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를 알게 된 이후 가끔씩 북극에 대해 상상했다. 균일한 빛깔의 얼음과 짙푸른 하늘을, 끝도 없이 펼쳐진 영원의 적막을. 그리고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댄 채 하늘을 바라보며 그가 느꼈을 고독 같은 것을 말이다. 그는 많은 날들 동안 얼음 위를 그저 걷고 또 걸었다고 했다. 그때 그는 얼음 위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HAVE A GOOD LIFE. 그녀는 그가 보내온 사진을 화장대 거울 앞에 세워놓았다. 비스 듬히 세워진 밤하늘 위로 수억 년 전에 반짝였을 별빛들이 뒤늦게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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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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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 거짓말은 하지 말기로 해." "거짓말이 아니에요." 여자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갠 날」 불러 드릴게요." "그렇지만 오늘은 흐린걸." 나는 「어떤 갠 날」의 그 이별을 생각하며 말했다.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 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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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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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 거짓말은 하지 말기로 해.˝ ˝거짓말이 아니에요.˝ 여자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갠 날」 불러 드릴게요.˝ ˝그렇지만 오늘은 흐린걸.˝ 나는 「어떤 갠 날」의 그 이별을 생각하며 말했다.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 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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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이장욱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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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캄캄한 천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 쪽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거기 뭐가 있는 것 같았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인가. 자꾸 캄캄해져서 손을 넣어보게 되잖아. 거기서 뭐가 잡히나. 나는 어쩐지 슬픈 기분에 빠진 채 결론을 내렸다. 어둠은 뭐 그냥 어둠이지. 그래서 거기 뭐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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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이장욱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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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겨울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또하나의 봄이, 그리고 그녀가 없는 나의 여름과, 내가 없는 그녀의 가을이, 무심히 우리 곁을 흘러갔다. 우리는 서로를 잊고, 그렇게 서로를 잊음으로써 우리 자신을 잊고, 아마도 어느 낯선 계절에 도착해 있겠지.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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