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지음 / 봄아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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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그 리듬을 듣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매순간 삶의 시간이 끝없이 계산되고 있다는 것을 환기해주고 있으니까. 그러나 가장 훌륭한 음악의 거장들은 음표로 자기만의 시간 구조, 즉 자율적인 시간 구조를 만들어냈다. 바로 누구에게나 있는 바로 그 리듬에 소소한 가치들을 부여하면서, 그 방식으로 예측할 수 없는 아름다운 리듬을 만들어냈다. 쿵 쿵 쿵에 의지하면서. 그것들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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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헤어지고 처음으로 그에게 이별을 선고받았을 때처럼, 그가 내 연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수 없음에 완전히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그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그와 다시 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별개로, 그와 다시 연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앞에도 사랑했었다‘는 그 생생한 감정이 나를 완전히 짓눌러버렸다. 그를 또다시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져 혼란스러웠고, 나는 쓰고 싶었던 것조차 완전히 잃어버려 도무지 끝을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이제는 손쓸 도리 없이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이제 내가 만든 소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란 걸 느낀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오직 글을 쓸 때에야 비로소 열린다는 사실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부당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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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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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현듯 깨닫는다. 그와 내가 연인이었던 시절을 지나, 연인이 아니었던 시절도 지나, 점차로 친구라는 사실조차 희미해져갈 것임을. 이제는 그에 대한 글을 쓸 수 없음을, 그에 대한 글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그러니까 앞으로 만나게 될 그는 소설이 될 수 없는사람으로만 만나게 될 것을 예감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모습이, 우리의 감정이, 우리의 밀도가 그와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날, 서로에 대한 기억이 없었던- 회상을 가질 수 없었던 첫 만남과 닮았음을 깨닫는다. 마침 오늘은 봄비가 내리고 있기에 원한다면 익숙한 서정에 기대어 정경을 묘사하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잠시 비를 그어도 좋겠다. 그와 나의 열없고 의미 없는 미소. 그렇게 끝과 시작은 이토록 이어져있다고, 나는 그 환상적이고도 서글픈 겹침을 예찬하며 홀로 전율하며 그와의 시작과 지금 내 눈앞, 그의 무구한 눈빛을 그리며 끝을 낼 생각이었다. 나아가 오직 소설 밖에서만 존재할 그를 다시는 쓰지 않음으로써, 나는 그를 소유하고 싶었다. 비약해 소설이 될 수 없는 순간만이 진실하며, 그렇게 문학이 아닌 삶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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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28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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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두 가지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썼다. 하나는 글을 쓰려고 몸을 굽힌 사람의 어깨와 등에 떨어지는 빛, 그리고 또 하나는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사람의 글을 볼 때도 무심코 그 사람이 창가에 서 있다고 상상하면서 읽었다. 창밖에 하늘과 구름과 태양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고개를 돌릴 것이다. 방 안의 어두움 혹은 저 바깥의 먼 빛 쪽으로, 과연 그 또는 그녀 들은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될 것인가? 우리 모두 빛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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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28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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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장 수집가였다. 그 안에 내 인생을 담아놓을 가치가 있는 문장들만을 찾아다녔다. 한동안 아주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 뒤로도 정신적 위기의 순간에 책을 더 열심히 읽는 습관이 생겼다. 위기의 순간에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메모했다. 위기의 순간에 말들이 오히려 더 간절하게 들린다. 슬플 때는 사소한 기쁨도 결정적이다. 메모는 나를 속인 적이 없다. 결국은 힘이 된다. 괴로움 속에서 말없이 메모하는 기분은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것과도 같다. 곧 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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