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 교실 - 젠더가 금지된 학교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 같은 제목의 무성 교실은 이대남과 이대녀, 여가부 폐지 등 연일 계속되는 젠더 이슈를 만나고 있는 요즈음 젠더가 금지된 학교, 무성 교실이라는 기발한 발생의 제목에 끌려 읽어보기로 한 책이다. 자신의 의지로 성을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어릴 적부터 무수히 강요받았던 남자 = 파란색, 여자 = 분홍색의 고정관념은 훌훌 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 마루노우치 선의 마법 소녀 ]

유치하지만 반짝반짝 예쁜 콤팩트와 ‘큐티 체인지!’라는 주문만으로 스트레스 넘치는 현실에서 마법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면?! 소녀소녀 한 어린 시절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었을법한 마법봉을 서른여섯 살이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리나. 모두의 웃음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지 미라클 리나로 변신한다. 단짝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남자친구를 떼어내기 위한 마법 놀이에서 사심으로 가득 찬 마법 놀이의 폐해를 보고 잠시 마법 세계를 떠나기도 하지만, 세계 평화를 위해 다시 마법 세계로 돌아오는 깜찍함을 선보인다.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유쾌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야 서른여섯이 아니라 아흔여섯의 나이에도 마법 소녀로 변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쾌하다.

"결국 이 세상에 정의 따위는 없다는 게 미라클 리나의 결론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정의 따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야 어른이 된 걸까." (p.41)

[ 비밀의 화원 ]

네 편의 단편 중 가장 엽기적인 이야기. 첫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남자친구를 사귈 수 없는 우치야마는 치밀(?)한 계획으로 첫사랑 하야카와를 감금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치야마는 여자친구와의 다툼으로 갈 곳이 없어진 하야카와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감금당해 줄 것을 제안하고, 바람둥이에다 게으르기까지 한 하야카와는 우치야마의 엽기스러운 제안에 동의한다. 집착에 가까운 감금 끝에 우치야마는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완벽하게 깨버린다. 감금을 제안하는 우치야마나 동의하는 하야카와나 기가 막힐 정도로 평범하지 않다. 나 같으면 첫사랑은 곱디고운 환상으로 남겨두고 싶을 것 같은데,,, 우치야마의 엽기 행각에 저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첫사랑은 어떻게해야 소멸하는 걸까. 답은 하나였다. 나는 내 첫사랑을 장사 지낼 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p.87)

[ 무성 교실 ]

생물학적 성별을 감추기 위한 트랜스 셔츠. 기발하다. 젠더의 구분이 없어진 시대, 성인이 된 후에야 원하는 성을 선택할 수 없는 무성 교실. 가까운 미래에 성별이 없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대라 젠더 갈등을 없앨 수야 있겠지만 이미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을 억제하는 것만이 방법일는지,,, 자신의 생물학적 성이 나타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유토의 시선을 따르다 보면 과연, 무성의 삶이 갈등을 없애고 평등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유토는 낡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구나.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남자'며 '여자'를 장착하는 어른들 보다 우리가 훨씬 자연스럽지 않아? 세상은 되어야 할 모습이 되어 가고 있는 것뿐이야." (p.132)

"나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며칠 전까지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고 믿었던 성별이라는 걸, 이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정말 그런게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는 걸까. 학교의 다른 아이들도 벌써 수술을 받은 게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이 이미 무성이 되었는데, 나 혼자만 여자인 채 자궁을 품은 몸으로남 겨진 게 아닐까." (p.143)

[ 변용 ]

네 편중 가장 공감이 되면서도 섬뜩했던 이야기. 부모님의 오랜 간병을 마치고 돌아온 마코토는 일상에서 석연치 않은 불편함을 느낀다. 마땅히 화가 나야 하는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는 사회, 분노가 사라진 사회는 평온하다 못해 본능을 소거당한 듯 보인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표준화된 인간의 감정을 정의하고 그들이 주류가 되도록 제어하는 사회는 공포스럽기만 하다.

"분노가 사라진 지금,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예쁘다'라는 말밖에 없다. 만일 '예쁘다'가 사라지면, 나와 준코는 어떤 감정을 공유하게 될까? '슬프다'일까, '무섭다' 일까, '기쁘다'일까, 만일 그 모든 게 사라진다면? 불안을 느끼면서도 나는 준코의 연두색 네일아트를 가리키며 "와, 준코 손톱, 진짜 예쁘다!" 하고 간드러진 탄성을 내질렀다." (p.186~187)

모두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무성 교실은 조금은 독특한 시선으로 사회 이슈를 들여다본다.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법 소녀라는 망상 속에 빠져있거나, 첫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람둥이 첫사랑의 ‘자발적 감금’을 실행에 옮기는 여대생,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감추기 위해 매일매일 불편한 트랜스 셔츠를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 감정이 배제된 무감한 일상에 적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등 비현실적이지만 ‘어쩌면?’하고 생각하게 하는 가능성 있는 주제를 다룬다. 첫인상은 조금의 의문도 없이 만화였지만 장을 넘길수록 소개글만큼이나 기묘하고 도발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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