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 55 | 56 | 5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저 이승의 선지자
김보영 지음 / 아작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에 초연해지는 우주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혼이라는 소설 2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사랑은 타이밍, 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어떤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다면 그들은 타이밍이라는 적정한 '때'를 만났기 때문일까? 어찌어찌 운이 좋아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다 해도 그 운명과도 같은 사랑이 영원과 행복을 약속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타이밍을 놓쳤을땐 어찌될까. 나와는 인연이 아니구나, 깨끗이 단념하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까. 아니다. 감히 단언컨대 그 미련은 당신에게 꼬리표처럼 달라붙을 것이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지독하다. 왜 사람은 항상 부딪치고 깨져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을까.



매들린은 질식할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레너드가 그의 무덥고 후텁지근한 원룸형 아파트까지 함께 가져온 것 같았고, 그곳이야말로 그가 정서적으로 살고 있는 곳이어서 그와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그 무더운 심리적 공간에 비집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레너드를 완전히 사랑하려면 매들린도 그가 길을 잃고 헤매는 캄캄한 숲 속으로 들어가 똑같이 헤매야 할 것 같았다.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그 숲이 마치 집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레너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점점 멀어질수록 그는 점점 매들린에게 의지했고, 그가 그녀에게 점점 의지할수록 그녀는 점점 깊숙한 곳으로 기꺼이 따라갔다. P.283



<결혼이라는 소설>은 청춘의 민낯과도 같다. 보통의 영화나 소설처럼 확실한 기승전결이 없다. 아주 느리고 따분하게 흐르는 일상과도 같은, 그러나 한 그루의 나무를 보던 시선을 돌려 한 발 물러서면 거대한 숲이 보이는 것처럼. 그 어떠한 훈수 없이 청춘이 가진 오만과 열정을 잘 보여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공허함과 불안 동시에 무한함을 느끼는 청춘. 어릴 적 나는 남들과 다르며, 세상의 이치를 잘 안다고 자부하던 그 시절의 감성이 가끔은 그립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습관처럼 여주인공이 누구와 이어질까만 생각했다. 그러나 끝에 다다라서야 또 이렇게 깨닫는다. 미첼은 인도 여행에서, 매들린은 구제하지 못한 사랑에게서, 레너드는 지독한 조울증에서 모두가 실패를 경험하고 또 배워 나간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혼이라는 소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고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인가 했는데, 메인이 청춘이고 사랑은 곁다리였다. 방황하는 청춘과 씁쓸한 사랑 이야기. 시작은 대학교 졸업식날 아침,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뜬 매들린을 괴롭게 한 것은 부모님의 방문과 숙취 그리고 실연이었다. 사회 주류계층에 속하며 안전지대 안에서 자라온 매들린은 위험요소와는 거리가 멀다. 문학을 좋아해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녀가 대학교 졸업반이 되어서야 떠밀리듯 수강한 기호학 수업에서 레너드를 만났다. 늘 혼자 다니며 어딘지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동시에 성숙해보인다. 그동안 매들린이 했던 몇 번의 연애는 따분하고, 다분히 육체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똑똑하고 주도적이며 어른스러운 레너드에게 빠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라도 그랬을테니까. 따분하게 흐르는 일상에서 발견한 특별함을 애써 밀어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특별함을 느낀 사람이 또 있다. 신입생 예비 교육 기간에 열린 어느 파티에서 미첼은 늘 그렇듯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와 있는 사람처럼 불편함을 느낀다. 그때 군중 속에서 그녀를 발견한다. 자신처럼 파티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딘지 불편한듯 보이는 매들린. 이렇듯 언제나 타인에게 특별함을 느끼는 순간은 불시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난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결혼 플롯과 함께 그 절정에 도달했으며, 결혼 플롯이 사라지면서 다시는 원래의 위치를 되찾지 못했다는 것이 손더스의 견해였다. 인생의 성공이 결혼에 달려 있고 결혼은 돈에 달려 있던 시대에 소설가들은 글을 쓸 만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던 셈이다. 장대한 서사시는 전쟁을, 소설은 결혼을 찬미했다. 남녀평등은 여성에게는 이롭지만 소설장르에는 해로웠다. 게다가 이혼은 소설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에마[제인 오스틴의 소설 '에마'의 여주인공]가 법적으로 별거를 신청할 수 있다면 그녀가 누구와 결혼하든 무엇이 문제겠는가? 이저벨 아처와 길버트 오스몬드[헨리 제임스의 소설 '여인의 초상'의 두 주인공]의 결혼은 혼전 합의서의 존재에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결혼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으며 소설 또한 마찬가지라고 손더스는 우려했다. 오늘날 결혼 플롯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p.61



제프리 유제니디스 <결혼이라는 소설>의 영문 제목은 THE MARRIAGE PLOT 이다. 소설 쓰기에 좋은 주제였던 '결혼 플롯'이 그 힘을 잃으면서 오늘날엔 찾기 힘든 시시한 소재가 되었다. 결혼이 갖는 의미가 많이 퇴색된 요즘,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소설은 분명 예전에 읽었더라면 나의 감상평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결혼이라는 소설>은 결혼 플롯의 새로운 유형을 선보인 소설이 아닐까 싶다.



<사랑의 단상>은 완벽한 상사병 치료제였다. 그것은 심장 수리 설명서였고, 뇌를 위한 일종의 공구였다. 만약 머리를 쓴다면, 사랑이 문화적으로 구축된 방식을 인지하고 자신의 증상을 전적으로 정신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면, '사랑에 빠진' 존재란 그저 하나의 관념에 불과함을 깨닫는다면 바로 그 순간 사랑의 폭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매들린은 그 모든 것을 알았다. 문제는 그것이 아무 소용 없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사랑에 대한 바르트의 해체론을 온종일 읽으면서도 레너드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눈곱만큼도 줄어들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의 단상>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는 점점 더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모든 페이지에서 자신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바르트가 만든 가공의 '나'와 동일시했다. p.211



드라마나 영화에선 이별노래를 들으며 떠나간 연인에 대한 상실감에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데 이 책에선 책을 읽으며, 그것도 사랑에 대한 해체론을 읽으며 레너드와의 사랑을 곱씹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딘지 낭만이 느껴진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해서 일까, 청춘이라는 시간 위에 있어서 일까. 가을이 느껴지니 마음이 헛헛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부쩍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눈에 들어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담백한 문장을 좋아한다. 꾸밈없이, 불필요한 묘사나 서사가 없는, 거짓없는 문장. 짧은 독서인생에서 이토록 맘에 드는 글을 만난 적이 없다. 읽을 때 재밌으면 그만이고, 글 참 잘쓰네, 감탄하며 책을 덮으면 그만이었다. 호불호 불분명한 내가, '쇼코의 미소' 첫문장을 읽었을 때 느낀 감정은 영혼의 떨림이었다. 담백한 문장이 좋다면서 뭐 거창하게 영혼까지 들먹이나, 싶겠지만 다른 표현은 찾지 못하겠다. 문장이 좋고 표현이 와닿아서 발을 동동 굴렀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턱도 벌릴 수가 없었다. 턱을 벌려 입을 열면 눈물이 쏟아져내릴 것 같아서였다. 그제야 할아버지의 마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말라가고, 피부가 누렇게 변해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 단지 노화가 조금 빠르게 진행된다고만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는 그리도 예민했으면서 할아버지의 상황에는 왜 그토록 무뎠었는지." - 쇼코의 미소 中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예민한 기질 때문에 일상에서 받는 상처가 유달리 크게 느껴지고, 항상 남들보다 뒤쳐진 기분을 느끼며, 마음 한구석엔 늘 어둠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은. 고독과 외로움이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란 것은 잘 안다.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니까. 그러나 이런 공허함은 타인과 나누기 전까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에게 '쇼코의 미소'는 교감이고 공감이었다. 더 나아가 타인과 단절하고 내면으로만 파고드는 나의 이기적인 면을 가슴 저릿하게 일깨워주었다.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내가 되는 것. 내가 나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이다.



"그런데 너도 여기에 초대받아서 왔어?"

"아니. 처음에는 그냥 일주일만 머물려고 했었어. 일주일이 이 주일이 되고, 이 주일이 삼 주일이 되고, 나도 내가 얼마나 여기에 있을지 몰라. 학교도 휴학했고, 아무 계획이 없어. 난 스물일곱 살이야.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아."

"왜?" 한지가 물었다. "도피하는 건 옳은 게 아니니까. 내 삶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니까."

"괜찮아, 영주." 한지가 말했다. 충동적으로 여기에 머물기로 한 것도, 네가 해야 했던 일을 내팽개쳐버린 것도, 수도원 생활도 모두. 괜찮아. 그 이야기를 하는 한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나를 위로하려는 얼굴도 아니었고,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빈말을 할 때의 얼굴도 아니었다. 웃을 때조차도 상대방을 의식하는 어른들의 얼굴도 아니었다. 한지의 얼굴은 그저 자연스럽게 풀려 있었다. - 한지와 영주 中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외면하고 싶지 않은 것은 최은영 작가가 가진 이런 따뜻한 시선 때문인지도 모른다. 힘내, 잘 될거야, 처럼 받는 즉시 불편해지는 부담스러운 위로가 아닌 공감의 한마디. 어제까지도 나를 짓누르던 고민이 한순간 별거 아닌 것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는 힘. 나는 늘 '한지' 같은 인물이 내 주변에 있기를 바라왔다. 나를 북돋게 하고, 좌절할 때면 다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주변인은 아니지만 삶에 귀감이 되는 책을 만났고 작가를 만났다. 이제 바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 되겠다.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따뜻한 어른이 되겠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람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 한지와 영주 中



순간 순간의 문장들은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는 내 마음에 곁가지를 쳐내고 잘 다듬어 글로 옮겨놓은 것처럼 나를 울렸다. 나조차도 내가 왜 이토록 이 소설에 마음이 뭉클해지는지 궁금했는데, 해설에 나온 설명을 보고 알았다. "그런 힘은 기본적으로 서사의 결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좀더 직접적으로는 최은영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면이 많아 보인다. 그들은 대체로 희미하고 조용한 사람들이고, 삶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우울과 슬픔 속에서도 서로 간의 유대화 공감의 끈을 놓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정감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 해설 中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공감하고 또 공감했던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엔 우울증이 기반돼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곁엔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가까운 가족이기도 하고, 낯선 타인이기도 하며,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이기도 하다. 언어를 넘어서는 정서적 공감과 유대감.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덕목이다. 선천적으로 눈이나 위가 약한 사람이 있듯이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를 열고 싶다던 저자의 말. 나는 앞으로 최은영 작가의 글이라면 무조건 읽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1900-1930 한국 명작소설 1 : 문학사를 이해하는 관점,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 | 로맨스, 풍자, 계몽 등 작가별 대표작품을 만나다! - 근대의 고독한 목소리 한국문학을 권하다 단편 모음집 1
이인직 외 지음 / 애플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과서를 벗어나 다시 읽는 한국문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 55 | 56 | 5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