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순천역까지 갈 수가 없었다. 순천에서 밀려난 경찰들에 의해서 외곽지역이 봉쇄되고 있었던 것이다. 적의 반격은 의외로 신속했다. 이십삼일아침부터 중심가를 향해 무차별 비행기 폭격을 감행하는 것으로 반격을 개시했다. 지상군에 앞서 비행기 폭격이 감행되고 있는 것은 미군의 본격적인 출동을 의미했다. 무고한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읍내 전투를 피해 병력을 외곽으로 분산시키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병력 분산은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적들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순천 읍내로 진입했다. 이틀 동안 적을 외곽으로 유인해내기 위한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여수 쪽의 상황변화에 대처하고 있었다. 여수앞바다에는 미군 함정이 떠서, 읍내 중심가를 향해 또한 무차별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여수에서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십육일 밤을 기하여 모든 병력을 순천 외곽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백운산을 거점으로 하는 부대 편성과 이동이 구체화되었다. 그것은 투쟁의 장기화를 위한 작전수립이었다. 따라서 투쟁지역을 지리산과 그 주변으로 확대시켜 기존 지방조직들과 공동투쟁을 전개한다는 목적이포함되어 있었다.

*지리산(빨치산)투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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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섭은 글을 마치며 코허리에 매운 바람이 찡하니 맺히는 걸 참아내느라고 잠시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어머니는 도무지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다. 혁명의 열기나 정열마저도 어머니라는 이름은 눈물로 녹이려 든다. 어머니라는 호칭은 여자만이 갖는 것인데 정작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다. 어머니, 그 슬픈 이름의 항시 새로운 그리움은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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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의를 따르는 그건 개인의 자유지요. 그러나, 그것이 곧 민족 전체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미국이다, 소련이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정치적 택일이 아닙니다. 그거한 민족이 국가를 세운 다음에나 필요한 생활의 방편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족의 발견입니다. 그 단합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해요.‘
 김범우는 이마에 돋은 식은땀을 닦으며 말을 마쳤다. 결코 입 밖에내고 싶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치닫고 있는 염 상진을 보자 그 말만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네 말은 아주 그럴 듯해 보여. 그러나 그건 브르주아적 환상이야."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미·쏘에 점령당한 상태에서 그들이 내세우는 이데오로긴가 이념인가 하는 것에 놀아나 민족이 서로 갈라 져서는 안된다는 뜻인데, 그게 부르주아적 환상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요?"
 "우리에게 해방은 곧 인민혁명이야, 해방은 곧 새 역사의 시작을 의미하고, 그 시작은 인민혁명을 통한 새 나라의 건설부터네, 그런데 자넨 시대역행적으로 케케묵은 민족이나 찾고 있지 않느냔 말야.‘
 "그렇게 속단하지 마세요. 민족이라고 하니까 핏줄만을 중시해서어중이떠중이 다 싸잡아서 말하는 민족인 줄 압니까? 현시점에서 친 일반역세력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어요. 그런 부류들을 완전히 제거한 상태에서 절대다수의 민중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집단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굳이 ‘민족의 발견‘이라고 했어요. 형은 그게 바로 인민혁명세력의 규합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닙니다. 그 민족에는일체의 정치성이 배제되어야 합니다. 아니, 더 확실하게 말해 그 민족아래 모든 정치이념들은 단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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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재판..."존 귀경거리고 말고라. 죄는 진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간다고,
즈그놈덜이 평소에 옳이 사는 사람덜 아프고 씨린 맘 몰라주고 행투고약허게 해감서 배 터지게 묵고 살았응께 고렇게 당혀서 싸제라. 고것들이 하나썩 죽어 자빠지는데, 씨엉부 잘됐다, 씨엉쿠 잘되았다, 허는 소리가 속에서 절로 솟기드만요. 고런 맘이 워디 나 혼자뿐이었을랍디여. 말을 안 혔응께 그렇제 귀경허는 전부가 다 똑겉은 맘이었을꺼구만이라."
문 서방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 있었다. 그의 눈은 증오로타고,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김범우는 하나의 악마를 보고있었다. 아버지를 위해 눈물을 머금던 아까의 그 착하고 선량하던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김범우는 섬뜩하게 끼쳐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사고(考)를 정리하려 하고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전혀 다른 두 모습의 문 서방, 그 어느쪽이 진짜인가.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표변할 수 있는가. 그 어느쪽이 진실인가. 사람이 어떻게그토록 이중적일 수 있을까. 그때 퍼뜩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있는자들은 자기들만 사람인 줄 알지. 더러 그렇지 않은 우등생도 있지만말야. 난 그 단순한 자만을 고맙게 생각하네. 거기에 우리가 설 자리가 있고, 그게 그들 스스로가 빠져들어갈 함정이니까." 염상진의 말이었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모습은 다 문서방의 참오습인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면서 외부의 영향과 상황에 따라 그것은 반응하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악한 지주였다면 문 서방은 여지없이 악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 서방의 악은 악이 아니라 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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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고 삼 년을 거쳐오는 동안 쉴 새 없이 일어난 사회 격랑과 정치적, 사건들은 하나같이 민족의 운명을 불행 쪽으로 몰아붙이는 것들뿐이었다. 그의 의식 속에서는 성난 소가끄는 수레바퀴처럼 그가 겪어내고 목격했던 수많은 사건들이 제각기 소리치고 냄새 풍기며 굴러가고 있었다. 그 격렬한 회전을 하는 사건 들은 멀리로는 학병시절에서부터 가까이는 금년 봄에 치른 단독선거에까지 걸쳐진 것이었다. 그 기억의 수레바퀴는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점점 가속도가 붙었고, 그에 따라 그의 감정도 열도를 높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고, 그 절정에서 그는 문득 현실이라는 절망의 벽을 만나고, 그 순간 그의 뜨거워진 가지은 그만큼의 반대 온도로 일순간에 냉각되어버리고, 그 감정은 조각조각 깨지면서 그를 절망의 바다로 끝도 없이 빠뜨려가는 것이었다.그는 마치도 주기적 발열을 보이는 열병을 앓듯 어떤 충격적 사건에부딪치거나,극히 염려스러운 문제가 야기되면 또 감정의 회전을 되불이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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