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깨비, 홍제 - 인간의 죽음을 동경한
양수련 지음 / 북오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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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아야 할 감동이 너라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을 울리는 한 문장을 던지고 시작한 양수련 작가의 나의 도깨비 홍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남긴다. 죽음을 갈망하고 있는 불멸의 삶을 사는 도깨비와 불멸의 삶을 살고 싶은 인간 그리고 불멸의 삶으로 말미암아 단단해진 도깨비의 심장을 다시 뛸 수 있게 만든 한 소녀... 인간의 내기로 시작된 도깨비 홍제의 지루하고 외롭던 인간 세상 탐험은 그를 사랑하는 한 소녀의 온기로 마무리된다.

방자하고 교만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도깨비의 수장 홍제는 교만함의 정점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인간과 신을 잇는 무녀 비령에게 도깨비 잔치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한다. 끊임없이 인간에 대한 조롱을 일삼는 홍제에게 무녀 비령은 인간세계의 ‘내기’를 제안하고, 두려울 것이 없는 도깨비 홍제는 무녀 비령을 제안을 받아들여 인간과 결혼한 것을 이유로 멸시를 일삼던 도깨비 귀설과 내기를 하게 된다.

인간 세상만큼이나 도깨비 세상도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일까,,, 당연하게 이길 줄 알았던 인간의 내기에서 패한 홍제는 한 권의 책이 되어 조롱을 일삼던 인간 세상으로 버려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벌칙을 수행해야 하는 도깨비 홍제는 내기를 완성할 미담을 찾아 인간들을 만나게 된다.

영생을 사는 도깨비의 힘을 빌려 업신여기던 인간들로부터의 형벌일까. 그의 곁에 머무는 인간들은 홍제로 하여금 끊임없는 부귀영화를 얻어내지만 한 조각의 마음조차 그를 위해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의 배신과 그들의 유한한 생은 그의 심장을 울리지 못하고 점점 더 단단하게 한다. 급기에 외로움에 사무쳐 죽음을 갈망하기에 이른 홍제 앞에 나타난 어린 소녀 오르.

"홍제의 얘기를 듣고 싶어요." "그거라면 얼마든지." 홍제는 신났다. 그리고 몰랐다. 자신 안에 있던 속내들이 엮인 굴비처럼 줄줄이 딸려 나오게 될 줄은. 인간의 이야기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연한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홍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어쩌면 홍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 가를 기다려 왔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존재가 이토록 감동적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내가 찾아야 할 감동이 너라면 얼마나 좋을까?“ (p.143)

"네 소원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군. 마치 날 위한 소원 같 내 얘기를 듣고 있는 널 보고 있자면 내 고통이 씻기고 내 상처가 아무는 기분이랄까." 홍제는 지극한 눈길로 오르를 바라본다. (p.153)

때로는 엄마가, 때로는 언니가, 때로는 친구가 되어주는 할머니 귀화의 손에서 자란 소녀 오르는 ‘홍제의 얘기를 듣고 싶어요’라는 한마디로 누구도 녹이지 못한 홍제의 심장을 녹이기 시작한다. 벌칙을 수행하기 위해 내던져진 인간 세상에서 억겁의 시간 동안 ‘너의 홍제’를 되풀이하며 살아왔던 홍제에게 드디어 ‘나의 오르’가 나타나고 그토록 갈망하던 죽음과 함께 그의 길고 고된 여행이 끝난다.

오르가 울고 있다. 홍제는 심장이 옥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눈물을 흘리는 오르는 아름다웠다. “너의 홍제”를 되풀이 해온 홍제의 입술을 뚫고 “나의 오르”가 새 나왔다. “나의 오르······, 나의 기문.” (p.292)

삶과 죽음, 무한의 생과 유한의 생을 가진 도깨비와 인간 서로 다른 그들이 너의 홍제, 나의 오르가 되어 서로의 감동이 되어준다. 바로 곁에 있는 파랑새를 찾아헤맸던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존재를 찾아헤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 조각의 위로.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의 위로. 홍제가 인간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다.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님을 홍제는 익히 알고 있었다. (p.111)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나의도깨비홍제#양수련#북오션#판타지소설#판타지스릴러#불멸의생#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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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 탐정 전일도의 두 번째 사건집
한켠 지음 / 황금가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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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보험도, 왓슨 같은 조수도, 안마기가 놓인 사무실도 아무것도 없는 짠 내 나는 20대 생계형 탐정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전작 ‘탐정 전일도 사건집’ 만큼이나 의뢰인도 탐정도 딱하기만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생계형 탐정의 활약상을 그린 전일도 시리즈는 미스터리보다는 요즘 청년들의 고된 일상을 그린 현실감 넘치는 에세이(?)에 가깝다.

열 번 의뢰하면 한 번은 공짜 쿠폰을 건네는 그녀의 영업 비법은 각종 쿠폰과 할인 혜택을 꼼꼼하게 챙기는 MZ 세대의 성향을 그대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숨바꼭질을 하며 사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시대 청년들의 고단함을 뚝뚝 흘리고 있다. 고단한 청년들은 많고 아무 조건 없이 들어줄 사람들은 없고,,, 덕분에 탐정이라기보다는 심부름센터 해결사에 가까운 흙수저 탐정 전일도가 하드보일드 탐정을 꿈꾸며 꿈을 키워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을 만큼 일하지 말고 행복하게 일하면 안 될까. 바쁘게 일하지 말고 여유롭게 일해도 되지 않을까. 일하다가 지칠 만하면 안마 의자에 앉아 쉬면서 쉬엄쉬엄 일해도 되지 않을까." (p.334)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충성을 다해도 극복할 수 없는 비정규직의 설움, 한동안 아동학대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던 어린 유튜버의 진짜 부모 찾기,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여기는 회사원의 조직 부적응기, 책임을 회피하는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생겨버린 아이와의 힘겨운 이별 등 15가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공감을 자아낸다. 

"조선 시대가 좋았어. 머슴이면 머슴, 농부면 농부로 태어나면서부터 직업이 정해져 있으니까 욕심만 안 부리면 고민이 없잖아. 내 지금 신분은 유랑민이야. 언제 대갓집 노비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나도 만약 계속 취업이 안되면 안락사를 생각해 보게 되지 않을까." (p.196)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를 기대하고 책장을 펼쳤다면 NG!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책장을 펼쳤다면 GOOD! 장르가 무슨 문제가 되겠냐마는 전작을 읽을 때는 살짝 당황하기도 했던 터라 이번엔 힘을 살짝 빼고 읽어주니 각각의 주인공 등을 아무 조건 없이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든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살벌한 경쟁은 힘겨운 속마음조차 편히 털어놓을 곳이 없다. 간간이 듣던 히키코모리는 일상이 되어버렸고 현실과 가상의 구분 없이 친구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내 아이의 상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감을 수 있는 시대. 썽이 그녀에게 건내는 다독임처럼 갈수록 각박해지는 요즘 같은 때에는 미스터리 사건을 해결하는 하드보일드 탐정보다는 따뜻한 웃음과 함께 ‘열 번 의뢰하면 한 번은 공짜 쿠폰’을 건네는 생계형 탐정 전일도, 그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주연 씨는 엄마가 된다면 '주연 씨 다운 엄마'가 될 거고, 엄마가 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거고, 달봄이는 한번 싫은 걸 싫다고 해 봤으니 싫어하는 건 안 하는 자주적인 아이로 자랄 거고, 승희 씨는 계약직으로 떠돌더라도 차로 건물을 들이받지는 않겠지. 최선임 씨랑 인혜 씨는 연애하면서 장학금 신청서 내듯이 공모전에 소설 내서 상을 받을지도 모르고. 보람 씨는 '그만두는 법'을 알게 되었겠지. 너를 만나서." (p.386)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탐정도보험이되나요#탐정전일도의두번째사건집#한켠#황금가지#탐정소설#사건해결기#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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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위한 두뇌 체조 - 화투 스티커 붙이기&색칠하기 (치매 실전 편-실버용) 부모님을 위한 두뇌 체조
한설희 지음 / 싸이프레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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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백세시대 우리 엄마를 어르신들의 로망은 ‘9988’이다. 99세까지 88(팔팔)하게 살다가 건강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이 아픈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백번 양보하지만 역시 가장 두려운 것은 머릿속의 지우개라 불리우는 치매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퇴행성 질환이라고는 하지만 ‘혹시 나도?’하는 치매에 대한 공포는 어떤 질병도 넘어설 수 없다. 더군다나 요즘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디지털치매를 비롯해 영츠하이머라 불리우는 초로기 치매까지,,, ‘혹시 나도?’의 공포도 물리치고 9988을 실현하기 위한 부모님의 두뇌체조가 꼭 필요한 이유라 하겠다.

경로당에서 빠지지 않는 화투! 3~5인이 함께하는 놀이이다 보니 이기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고 점수를 계산하는 등 가볍지만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하는 오락인 고스톱은 각종 연구결과에서도 어르신들의 치매예방 방법으로 확인되고 있다. 더불어 10원짜리 내기 화투는 울 엄마를 비롯한 많은 어르신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며 친근한 아이템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

컬블의 서평단으로 만나 울 엄마에게 선물한 부모님을 위한 두뇌체조! 친근한 화투가 등장하는 컬러링 스티커북이라 엄마의 만족도 완전 급상승! - 아놔~ 화투그림 왜 이렇게 익숙한거야 ㅋㅋㅋ - 스티커 컬리링북에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를 도와드리겠다며 꼬맹이 조카까지 합류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요즘같은 코시국 이웃 친구분들도 자유롭게 못만나시는 엄마께 딱맞는 놀이책이다. 실전편으로 워밍업~ 예방편으로 제대로!

‘치매는 예방이 가능한 질환’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퇴행성뇌질환과 치매 관련 권위자로 활동하고 계신 저자 한설희 박사님께서 펴내신 치매예방과 치매환자의 인지기능 향상을 위한 교재지만, 꼭 치매예방과 치료가 아니더라도 어르신들의 집콕 놀이교재로 굉장히 만족스러운 교재다.

친근한 화투이미지가 알록달록 선명한 색감으로 큼지막하게 표현되고 있는 구성 덕분에 다소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는 어르신들의 책놀이 활동 거부감없이 다가온다. 사실 치매예방, 치매실전이라는 제목때문에 울 엄니 언잖아 하실까봐 아주 살짝 걱정했었는데 친근한 이미지 때문인지 울 엄마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컬블 덕분에 때아닌 효녀 노릇 좀 했다. ^^;;;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체험 후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부모님을위한두뇌체조 #한설희 #싸이프레스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스티커북 #컬러링북 #치매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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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
아사이 료 지음, 곽세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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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이유와 살아야 하는 이유... 동전의 양면만큼이나쓸모 있고 싶었던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 by 아사이 료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는 무심코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명제로 시작한 아사이 료의 글은 사회가 요구하는 잣대에 맞춰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답답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 강요된 대부분의 요구는 대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없이 대립하고 있는 두 주인공 유스케와 도모야 또한 그들이 살아가기 위한 이유를 찾기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받는다. 물론, 스스로의 선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강요된 삶이 아니라 할 수도 있으나 ‘온리 원’이 되는 것만이 삶이 의미인 그들에게 선택은 무의미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으로 감정이 메말라가는 간호사 유리코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친한 친구의 전학으로 우울해하는 어린 남동생에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매일 같은 시간 병원을 찾아 함께 들었던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유스케를 소개한다. 감동스러울 정도로 친구를 돌보는 유스케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단짝 친구 유스케와 도모야의 어린 시절. 언제 어디서든지 승부에 집착하는 유스케와 있는 듯 없는 듯 모든 다름을 인정하는 도모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항상 함께다. 유스케의 주도로 관계를 이어가는 듯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모야 또한 유스케의 주도적인 의견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중요시하는 정의하기 어려운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새롭게 등장한 전학생 가즈히로. 둘의 관계에 호기심을 품고 있던 가즈히로의 활약(?)으로 이들의 운명의 비밀을 풀어줄 운명의 책과 마주한다.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와 더불어 이들의 어린 시절을 지배하는 어른들의 서사 또한 눈길을 끈다. 이들에게 신화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운명의 책 ‘제국의 법칙’안의 장군과 같은 역할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그저 회사원일 뿐인 유스케의 아버지와 끝까지 성상이 다른 이들과 사이좋을 수 없음을 주장하며 대립을 강요하는 도모야의 아버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산족과 바다족이지만 극한의 대립에서 경계가 무너져가는, 결국 함께 살아내야 함을 알리기 위한 서사이라라.

승부에 집착하는 유스케 그런 유스케를 보호하고 있는 도모야를 비롯해 존재의 이유를 알리기 위해 의미 없는 레이브에 집착하는 요시카와 스스로가 잠식되면서까지 노숙인 구호사업에 집착하는 메구미, 어린 후배에게 추월 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의미 없는 집착을 보이는 유게까지 죽을 이유가 아닌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한 이 시대 청춘들의 힘겨운 몸부림을 지켜본 듯한 기분이다.

"누구도 가마를 메라고 한 적은 없어. 너 스스로 끊임없이 비교하며 사람들이 강요한다고 느꼈을 뿐이야. 메고 싶지 않으면 메지 않아도 돼. 가마를 젊어지지 않은 자신을 인정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p.365)

"멋대로 혜적기숙사에 들어가 실패하고, 이번엔 아지트인가 뭔가에 들어가 또 실패하겠죠. 이 인간은 도대체 무엇과 맞서고 있나 싶으면서도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 잘라 말할 수 없는 게 기분 나빠요. 제 안에도 있거든요, 호리키타 유스케가. 항상 뭔가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항상 도망치고 있을 뿐이란 알거든요, 저." (p.324)

어느 누구도 가마를 메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가마를 찾아헤매고, 항상 뭔가와 싸우고 있지만 사실은 항상 도망치고 있을 뿐인 젊은 청춘들이 한없이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생뚱맞은 생각이긴 하지만,,, 산족과 바다족이 흔쾌히 스며들어, 내 아이가 우리 아이가 더 이상 강요되지 않은 가마를 찾아 헤매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공이 굴러왔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 언제 굴러올지도 모르고, 아직 굴러오지도 않은 공을 향해 억지로 손을 내밀지 않을 것. 존재 가치를 보여줄 수 없고, 사랑받지 못해도,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을 것. 이렇게 결정하고부터 메구미의 다크서클은 조금씩 열어져갔다. 그리고 그을리지 않은 볼록한 뺨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p.271)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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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교실 - 젠더가 금지된 학교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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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같은 제목의 무성 교실은 이대남과 이대녀, 여가부 폐지 등 연일 계속되는 젠더 이슈를 만나고 있는 요즈음 젠더가 금지된 학교, 무성 교실이라는 기발한 발생의 제목에 끌려 읽어보기로 한 책이다. 자신의 의지로 성을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어릴 적부터 무수히 강요받았던 남자 = 파란색, 여자 = 분홍색의 고정관념은 훌훌 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 마루노우치 선의 마법 소녀 ]

유치하지만 반짝반짝 예쁜 콤팩트와 ‘큐티 체인지!’라는 주문만으로 스트레스 넘치는 현실에서 마법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면?! 소녀소녀 한 어린 시절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었을법한 마법봉을 서른여섯 살이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리나. 모두의 웃음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지 미라클 리나로 변신한다. 단짝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남자친구를 떼어내기 위한 마법 놀이에서 사심으로 가득 찬 마법 놀이의 폐해를 보고 잠시 마법 세계를 떠나기도 하지만, 세계 평화를 위해 다시 마법 세계로 돌아오는 깜찍함을 선보인다.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유쾌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야 서른여섯이 아니라 아흔여섯의 나이에도 마법 소녀로 변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쾌하다.

"결국 이 세상에 정의 따위는 없다는 게 미라클 리나의 결론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정의 따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야 어른이 된 걸까." (p.41)

[ 비밀의 화원 ]

네 편의 단편 중 가장 엽기적인 이야기. 첫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남자친구를 사귈 수 없는 우치야마는 치밀(?)한 계획으로 첫사랑 하야카와를 감금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치야마는 여자친구와의 다툼으로 갈 곳이 없어진 하야카와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감금당해 줄 것을 제안하고, 바람둥이에다 게으르기까지 한 하야카와는 우치야마의 엽기스러운 제안에 동의한다. 집착에 가까운 감금 끝에 우치야마는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완벽하게 깨버린다. 감금을 제안하는 우치야마나 동의하는 하야카와나 기가 막힐 정도로 평범하지 않다. 나 같으면 첫사랑은 곱디고운 환상으로 남겨두고 싶을 것 같은데,,, 우치야마의 엽기 행각에 저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첫사랑은 어떻게해야 소멸하는 걸까. 답은 하나였다. 나는 내 첫사랑을 장사 지낼 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p.87)

[ 무성 교실 ]

생물학적 성별을 감추기 위한 트랜스 셔츠. 기발하다. 젠더의 구분이 없어진 시대, 성인이 된 후에야 원하는 성을 선택할 수 없는 무성 교실. 가까운 미래에 성별이 없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대라 젠더 갈등을 없앨 수야 있겠지만 이미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을 억제하는 것만이 방법일는지,,, 자신의 생물학적 성이 나타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유토의 시선을 따르다 보면 과연, 무성의 삶이 갈등을 없애고 평등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유토는 낡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구나.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남자'며 '여자'를 장착하는 어른들 보다 우리가 훨씬 자연스럽지 않아? 세상은 되어야 할 모습이 되어 가고 있는 것뿐이야." (p.132)

"나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며칠 전까지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고 믿었던 성별이라는 걸, 이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정말 그런게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는 걸까. 학교의 다른 아이들도 벌써 수술을 받은 게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이 이미 무성이 되었는데, 나 혼자만 여자인 채 자궁을 품은 몸으로남 겨진 게 아닐까." (p.143)

[ 변용 ]

네 편중 가장 공감이 되면서도 섬뜩했던 이야기. 부모님의 오랜 간병을 마치고 돌아온 마코토는 일상에서 석연치 않은 불편함을 느낀다. 마땅히 화가 나야 하는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는 사회, 분노가 사라진 사회는 평온하다 못해 본능을 소거당한 듯 보인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표준화된 인간의 감정을 정의하고 그들이 주류가 되도록 제어하는 사회는 공포스럽기만 하다.

"분노가 사라진 지금,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예쁘다'라는 말밖에 없다. 만일 '예쁘다'가 사라지면, 나와 준코는 어떤 감정을 공유하게 될까? '슬프다'일까, '무섭다' 일까, '기쁘다'일까, 만일 그 모든 게 사라진다면? 불안을 느끼면서도 나는 준코의 연두색 네일아트를 가리키며 "와, 준코 손톱, 진짜 예쁘다!" 하고 간드러진 탄성을 내질렀다." (p.186~187)

모두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무성 교실은 조금은 독특한 시선으로 사회 이슈를 들여다본다.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법 소녀라는 망상 속에 빠져있거나, 첫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람둥이 첫사랑의 ‘자발적 감금’을 실행에 옮기는 여대생,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감추기 위해 매일매일 불편한 트랜스 셔츠를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 감정이 배제된 무감한 일상에 적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등 비현실적이지만 ‘어쩌면?’하고 생각하게 하는 가능성 있는 주제를 다룬다. 첫인상은 조금의 의문도 없이 만화였지만 장을 넘길수록 소개글만큼이나 기묘하고 도발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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