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은 삶의 길을 하나로 정해 놓았으니 그 과정을 따라가야 한다. 삶의 단계에는 각각의 특징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연약함, 청년에게는 격렬함, 중년에게는 무게 있음, 노인에게는 무르익음이 그것이다. 시기마다 이런 특징을 갖추어야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길을 찾았고, 잘 가고 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말은 나를 위해 살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 누구의 직원, 누구의 선배, 누구의 후배, 누구의 며느리…. 이렇게 복잡한 관계의 틀 속에 갇혀 살다가 나를 상실했다. 그래서 가끔 우울하기도 하고,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던 듯…. 그건 삶 속의 목마름이었다.

인생은 일터와 가정에서의 소소한 일상이 모여 완성되어가는 작품이다. 이 평범한 일상에서 기쁨을 맛보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물론 일탈의 기회인 휴가도 삶의 활력을 주겠으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태도야말로 일상을 더욱활기차게 해준다.

때로 힘든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럴 땐 버텨 보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다. 이것 또한 삶의 일부분이다. 잠잠히 버텨 내는 태도는 자기 일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자기 일의 모든상황 속에서 가치를 누리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누리는 것이야 말로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했다.
"현실은 바꿀 수 없다. 현실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열정을 갖고,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No, thanks."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분별의 힘이 생긴다. 매사에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최선의결단을 내릴 수 있다. 자연스럽게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삶을 위해 본인이 원치 않는 일에 진정 "No, thanks."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매슬로는 인간이 자아를 실현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자아를 성찰할 틈조차주지 않는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만 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음미하는 능력을 잃어 간다. 아무 생각 없이 매스컴에서 광고하는 대로 소비의 덫에 걸려 간다. 평생돈 버는 기계가 되어 간다. 젊었을 때는 그토록 일을 그만두고 싶어 했으면서도, 은퇴할 시점이 되면 그토록 일을 갖고 싶어 한다. 젊은 시절에 쓰던 습관을 못버리기 때문이다.소박한 풍요란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소비의 주체가되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자아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일상 너머의 설렘을 느끼게 된다. 남이 가진 것만 보였는데,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보게 된다. 나답게 살기로 결정하고,인생의 무게가 한결 줄어드는 것이다. 사는 게 경쾌하게 느껴진다. 비로소 혼자서도 기분 좋게 있는 법을 알게 된다.

우리는 문명이 주는 편리함, 화려함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라는 표현도 있듯이, 문명이란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예전에 비해 우리네 삶은 편해졌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삶은 아닌 듯하다. 몸은 편해졌는데, 스트레스는 늘어만 간다. 그러고 보면 몸이 편하다고해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거나, 더욱 건강해지는 것은아닌 듯하다. 이럴 때 한 번쯤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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