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삶을 버티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는 그것 하나만 있어도 의외로버터지는 게 삶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나를 위로해주는 가족만있어도,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망이 있으면 우리는 버틸 수있습니다. 비정규직이어도, 아직 취업을 못하거나 심지어 직장을 잃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힘, 그 희망이 있다면우리 삶은 견딜 만해집니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며 지켰던,삼겹살에 소주 잔만으로도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던 그 환란을 이겨낸 게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 P23

나도 살고 당신도 살리는 업

그래서 우리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보람이 있는 일을 찾습니다. 아무리 밥벌이라 하더라도 그냥 밥만 벌어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서 가치를 느끼게 되면 그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길일수록 힘이 듭니다. 위험합니다. 더럽습니다. 이른바 흙길입니다. 하지만 모든 꽃길은 그 밑에 흙을 깔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흙길이아니면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흙길이 곧 꽃길입니다.
- P28

삼시 세끼 때를 놓치지 아니하며 밥을 먹고, 그 밥벌이를 위해 종일토록 수고하고 땀 흘리는 우리들. 그것은 지겨운 비애가아니라 업의 본질을 엄숙하게 지켜가는 저 성스러운 수도승에 비겨야 할 일이 아닐까요.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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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삶을 가꾸며 우선순위를 몸에 두고 시간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몸을 관리하면 머리와 마음까지 관리할 수있기 때문이다. 몸이 곧 나를 말해 주는 것이니까…. 가장비싼 명품은 곧 나의 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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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사람마다 주어진 맥락은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 자신의 길을 성실하게 걷다 보면 언젠가 나름의인생 작품이 만들어진다. 누구나에게 성실하게 살 권리가있다. 그래서 시간을 일관성 있고 심플하게 관리해야한다.기록을 통한 시간 관리는 이에 좋은 방법이 되어 준다. 기록이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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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은 삶의 길을 하나로 정해 놓았으니 그 과정을 따라가야 한다. 삶의 단계에는 각각의 특징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연약함, 청년에게는 격렬함, 중년에게는 무게 있음, 노인에게는 무르익음이 그것이다. 시기마다 이런 특징을 갖추어야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길을 찾았고, 잘 가고 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말은 나를 위해 살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 누구의 직원, 누구의 선배, 누구의 후배, 누구의 며느리…. 이렇게 복잡한 관계의 틀 속에 갇혀 살다가 나를 상실했다. 그래서 가끔 우울하기도 하고,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던 듯…. 그건 삶 속의 목마름이었다.

인생은 일터와 가정에서의 소소한 일상이 모여 완성되어가는 작품이다. 이 평범한 일상에서 기쁨을 맛보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물론 일탈의 기회인 휴가도 삶의 활력을 주겠으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태도야말로 일상을 더욱활기차게 해준다.

때로 힘든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럴 땐 버텨 보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다. 이것 또한 삶의 일부분이다. 잠잠히 버텨 내는 태도는 자기 일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자기 일의 모든상황 속에서 가치를 누리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누리는 것이야 말로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했다.
"현실은 바꿀 수 없다. 현실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열정을 갖고,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No, thanks."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분별의 힘이 생긴다. 매사에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최선의결단을 내릴 수 있다. 자연스럽게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삶을 위해 본인이 원치 않는 일에 진정 "No, thanks."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매슬로는 인간이 자아를 실현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자아를 성찰할 틈조차주지 않는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만 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음미하는 능력을 잃어 간다. 아무 생각 없이 매스컴에서 광고하는 대로 소비의 덫에 걸려 간다. 평생돈 버는 기계가 되어 간다. 젊었을 때는 그토록 일을 그만두고 싶어 했으면서도, 은퇴할 시점이 되면 그토록 일을 갖고 싶어 한다. 젊은 시절에 쓰던 습관을 못버리기 때문이다.소박한 풍요란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소비의 주체가되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자아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일상 너머의 설렘을 느끼게 된다. 남이 가진 것만 보였는데,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보게 된다. 나답게 살기로 결정하고,인생의 무게가 한결 줄어드는 것이다. 사는 게 경쾌하게 느껴진다. 비로소 혼자서도 기분 좋게 있는 법을 알게 된다.

우리는 문명이 주는 편리함, 화려함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라는 표현도 있듯이, 문명이란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예전에 비해 우리네 삶은 편해졌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삶은 아닌 듯하다. 몸은 편해졌는데, 스트레스는 늘어만 간다. 그러고 보면 몸이 편하다고해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거나, 더욱 건강해지는 것은아닌 듯하다. 이럴 때 한 번쯤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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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극장이라고 상상해보라. 권력을 쥔 자들과 공적지위를 지닌 자들의 행위가 무대 중앙을 차지한다. 전통적 입장의 역사해석과 뉴스의 관습적 출처들은 시선을 그 무대에 고정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무대 중앙의 각광은 너무도 환한 탓에 우리 주위의 그림자 드리운 공간을 보지못하게 만들고, 객석에 앉은 다른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거나 객석 너머 어둠 속에서 다른 힘들이 작용하고 있는복도와 분장실, 극장 바깥을 보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세계의 운명은 대부분 무대 위 각광 속에서 결정되며, 무대위 배우는 세계의 운명이 전부 무대에서 결정된다고, 다른장소는 없다고 말한다.

개개인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고, 바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게 된다. 또다른 사람들은 대담성에 감염이라도 된 듯 대담해지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다. 그 일은 삽시간에 일어나 적들만큼이나 행위자들 자신도 놀란다. 그리고 갑자기, 거의 생각만큼이나 빨리 생각의 변화가 실상 이 모든 과정을 작동시켰거니와 바로 전에 그처럼 완강해 보이던 구체제가 신기루인 양사라진다.

결과는 원인에 비례하지 않는다. 엄청난 원인이 때로 이렇다 할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소한 원인이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간디가 말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여러분을 무시한다. 그다음에는 여러분을 비웃는다. 또 그다음에는 여러분과 싸운다. 마침내 여러분이 이긴다. 그러나 그런 단계들은 서서히 진행된다. 

"유토피아는 지평선에 걸려 있다"고 갈레아노는 선언했다."내가두걸음 다가가면 유토피아는 두걸음 물러난다. 내가 열걸음 다가가면 유토피아는 열걸음 더 멀어진다. 유토피아가 왜 있는가? 이것, 즉 걷기를 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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