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계획한 걸 하나도 안 했다. 잠들기 전에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 죄책감에 책장에서 생각 없이 뽑았다. 소화도 시킬 겸 소리내어 읽고 싶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었는데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았다. 과학책에서 감동을 받을 줄이야.
지구를 이루는 물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질은 대부분 혼합물의 형태로 존재하는데 그것이 일정한 질서를 가지면 결정, 그렇지 않은 것을 비정질이라 한다. 결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왜냐하면 결정이 되기 위해서는 원자들이 ‘적당한’ 밀도로 모여 ‘적당한’ 온도와 압력 아래 장시간 놓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공적으로 결정을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자연에서는 더더욱이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크기가 되는 결정을 ‘보석’이라 한댄다.
어떤 원자들이 섞이는지에 따라 보석의 종류가 결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보석을 이루는 원자는 흔히 볼 수 있는 원자다. 결국 보석이 귀한 것은 재료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인간관계에 대한 강연을 보면 사람을 ‘보석’ 혹은 ‘원석’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대체로 원석을 다듬어 보석을 만든다는 의미로 활용된다. 이 책을 바탕으로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원석이라는 표현에는 특별함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볼 때 사실 보석이 되는 데에는 어떤 특별한 특징보다는 과정과 그 결정을 이루는 ’흔한 원자들’이 더 중요하다.
이걸 삶에 적용해보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한 사람이 보석이 되는 데에는 특별한 재능이나 잘난 면모가 중요하다기보다 적당한 삶의 온도들과 적당한 압력을 버티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아직 발견 못한 특별함을 계발하려 자책하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내가 겪는 흔하디 흔한 일상이 이미 나를 보석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량의 불순물 원자가 섞일 때 아름다운 보석의 색이 나온다고 하니, 참 내가 겪는 어려움과 일상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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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자연에서 큰 결정이 저절로 만들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쉽게 말해서 귀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정도 크기가 되는 결정을 보통 ‘보석‘이라 부른다. 지각에 가장 흔한 산소와 규소가 만나 결정을 형성하면 ‘수정‘이라는 보석이 된다. 이 과정에 수분이 더해지면 수정이 무지개 색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오팔‘이라 불리는 보석이다. 지각에 가장 많은 금속인 알루미늄과 지각에 가장 많은 원자인 산소가 결합한 산화알루미늄이 결정으로 성장할 때 크로뮴 원자가 약간 첨가되면 붉은색 ‘루비‘가 되고, 타이타늄과 철 등이 더해지면 파란색 ‘사파이어‘가 되며, 베릴륨, 크로뮴이 더해지면 초록색 ‘에메랄드‘가 된다. 결국 보석을 이루는 원자는 지각을 이루는 흔한 원자들이다. 보석이 귀한 것은 그것을 이루는 재료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보석의 색이 아름다운 것은 소량의 불순물 금속 원자 때문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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