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숙모와 조카 이야기. 정확히는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다가 인사도 없이 떠난 숙모에 대한 조카의 마음고백이야기.
굉장히 섬세한 문체로 표현했지만 사실 나에게 깊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마음이 굳은 건지 아니면 깊이가 얕은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지나치게 섬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감성을 깊이 음미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조급한가보다.
그래도 이따금씩 나오는 숙모의 모습이 인상 깊었던 단편이었다.

그때의 여자의 나이가 되어 혜인은 생각한다. 여자는 어쩌면 자신에게 삶의 무거움을 미리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그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농담과 웃음과 천연덕스러운 행동으로 자기를 지켜오고 관계를 맺어왔다면, 그저 그런 방법으로밖에 혜인을 대할 수 없었으리라고. 어쩌면 여자도 울고 싶었는지 모른다. 혜인에게 기대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이 혜인과 자신 사이를 망쳐버릴까봐, 혜인을 떠나게 할까봐 자제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명랑한 사람이고, 나는 심각하지 않은 사람이고, 나는 가벼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어야지 버림받지 않고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고 배우며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더이상 웃음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혜인은 생각했다. - P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