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간극본능

 ‘세상은 둘로 나뉜다는 거대 오해 1장은 10가지 극적인 본능 중 첫 번째인 간극 본능,
우리에겐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 나아가 상충하는 두 다이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거부하기힘든 본능이 있다. 이 간극 본능이 머릿속에서 어떻게 세상의 그림을 부자와 빈자라는 두 종류의 국가 또는 두 부류의 사람으로만 나누고 있다.이 본능은 사람들이 세상을잘못 인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자와 빈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오해는 왜그토록 바뀌기 어려운 것일까?
 내 생각에 인간에게는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하고 극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대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두 집단으로 나누려는 본능인데,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실체 없는 간극뿐이다. 우리는 이분법을 좋아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영웅과 악인,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 세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양측으로 나누는 것은 간단하고 직관적일 뿐 아니라, 충돌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극적이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항상그런 구분을 한다.

2.부정본능

‘세계는 점점 나빠진다‘는 거대 오해이번 장은 부정 본능에 대한 이야기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주목하는 성향이다. 두 번째 거대 오해의 이면에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이부정 본능이다.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는 말은 세상에 관한 이야기 중 내가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세상에서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옳은 말이다.

그런 식의 생각은 대개 부정 본능 때문이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를 잘못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상황이나쁜데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3.직선본능

직선 본능을 억제하려면 세상에는 다양한 곡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직선이라고 단정하지 마라 많은 추세가 직선보다는 S자 곡선이나 미끄럼틀 곡선, 낙타 혹 곡선, 2배 증가 곡선으로 진행된다. 생후 6개월까지의 성장 속도를 이후에도 계속 유지하는 아이는 없으며, 그러리라 예상하는 부모도 없다.

4.공포본능.

‘공포‘와 ‘위험‘은 엄연히 다르다. 무서운 것은 위험해 보인다.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것에 진짜 위험 요소가 있다. 진짜 위험한것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에는 지나치게 주목하면, 즉 공포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우리 힘을 엉뚱한 곳에 써버릴 수 있다. 겁에 질린 전공의는 저체온증을 치료해야 할 때 핵전쟁을 상상할수 있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수백만 명이 설사로 죽고 해저가 수중 사막으로 변해갈 때 지진이나 항공기 사고 또는 보이지 않는물질에만 집중하기 쉽다. 나는 내 공포를 우리가 진화하던 그 옛날에 존재하던 위험이 아니라, 오늘날 정말 위험한 것에 집중하고 싶다.

5.크기 본능

사람들은 비율을 왜곡해 사실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사람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비율을 왜곡하는 것은, 다시 말해 크기를 오판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숫자 하나만 보고 그 중요성을 오판하는 성향도 본능이다.

6.일반화 본능

사람은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성향이 있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성향이지, 편견이 있다거나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고가 제 기능을 하려면 범주화는 필수다. 범주화는 생각의 틀을 잡는 작업이다. 우리가 모든 주제, 모든 시나리오 하나하나를 정말로 유일하다고 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무슨 말로 묘사하겠는가.
일반화 본능은 이 책에서 언급한 다른 모든 본능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용하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할 수 있다. 실제로는 매우 다른 사물이나 사람 또는 국가를 같은범주로 잘못 묶을 수 있고, 같은 범주에 속한 모든 대상을 다 비슷하다고 단정할 수도 있다.

7.운명 본능

운명 본능은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무언가가 지금의 그 상태인 것은 피할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이유 때문이며, 그래서 그것은 늘 그상태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본능 탓에 우리는 6장에서 소개한 거짓 일반화 또는 1장에서 언급한 그럴듯한 간극이 단지 진실일 뿐 아니라 운명이며, 따라서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다고 믿는다.
이 본능이 어떤 식으로 진화에 도움을 주었을지 생각하기는어렵지 않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살아온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터득한 뒤, 그것을 재평가하기보다 끊임없이 지속되리라 생각하는 게 분명 훌륭한 생존 전략이었을 것이다.

8.단일 관점 본능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통찰력의 순간을 즐기고, 무언가를 정말로 이해한다거나 안다는 느낌을 즐긴다. 주의를 사로잡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 그것이 다른 많은 것을 훌륭하게 설명한다거나, 다른 많은 것의 훌륭한 해결책이 된다는 느낌까지 매끄럽게 쭉 이어지기 쉽다. 세계가 단순해지고,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어 항상 그것만 반대하면 그만이다. 또 모든 문제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어 항상 그것만 지지하면 그만이다. 모든 것이 단순하며, 사소한 문제 하나만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세계를 완벽하게 오해한다. 나는 단일한 원인, 단일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이런 성향을 ‘단일 관점 본능‘ 이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평등이라는 단순하고 멋진 개념은 모든 문제가북평등에서 초래되니 불평등에 늘 반대해야 하고, 모든 문제의해결책은 자원 재분배에 있으니 항상 자원 재분배를 지지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 어떤 문제를 밑바닥부터 배우지 않고도 의견과 답을 낼 수 있고, 따라서 다른 문제에 신경 쓸 여유도 생긴다.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올바른 방법이 못 된다. 특정 생각에 늘 찬성하거나 늘 반대한다면 그관점에 맞지 않는 정보를 볼 수 없다. 현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이런 식의 접근법은 대개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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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는 진부쇼보 사전편집부에서 사전 만들기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전 한 권을 만드는 데 워낙 긴 세월이 걸리는 만큼 회사 사정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어떤 불황도 난관도 사전편집부 사람들의 열정을 이기지는 못했다. 이들이 그 긴 세월,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든 국어사전의 이름은 《대도해大渡》.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이므로 바다를 건너는 데 어울리는배를 엮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아마 이쯤에서이 소설의 제목이 배를 엮다인 이유도 이해하셨으리라.
 교수 출신의 사전편집부 고문인 마쓰모토 선생, 일생 사전을만들다 퇴직한 아라키, 영업부에 있다가 사진편집부로 스카우트 된 마지메(실질적인 주인공). 이 세 사람의 말語에 관한 열정과 고집과 집념 앞에 사전 덕분에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아울러 세상의 모든 사전 만드는 분들에게도, 종종 단어를 찾아 놓고 못마땅한 뜻풀이에 툴툴거릴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부축하고 그러면 되는 거 야. 이 할망구뿐만이 아니라 직장 사람들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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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혼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었고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아아 아이의 그 말. 엄마는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내 편이어야지내게 물어봐야지.
어린이 집에서 왕따 경험을 한 여섯 살 아이가 오랜 시간에 걸쳐엄마의 세심하고 과감한 지지를 받은 후 홀가분한표정으로 했다는 말,

"엄마, 고마워. 나는 이제 자유야."

그게 이 책의 전부다. 정혜신의 공감‘의 핵심이다.

일상에서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으면 짜증이 많아지거나 폭럭저 이로 변하거나 무기력해진다. 마찬가지로 삶의 바탕인 인간관계의 가등들이 해결되지 않고 쌓이면 마음도 엇나가고 삶도 뒤틀린다. 안정년적인 일상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집밥 같은 치유다. 집밥 같은 치유의 다른 이름이 적정심리학이다.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電)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단말마다. 공황발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 중심으로 판단하면 증상을 없애기 위해 약물치료에 보다 치중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공황발작이 의미하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집중과 해결은 놓치기 쉽다.
 사람은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에게 끌린다. 사람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거침없이 나를 표현할 때다. 모든 아기가 아름다운 것도그 때문이다.

젊든 늙는 우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이젠 알 것 같다. 자기 존재에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지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저 사람은 지금 내가 산소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키는 인증 작업일 뿐이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있으면 사람은 산다.

아이는 아빠에게 "아빠 사랑해, 아빠랑 놀고 싶어, 우리 아빠가 제일 힘세"라는 식으로 아빠라는 존재 자체에만 반응하는 존재다. 아빠의 연봉이 얼마인지, 아빠의 키가 큰지 작은지 상관하지 않는다.
아빠는 아이를 통해 자신이 바깥에서 어떤 일을 하든 한 존재로서사랑받고, 인정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은 어떤 당위보다 더 강하게 그의 존재를 자극한다. 제대로 사는 쪽으로 그를 움직이게 만든다.

관계에서의 상처는 경계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하는 경우가많다. 얘는 딱 자기 아빠야, 얘는 딱 어릴 적 나야, 얘는 나랑 정반대야와 같은 말들은 내 아이를 부모와의 연결 속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나와 내가 아닌 너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의 언어다.
자식을 바라보는 게으른 시선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이런 게으른 시각은 큰 둑의 작은 구멍이다. 결국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

"그래도 계속 만나야 하는 사이인데 그런 상사와도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고 묻는다면 다시 말할 것이다. 질문이 잘못됐다. 상사를 상수로 놓고 나만 변수로 취급하는 불평등한 인식의 구도 안에서 내가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상사가 중심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질문으로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내 삶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잘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일까."

자신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고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일로 넘어갈 방법은 없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자전거의 왼쪽 페달이라면 자기를 살펴보는 일은 동시에 돌아가는 오른쪽 페달이다. 한쪽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 즉시 자전거는 멈추고 넘어진다. 자기에 대한 성찰이멈추는 순간 타인에 대한 공감도 바로 멈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기 성찰의 부재는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야 자신이 놓인 상황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공감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 사람은 믿어도 되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일한 역할이 그것이다.
온 체중을 다 실어 아이를 믿어주면 그게 어떤 일이든 본인이 오히려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건 아닌가 열심히 고민한다.
안전하면 입체적이고 온전한 성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계란 것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홀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 내가 전부가 아닌, 나도 있고 너도 있는 판이기 때문이다. 결론을이미 갖고 있던 그녀가 고심 끝에 던진 질문(혹은 던지고 싶었던 질문)들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라기보다 자기 결론을 은연중에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긴 ‘질문 형식의 조언이나 계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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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채근담 - 세상을 이기는 가장 위대한 지혜 탈무드 채근담 1
마빈 토케이어.홍자성 지음, 휘닉스기획실 엮음 / 휘닉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그러자 시어머니는 조용히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게 바로 사랑이란다. 하나를 나누어 둘이 가지는 것, 각기 다른 둘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것. 너희를 보렴, 모르는 둘이 만나 또 다른 둘을 낳았잖니? 나누면 커지고, 합해지면 더 큰 것을 잉태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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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채근담 - 세상을 이기는 가장 위대한 지혜 탈무드 채근담 1
마빈 토케이어.홍자성 지음, 휘닉스기획실 엮음 / 휘닉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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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게나, 죽고 싶지 않다는강렬한 삶의 애착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일세. 지금까지자네가 실패만 거듭한 까닭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네. 자네가 뜻하는 바를 지금처럼,
죽음 앞에서 간절하게 삶을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애쓰게나, 세상에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없는 법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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