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에도 뛰어난 기술로 제작된 엄청난 수의 작품을 받아들인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현재상철 전시물의 전시 및 보존 활동과 함께 특별전에도 관심을 쏟고 있으며, 20만 평방미터의전시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모든 문화와 시대의 예술을 보여주는 일종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이 작품은 불을 사용할 줄 모르고 금속기도 없었던 원시 단계의 인류의 삶을 묘사하는 연작 중 하나이다. 최초의 인류의 사냥 장면을 묘사한 이 작품 외에도, 숲 속에서 일어난화재 (옥스퍼드 애슈몰린 미술관 소장)와 사냥이후 집으로돌아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렇게 세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상학적으로 매우 보기 드문 이 주제는 인류가신의 의지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진보를 이룩했다.
는 철학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이론을 대변하는사람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이다. - P50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로부터 스페인의알카사르 궁전을 장식할 작품들을 구입하라는명령을 받고 이탈리아에서부터 여행을 하던 중에 그의 노예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을 그렸다.
원래 무어계 세비야 사람이었던 벨라스케스의노예는 고전적인 자세로 그려졌다. 그의 시선은거의 오만하게 보일 정도로 고귀하고, 깊고 엄격해 보이는 눈에서는 자신만만한 표정이 드러나며, 품위 있는 자세는 그가 입고 있는 레이스 칼라가 달린 옷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당시레이스 칼라는 노예들에게는 금지되어 있었고간소한 장식을 선호했던 벨라스케스도 이것을잘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 레이스칼라는 특별해 보인다.  - P84

주문자나 가족을 위해서 그려진 자화상도 있지만 렘브란트가 그린 상당수의 자화상이 일종의 ‘그려진 자서전‘ 이며, 특히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특징인 말년의 작품들이 그렇다. - P88

에밀 졸라를 대부로 두었던 폴 샤르팡티에는 1875년에 태어났다. 풍성하고 긴금발과 누나와 똑같은 옷 때문에 그는 더 여자아이처럼보인다. 당시에는 남자아이와여자아이에게 같은 옷을 입히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이그림에서 누나와 동생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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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WE ARE!
"Who we are," he said, underlining each word as he said it.
"Who we are! Us! Right? What kind of people are we? Whatkind of person are you? Isn‘t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of all?
Isn‘t that the kind of question we should be asking ourselves allthe time? "What kind of person am I?
- P47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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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3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엠제이님 서재방에 2021년 새해 연하장 놓고 가여
2021년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
┃※☆※ ┃🐮★
┗━━━┛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MJ9 2021-01-01 18:2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scott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가 질문한 모든 집단은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더 폭력적이며, 더 가망 없는 곳으로, 한마디로 더 극적인 곳으로 여겼다.

오답은 체계적이었다. ‘지식’이 ‘적극적’으로 잘못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내게 세계 보건을 배우는 학생을 비롯해 내가 여러 해 동안 테스트한 사람 모두 지식이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낡은 지식이고 더러는 수십 년 묵은 지식도 있었다. 사람들의 세계관이 형성된 시기는 그들을 가르친 교사가 학교를 떠나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무지를 뿌리 뽑으려면 사람들의 지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했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영감을 받았을지 몰라도 강의가 끝나면 다시 기존의 부정적 세계관에 갇혔고, 새로운 생각이 그들 머릿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 심지어 강연이 끝난 직후에도 사람들은 가난과 인구 성장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그대로 드러내곤 했다.

그런 극적인 세계관은 왜 없어지지 않을까? 언론 탓일까? 그 점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건 답이 아니었다. 물론 언론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언론을 우스꽝스러운 악당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언론에 대고 "우~" 하며 야유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은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다. 모든 면에서 해마다 나아지는 게 아니라, 대체로 그렇다. 더러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지만, 이제까지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다. 이것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이다.

우리에겐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 나아가 상충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거부하기 힘든 본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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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doesn‘t see me as ordinary. She says she does, but if I were ordinary, she wouldn‘t feel like she needs to protect me as much.  - P4

I don‘t know. Sometimes when I have the feeling like I‘m almost crying, it can turn into an almost-laughing feeling.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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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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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읽는 이 책은 감히 말하건데, 낭만적이고 순진하다.

책을 덮고 나서, 미국 뉴욕에서 전공을 바꿔 저널리즘 대학원에 가겠다고 사회학 교수님께 말씀드렸을 때 내가 받은 첫 질문이 떠올랐다. ˝뉴스의 객관성이 뭐라고 생각해요?˝

내 대답은 ˝정말 완벽히 객관적인 뉴스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였고, 교수님은 ˝그렇게 대답하면 저널리즘 대학원 가기 어려울 거에요˝ 라고 답하셨다.

얼마전 비대면 졸업식을 마치고 저널리즘 학위를 딴 지금은 글쎄, 오히려 더 확고하게 내 대답이 맞았던 거 같은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뉴스에 대한 맹목적 믿음‘ 이 사회학 교수님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뉴스를 생산하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미 ‘무엇이 뉴스감인가(Is it newsworthy?)‘ 따질 때부터 저널리스트의 가치 판단이 안 들어갈 수가 없다. 그리고 리포터든, 에디터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누군가의 가치 판단이 들어간 순간 완벽한 객관성에 대한 미신은 깨진다. 이를 인정하는 점에서 알랭 드 보통이 이 책에서 말하는 ˝뉴스˝란 내가 생각하는 뉴스와 일맥상통한다.

단지... 그렇다고 해서 취재와 보도를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 쓰듯이,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쓰듯이, 그리고 알랭 그가 수필 쓰듯이 할 수는 없다. The Life Span of a Fact 라는 책 한 권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해당 책은 수필가 존 드가타(John D‘Agata)가 실제 사건에 대해 쓴 글을 저널리스트, 그중에서도 오류점검/사실확인 전문가(factchecker)인 짐 핑걸(Jim Fingal)에게 7년간 검수 받으면서 생긴 일을 기록한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이나 존 드가타 같은 작가들이 ‘인간적인 감정‘ 을 전달하기 위해 작품에 불어넣는 기교나 감성이, 의외의 나비효과로 보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 정보전달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아주 상상도 못 할 곳에서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양산될 수도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말 한 마디에.

취재/보도가 문학과 달리 취급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알랭 드 보통이 원하는 것처럼 ‘뉴스룸 한 켠에 작가가 글을 쓸 수 있는 책상‘을 놓아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때때로 뉴스에 대한 새롭고 깊이 있는 시각을 볼 수 있어 즐겁기도 했지만, 동시에 곳곳에서 작가가 문학적 감수성에 대한 열망과 찬양을 가감없이 다른 분야에 투영하는 게 보여 귀여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작가도 뉴스룸의 한 단면만을 보고 글을 쓴 건데, 너무나도 자신만만하지 않은가. 물론, 그래서 이 책은 훌륭한 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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