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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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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2월 9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공개된 정조의 어찰 297통은 학계를 발칵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11쪽) 정조는,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에게 비밀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297통의 편지 는 지금껏 사료와 정사 속에 기록되어 우리들이 만나왔던 정조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우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남긴 약 300여편의 밀서는 남에게 전해지거나 보관되지 않으리라고 믿었기에 더 꾸밈이 없었고, 거침이 없었다. 마치 과거사진 속 꾸밈없는 쌩얼의 여자연예인 사진을 보는 것처럼, 우리가 가졌던 정조에 대한 이미지와 예상과 편지 속에 그려진 정조의 모습은 전혀 다르기에 파장은 증폭되었다.

 

 흔히 정조는 완벽한 이미지의 개혁가이자 학자성향의 군주로서, 조선 전기의 세종대왕과 더불어 성군으로 후대사람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한 정조가 미리 조작하여 신하들이 상소를 올리도록 지시하기도 하고, 신하들의 동태를 캐묻기도 하는 능수능란한 정치꾼의 면모를 보이는 점은 우리에겐 상당히 의외로 다가온다. 또한 편지에는 다혈증적인 모습과 유머러스한 모습도 담겨있어 정조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도 있다.

 

 정조가 심환지랑 나누었던 편지 내용 중에는 십여 차례이상 비밀스럽게 말한 내용을 발설하지 말 것과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인상을 남에게 심지 말라고 지시했다.(63쪽) 또한 비밀을 유지 못한다고 심하게 질책하기도 하고 거듭 편지를 불사르거나 찢어버리라고 주문했다.(65쪽) 게다가 정조는 편지의 세초(없애는 일)를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누가 하는지 다음 편지에다가 보고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거듭 집요하게 편지의 기밀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정조의 편지 350여통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걸로 보아 편지의 수신자인 심환지는 왕명을 맹목적으로 실행하지 않았다. 이는 심환지가 정치적 보험의 의미로 남겨놓지 않았나하고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다. 이런 심환지의 불충스런 삐딱함을 우리 후세 사람들은 정조의 편지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는지 고민스러운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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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나눔 명조체가 있을 때 가장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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