈은 너무나도 크다.

나는 그에게 칠월의 언젠가, 이런 감정이 지속된다면 저자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그는 그것에 대해 심각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정도구나. 지금 너의 힘듦이.’ 그래서 그랬나 보다. 책을 읽으면서 풍기는 느낌은, 매우 평온한 느낌이었다. 내가 온순해지는 양이 되어버리는 그런 느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라고 토닥여주는 그런 느낌. 나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릴지도 모를, 그런 느낌. 나는 지금 매우 불안정하다.

그래서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내가 나에게 용인했던 힘들어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하지만 거의 한 달이 지나고 있다. 그러한 기간을 스스로 정해두다 보니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더 이상은 안되는데. 이제 그만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데. 나 때문에 그이가 힘들어하면 안 되는데. 나도 언제까지 이렇게 질질 짜면서 울면서 지낼 수만은 없는데. 결국 나는, 마지막 선택지에 동그라미를 쳤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견디는 삶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견딜 이유도 없었다.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말 한 마디면 우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하지 않았던 것도 결국 내 고집이었다. 그래도 나, 이 정도면 많이 노력했고 많이 견뎠고 많이 버텼다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꽤 버틸만한 일이었다고, 지금의 내가 유약했노라고, 결국 나는 그때 내가 많이 어렸다고, 그렇게 미화될 수 있는 일일까?

153. 인간관계의 문제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하지만, 하나로 설명하자면 '거리 조절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너무 밀착되어도 문제, 너무 멀어져도 문제다. 딱 중간쯤인 심상인 관계가 별 탈 없이 오래간다. (…) 심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물리적 거리도 중요하다 마음에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다닥다닥 붙어 살면 부드러운 관계를 맺기 어렵다. (사랑에 바진 연인은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려면 '내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도 건강해야 한다.

​관계에 대해 이렇게 고민했던 적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과 나는 거리 조절을 실패한 것일까. 나는 거리 조절의 실패라는 말보다, '내가 처한 상황'이 건강해야 한다는 말이 좀 더 와닿았다. '거리 조절의 실패'는 그와 나의 사이가 너무 밀착되어 있을 때 자주 느낀다. 내가 그에게 칭얼거림이 심해질 때.

바로 오늘, 나는 그런 글을 썼다.

나는 그들과 덥지 않은, 결코 더울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바깥의 공기가 숨이 막힌다고 하더라도, 그들과의 관계가 더욱더 숨이 막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이제야 나와 관계가 완만해졌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그들에게 기대감을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기대감을 내려놓았을 때에야 완만해질 수 있는 관계라면, 그들과 나에겐 처음부터 타협점이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109. 나를 본다는 것은 우물 아래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아서, 너무 깊이 알려도 몸을 우물 안으로 기울이면 컴컴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러다 잘못하면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깊이 공감했던 말.

나는 나의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 말투, 가치관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결국은 그런 나를 탓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랬다. 나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는 깊은 수렁에 빠져 종전과 같은 상태가 너무 쉽게 돼버리곤 했다.




114. 공개적으로 말해버린 행복은 더는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은밀하고, 지밀스럽고,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 느끼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거나 누구에게 보여주면 이내 변질되고 만다.


행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어딘가에 나의 행복을 남겨두는 일은, 언제나 내가 그 행복을 다 만끽하고 난 후에 남은 여운을 간직하기 위해 기록하는 일 외에는 없었다. 타인에게 누군가에게 내뱉은 나의 행복은 더 이상 행복이 될 수 없었다. 이유라고 한다면, 나의 행복을 누군가 시기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금세 나만의 행복이 불행으로 바뀔 것만 같았다. 내가 가진 것과는 다른 이유로 행복이 은밀해야한다니, 나는 나의 행복을 순간으로부터 지켜야만 하겠다.


230-231.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는 시시각각 그 색깔이 달라진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곤경도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럭 견딜만했던 기억으로 희석된다. 세월이 더 흐르면 고난은 추억으로 수렴된다. 과거의 아픔이 미래를 향한 추동력이 되는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법이다. (…) 숙성되지 않은 과거는 가슴에 묻고 주어진 소명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야 비로소 '이건 옳았다', '저건 그르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과거를 제대로 보고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기까지는, 언제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정말 죽을 것 같았던 그 시간들도, 이제는 정말 시간 속에 갇혀버렸다. 그때에는 몰랐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들렸다. 나는 그 시간들을 노려보기도 했다. 얼른 커서 어른이 되고 싶기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픔이나 아픔, 고통을 융통성 있게 희석시키는 일일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게 삼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의 그 일들은, 추억으로까지 수렴될 수는 없다. 내 인생에서 어쩌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요즈음은 그때를 자주 상상한다. 그때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 그래서 시간이 지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면,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내가 나를 그 힘듦 속에서 기꺼이 꺼낼 수 있어! 라고.


163.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도 우울증은 생긴다. 겉으로 편해보여도 남모를 스트레스 한두 개쯤은 누구나 갖고 있게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우울증을 통틀어 단 하나의 원인을 꼽으라면 '의미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은 청년만 품는 게 아니다. 끝까지 버텨내야 하는 중년에게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는 더 중요하다. 나를 넘어 삶의 의미에 몸을 던질 때 우울증은 사라진다.

나는 2018년 유월과 칠월의 사이의 기간들을, 나의 어퓨(again puberty)라고 말했다. 물론 사춘기보다는 우울증에 더 속하겠지만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섣불리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우울증에 나를 맞춰가려고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밑줄 쫙- 그었던 문장. 우울증의 원인은, 의미 상실.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정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 상실이라.. 그래서 그랬나, 그토록 매일을 울면서 생각한 것이 “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라는 너무나도 철학적인 물음이었으니. 그것 외에는 달리 생각할 게 없어서 그랬다. 내게 주어진 사명처럼 끈질기게 묻고 또 물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래야만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었다. 삼십 년을 살면서 내놓지 못한 물음이, 고작 한 달 만에 생길 리 만무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게 우선 첫 번째 방편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살고 있던 삶에서 조금 비껴나있다. 그리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잠시 몸을 추스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가볍게 읽기 좋은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답이 있는 책은 더더욱 아니지만,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한 책 한 권을 읽어 마음에 잠시 평온이 찾아왔다.

책 속 밑줄 긋기


21. ​의욕은 새로운 경험을 계속해야 생긴다. 경계를 넘어 낯선 세상을 탐색할 때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약간 불확실하고, 약간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세계에 자신을 던져 넣어야 한다. 멀리 갈 것 없다.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시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녀보자. 닫힌 공간을 벗어나, 열린 세상을 향해 지금 당장 몸을 움직여보자. 


91. 어른이 된다는 것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힘든 것을 억지로 참는 것과는 다르다. 진짜 어른이 발휘하는 '괜찮은 척하는 능력'은 꽤 고급 기술이다. 아픈 것을 참아내는 인내는 기본이고, 그 와중에도 그럴듯하게 보여야 하니까 감정 조절력도 필요하다. 아무리 괴로워도 정시에 출근하고 해야 할 일에 전념하려면 자기 조절력도 뛰어나야 한다.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둘러싼 맥락에 맞추어 적정한 소셜 스킬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기술'이 완성된다. 


189. 마음만 고쳐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향해 꾸준히 움직여나갈 때 비로소 커진다.


201.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의 감정이다. '내가 부족해서 당신을 충분히 돌보지 못했다'라는 마음이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게 한다.





오탈자 13. 음원을 재생해서 듣는 것보다 라이오에서 DJ의 멘트가 노래에 덧붙여 나오면 귀가 행복해진다. ▶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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