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극장이라고 상상해보라. 권력을 쥔 자들과 공적지위를 지닌 자들의 행위가 무대 중앙을 차지한다. 전통적 입장의 역사해석과 뉴스의 관습적 출처들은 시선을 그 무대에 고정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무대 중앙의 각광은 너무도 환한 탓에 우리 주위의 그림자 드리운 공간을 보지못하게 만들고, 객석에 앉은 다른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거나 객석 너머 어둠 속에서 다른 힘들이 작용하고 있는복도와 분장실, 극장 바깥을 보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세계의 운명은 대부분 무대 위 각광 속에서 결정되며, 무대위 배우는 세계의 운명이 전부 무대에서 결정된다고, 다른장소는 없다고 말한다.

개개인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고, 바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게 된다. 또다른 사람들은 대담성에 감염이라도 된 듯 대담해지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다. 그 일은 삽시간에 일어나 적들만큼이나 행위자들 자신도 놀란다. 그리고 갑자기, 거의 생각만큼이나 빨리 생각의 변화가 실상 이 모든 과정을 작동시켰거니와 바로 전에 그처럼 완강해 보이던 구체제가 신기루인 양사라진다.

결과는 원인에 비례하지 않는다. 엄청난 원인이 때로 이렇다 할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소한 원인이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간디가 말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여러분을 무시한다. 그다음에는 여러분을 비웃는다. 또 그다음에는 여러분과 싸운다. 마침내 여러분이 이긴다. 그러나 그런 단계들은 서서히 진행된다. 

"유토피아는 지평선에 걸려 있다"고 갈레아노는 선언했다."내가두걸음 다가가면 유토피아는 두걸음 물러난다. 내가 열걸음 다가가면 유토피아는 열걸음 더 멀어진다. 유토피아가 왜 있는가? 이것, 즉 걷기를 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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