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이자 해결사로 오랫동안 일해왔던 마이클 코언은 청문회에서, 트럼프가 다녔던 대학들과 대학 이사진에게 트럼프의 대학 성적이나 SAT점수 등을 밝히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음을 밝혔다. 2011년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학업성적을 공개하라고 몰아붙인 바 있었다. 이 일화는 트럼프의 위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력이 얼마나 공적으로 중요한 문제인지를 나타낸 사례이기도 하다.
- ‘스마트하다‘와 ‘우둔하다‘
-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지지받기 힘들 때(힘들지만 완전히 외면되는 것은 또 아닐 때다), 학력주의는 최후의 면책적 편견이 된다.˝p.159
자신의 학력에 별 문제 없는 인사까지도 때로는 자기방어에 급급한태도를 보인다. 2018년 트럼프의 미 연방법원 판사 지명자(그리고 결국인준자) 브렛 캐버노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떠올려 보자. 청문회 막바지, 그의 인준이 어떤 여성의 고발 때문에 불투명해졌다. 고교 시절에 캐버노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고발이었다. 그가 정말 취한 상태에서 성폭력을 했느냐고 상원의원들이 묻자, 캐버노는 혐의를 부인했을 뿐 아니라 뜬금없이 자기 학력 변호까지 늘어놓았다. 자신이 얼마나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는지 아느냐면서 예일대와 예일 로스쿨에 입학했다는 것까지 강조했던 것이다. 고교 생활기록부에 음주와 성폭력 건이 기재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그는 대답했다. "저는 우리 학년 수석이었습니다. 정말 죽어라고 공부했어요. 대학 농구팀 주장이었고요. 예일대에 들어갔고요. 예일 로스쿨에 들어갔습니다. 이 나라의 제1등 로스쿨이죠. 거기서 저는 오직 공부만 파고 또 팠어요."10문제는 캐버노가 공부를 잘했느냐 여부가 아니었다. 그가 18세 때술을 마시고 파티에서 소녀에게 성폭력을 가했는지가 주제였지만, 그는 공부 이야기만 거듭했다. 하지만 2018년 당시 학력주의가 하도 만연한 나머지, 학교의 대문을 훨씬 넘어선 곳의 도덕, 정치 논쟁까지 좌우할 만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 P144
대학 학력의 무기화, 그것은 능력주의가 얼마나 폭정을 자행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계화 시대는 노동계급에게 큰 폭의 불평등 확대를, 또한 임금의 정체를 안겨주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0퍼센트는 대부분의 이익을 챙겼고, 하위 50퍼센트는 거의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진보적, 자유주의적 정당들은 이 불평등을직접 다루지 않았고, 경제의 구조적 개혁을 외면했다. 대신 그들은 시장 주도적 세계화를 받아들였으며, ‘기회의 평등을 늘리기 위한 정책* 통해 불평등한 혜택을 조장했다. - P144
더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도록 권하는 일은 좋다. 못사는 집 사람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더욱 좋다. 그러나 불평등과 수십년동안의 세계화로 노동자가 떠안게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오직 교육에만 집중하는 일은 심각한 역효과를 낳는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적 명망이 추락하는 것이다. 그런 역효과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어느 것이나 노동과 노동계급의 사회적 지위에 악영향을 준다. 첫째, 미국인 대부분은 대학 학위가 없다. 관리자 또는 전문직업인으로서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에겐 이 사실이 뜻밖일 수 있다. 비록 최근에 대학 졸업자 비율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미국의 성인 세 명 중 한 명 꼴이다." 능력주의 엘리트들은 성공과 실패의 문제를 대학 학력과 긴밀하게 엮음으로써,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이 글로벌 경제에서 힘든 상황을 겪는 것이 자업자득이라며 은연중 멸시하게 된다. 그들은 또한 대졸자의임금 수준을 한껏 높이는 정책으로 초래된 문제에서 스스로의 책임을면제해준다. 둘째,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꼴이 된 것이다"라고 말해줌으로써 능력주의자들은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일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부지불식간에 학력주의를 조장한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에게 고약한 편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학력주의 편견은 능력주의적 오만의 한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최근수십 년 동안 능력주의에 더욱 물들게 되면서, 엘리트들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는 버릇마저 들었다. 대학에 가서 자신의 조건을 향상시키라고 노동자들에게 골백번 되풀이하는 말은 아무리 의도가 좋을지라도 결국 학력주의를 조장하고 학력 떨어지는 사람들의 사회적 연식과 명망을 훼손한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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