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단단함 - 세상.영화.책
오길영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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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1월 늦가을을 보내며 선택한 세 번째 에세이다. 충남대 오길영 교수의 에세이 <아름다운 단단함>.

이 책의 머리글이 참 좋았다. 에세이는 어원 자체가 '시도하다'에서 왔다. 그래서 저자는 "에세이는 글쓴이가 자유롭게 선정한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은 견해를 '시도'하는 글이며, 사유를 실험하는 글쓰기"라고 말한다. 에세이는 단순한 감상적 체험의 글이 아니며 지성과 개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현란한 글재주가 아니라 지성적 사유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성찰과 자기 응시가 빠진 에세이는 감상주의에 물든 글이며, 이 책은 철저히 저자가 "감상적 체험, 직접적 현실, 그리고 자연발생적인 현존재 원칙으로서의 지성과 개념"을 재료로 하여 쓴 글의 모음집이다.

세상, 영화, 책을 주제로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저자의 지성적 사유가 표현되는데,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혹은 나와 다르거나 같은 생각들을 만나 즐겁고 뜨겁게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내가 보지 않고 읽지 않은 영화와 책이 많아 볼 거리, 읽을 거리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나는 특별히 1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책과 영화는 아직 문화적 소양이 부족한 내게 숙제와도 같았지만 꼭 보고 싶고 읽고 싶게 했다.
저자가 다룬 주제는 미당 서정주의 시에 대한 에세이 평론, 문학 표절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들, 철밥통 문제, 권력, 세월호를 통해 바라본 용서와 화해의 조건, 신영복, 권력과 욕망 등이다. 저자의 글은 잘 읽히며 크게 군더더기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명확하여 신뢰감이 든다. 기억에 나는 문구를 몇 가지 적어 보았다.

좋은 에세이는 한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내면에 스며있는 역사와 사회의 풍경을 포착한다. (중략) 좋은 에세이는 몇 가지 요건을 필요로 한다. 첫째, 경직된 형식이나 체계로는 표현되기 어려우면서도 표현되기를 갈망한 독특한 체험, 둘째, 그 체험을 갈무리하는 지성과 사유의 깊이, 셋째, 이런 물음을 그만의 고유한 형식과 스타일로 표현하는 능력, 정리하면 체험의 사유와 표현의 완미한 결합이 좋은 에세이의 요건이다.
p92

저자의 에세이에 대한 지론이다. 말랑말랑 감성을 쏟아내는 글도 좋지만 지성과 사유의 깊이가 드러나는 글. 나는 언제 그런 글을 써볼 수 있을까.
교수 철밥통 관련 기사에 대한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인상적이었고, 내 생각과 같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사회 전반에 걸쳐, 특히 자본과 국가에게 밥그릇의 철밥통을 당당하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남의 철밥통까지 빼앗아야만 철밥통이 흔들리는 '나'의 마음도 편해진다는 속좁은 이기주의는 결국 모두를 공멸하게 만든다.
p121

철밥통 끼고 산다는 소리 깨나 들어본 내가 공감한 부분이다. 교사나 공무원, 교수, 공기업 등 철밥통 직업은 가진 사람들을 겨냥하는 기사와 그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공격을 보면서 사회 분열과 이기주의의 단상을 보았기에 공감했던 대목이다.

신영복 교수가 저자에게 결혼 덕담으로 건넨 말도 인상깊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오늘도 절망을 가르치고 집에 온 것 같아서 읽으면서도 뜨끔하고 고민되는 문장이었다.

영화 <기생충>, <옥자>, <곡성> 등의 한국 영화 평론뿐만 아니라 <그린북>,<셰이프 오브 워터>, <첨밀밀> 등 다양한 외국 영화 평론을 읽으며, 일단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던 저자의 여유(?)가 부러웠다. 아이 낳고 직장 다니며 사는 어미의 삶이란 참으로 고달파 아이가 좀 크면 봐야지 하는 게 영화다. 시간적 여유도 그렇지만, 뭔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영화가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팍팍한 삶에 시간 겨우 낸 틈마저 머리 싸매고 싶지 않아 그냥 웃고 마는 영화만 극장서 골라봤던 것인데, 이 책에 언급된 영화들은 모두 지성적 사유가 필요한 일명 '머리 아픈' 영화일 수 있다. 첨밀밀 정도 빼고. 그런데 이제 여유가 좀 생겨 영화를 볼 틈이 생기면 메시지를 깊게 던지는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런 영화의 예들이 이 책에 있다.

책을 내가 읽기 시작한 지는 얼마되지 않아 역시 내공 부족이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하는 책들은 수준이 상당하다. <하이데거와 나치즘>이라든지 <카프카의 프라하>, <안나 카레리나> 등 상당한 깊이와 내공이 필요할 것 같은 책들과 그 평론들이 서술된다. 이렇게 책을 읽어야하는 거구나 많이 배우고 느낀다. 비평하고 성찰하는 작업을 꾸준히 거치며 글쓰기가 정렬되고 좋은 에세이가 탄생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나의 단어 실력 및 지식의 수준에 다시 좌절했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글에 등장하는 랑시에르의 신화적 사고, 알튀세르의 '유물론자는 자기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견지에서 카프카의 '세계와 당신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세계의 편에 서라'는 문장과 라캉의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부분은 깊게 새겨야 할 문장들이자,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아름다운 단단함. 아름답고 단단한 삶은 그냥 오지 않는다. 저자처럼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반성, 지성과 사유를 통해서만 아름답게 단단해질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지성적 사유의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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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5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안성찬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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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졌었다. 믿었던 집단에 실망도 하고, 어떤 집단은 표리부동한 느낌도 받았고, 복지ㆍ교육ㆍ주거ㆍ경제ㆍ 외교 등 주요 쟁점에 대해 내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도 없다보니 점점 관심이 옅어지고 나와는 딴세상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되든 누가 집권하든 내 삶이 크게 바뀌겠느냐는 가장 좋지 않은 생각으로 가득찬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총선, 또 대선, 내 표 하나를 행사하기 위해 좀더 내가 적극적으로 정치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특히,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래졌다. 내 아이가 살아갈 곳이 좋은 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길 바라며 멀어진 관심을 되찾기 위해 정치가 뭔지 원론적으로 알고 싶었고, 그래서 읽게된 책이다.

저자는 아들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책의 내용을 전개해나간다. 이 책은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라는 타이틀의 <누구나 교양>시리즈로 이 책의 저자는 '윤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죽음에 저항(혹은 보상, 위안)하기 위한 방편으로 영원한 공동체를 제공하는 '사회' 안에서 언어와 의사소통을 가지고 하는 놀이를 즐기는 사회적 동물이다. 이 책은 인간이 복종하는 이유와 저항하는 이유를 모두 합쳐놓은 '정치'라는 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논의가 전개된다. 절대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어떻게 탄생되는지, 그리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아주 단순한 집단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이것이 그리스인들로 인해 혁명적으로 변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원시 집단에시는 자연에 의해(힘에 의해), 좀더 규모가 큰 사회에서는 신학이 집단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특별한 능력에 집중하게 되고 시민공동체 폴리스를 만들어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법앞에서의 평등이란 원칙을 따르고 있고 그것은 다수에 대한 믿음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혁명적이었다. 로마에서는 법제를 만들어냈고, 국가라는 전체에 대해 개인이 정치에 개입하며 공동체 안에서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는 인권을 논의하기에 이른다.
정치가를 부패하게 만드는 정치 혐오증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또한 돈(자본)과 노동이라는, 정치와 뗄 수 없는 것들이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인구 문제나 환경 문제도 정치와 전혀 다른 차원의 논의가 아니다. 때론 자국의 이익 또는 세계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기치 아래 전쟁이 자행되기도 한다. 자유로운 민주 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요구하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때론 감시하고 더 협조해야한다. 이 책의 미지막에서는 세상을 저주하는 바보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사회적으로 연대하는 과정에서 정치는 성숙하고 사회는 올바르게 성장한다.

정치가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역사적 과정과 올바른 정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중요한 건 결코 정치가 나와 관련되지 않은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살아가는 곳곳의 문제들은 모두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 나의 한 표와 관심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바보를 의미하는 idiot는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에 어원이 있다고 하는데, 더 이상은 바보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때마침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를 100분 생방으로 한다고 한다. 거기 초대된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성을 갖고 있느냐부터 시작하여 또 이 생방이 끝나면 온갖 언론에서 지지하든 헐뜯든 할게다. 나는 이 정치적 상황을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덮어두는 식의 사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려면 언론을 비판적으로 보고 사회에 대해 더 공부하고 나의 시각을 넓히고 다른 시각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진짜 idiot가 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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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가지 삶의 태도 - 나폴레온 힐의 마지막 인생 강의
나폴레온 힐 지음, 유혜인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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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삶을 대하는 여덟 가지 삶의 태도에 대해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제안으로 기자였던 나폴레온 힐이 집필한 책이다. 미국을 이끈 위인들을 잘 관찰해서 그들이 개발하고 실천한 인생철학을 무보수로 연구해 책을 써보라는 카네기의 제안으로 시작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책의 첫 장에서 언급하는 '명확한 목표'가 부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직장이 없던 때는 그게 그렇게 간절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학위도 논문문턱 앞에서 그만두고 모든 계획이 올스톱이었다. 이 책에선 5년 안에 이룰 명확한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계획을 짜고 행동을 하라고 하는데, 목표를 만드는 아홉 가지 기본 동기 중 내가 목표를 만드는 데 가장 중점을 두는 욕구는 자기보존욕, 개인의 표현과 인정인 것 같다.
그 다음 장은 정확한 사고에 대해 얘기하는데 사실과 소문을 분리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실과 중요한 사실을 구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함을 얘기한다. 크든 작든 삶의 핵심목표에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움을 주는 사실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때까지는 조용히 항상 의문을 품고 사실여부를 탐구해야한다.
세 번째는 실행하는 믿음이다. 시크릿같다. 의심하지 말고 될거라고 생각하는 믿음과 기도(종교적 의미를 떠나), 그리고 모든 성공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 특히 이 책에서는 자연이 고유한 방식으로 실패와 좌절에 보답하며 그러한 자연법칙을 무한히 신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는 핵심목표부재, 교양ㆍ자기수양ㆍ야망ㆍ끈기의 부족, 부정적 마음가짐, 통제하지 못한 감정, 두려움에 굴복(가난, 비판, 병, 실연, 노화, 자유 부재, 죽음)하는 것 등등 때문에 발생한다. 물론 이런 이유로 실패했다 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며, 거기에 더하여 끈기와 빠른 결단력, 그리고 시간을 잘 활용하여 자기 수양을 하는 것은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질이다.
호감 가는 성품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는 긍정적인 마음가짐, 너그러운 마음, 유머 등 당연하게 들리는 요소들도 있지만 융통성, 눈치 빠른 말과 태도, 무한한 지성에 대한 믿음과 같은 요소는 새롭게 다가왔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난 융통성이 특히나 부족한데 말이다. 앗,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했다. 나는 가능하다는 긍정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 장인 놀라운 습관의 힘은 우주의 습관력에 따라 인간이 이에 적응해 자기만의 패턴을 만들고 실행해야 하며 명확한 목표를 상낭하고 수백번 반복하여 습관으로 만들어주면 그 목표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나폴레온 힐에 대해 알게 되고 이 사람이 긴 시간을 연구해온 결과를 만나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간 목표부재로, 흘러가는대로 대충 살던 내가 나를 돌아보게 된 기회였다. 특히 마지막 장은 많은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듯 시크릿이나 호오포노포노, R=VD 같이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이제는 실제로 그걸 실천해 볼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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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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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지는 가을, 겨울에 딱인 따뜻한 로맨스소설을 오래간만에 읽었다. 영국 런던이 배경인 영국소설이자, 진짜 연애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연애소설 . 

셰어하우스 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남녀의 동거 를 주제로 한 로맨틱코미디 장르이지만 마냥 가벼운 소설은 절대 아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이 넘쳐나는 소설이다. 가제본으로 읽게 되어 영광이었다.


 "그 없는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았다."

"철조망 사이로 보일까 말까 하는 하늘은 이곳을 비웃듯이 푸르렀다."

DIY 관련 책 출판사의 편집자인 티피는 동거하던 남자친구 저스틴이 바람을 피우고 딴 여자랑 약혼하는 바람에 같이 살던 집을 나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형편에 맞는 집을 구하지 못한 티피는 우연히 한 집을 두 사람이 같이 공유해 쓰는 셰어하우스 광고를 보게 된다. 시간대는 다르게, 그러나 침대는 같이 쓸 수 밖에 없는 셰어하우스에 들어가기로 티피는 맘을 먹는다. 집 주인은 호스피스 병동 남자간호사인 리언. 야간 근무를 하는 리언은 동생 리치의 억울한 수감생활을 구제해 줄 변호사 비용 마련을 위해 셰어하우스를 광고를 냈던 것이었다. 각자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는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티피는 일 때문에 승선하게 된 유람선에서 전 남친 저스틴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의 눈빛, 그리고 뒤이어 온 문자에 마음이 흔들린다. 티피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케이크를 잔뜩 만들어 먹고 룸메이트인 리언에게 줄 양도 남겨놓는다. 리언과 티피는 셰어하우스 생활을 하는 4개월동안 만난 적 한번 없지만 서로 음식을 만들어 남겨놓기도 하고, 각자의 연애사에 대해서도 간단한 얘기를 나누는 등 티피의 수다스런 성격으로 인해 시작된 메모를 주고 받으며 점점 가까워진다.


한편, 티피는 우연히 리언 동생 리치의 전화를 받게 된다. 리치의 사연을 들은 티피는 리치가 주장하는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지 절친인 변호사 거티에게 의뢰한다. 티피에겐 자신의 모든 일을 의논하는 절친이 둘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솔직하고 거침없는 변호사 거티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차분하고 사려깊은 심리상담사 모이다. 

"그놈은 너에게 독이었어. 어디로 어떻게 갈지 시키고, 그렇게 하고 나서도 너를 거기까지 데려다줬지. 왜냐하면 너 혼자서는 길을 찾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너에게 주입시키려고"(p239)


티피는 목공 관련 책 홍보 파티에서 책 저자인 켄이라는 남자와 술을 먹다 엉겁결에 키스를 하게 되는데 그순간 전 남친 저스틴이 생각나면서 모든게 엉켜있는 기분을 느낀다. 그 순간 우연처럼 저스틴이 나타나 그가 약혼녀와 헤어졌고, 다시 티피와 시작하고 싶다고 말한다.

저스틴은 티피와 사귀는 아주 오랜 시간, 서서히 티피의 감정을 지배해왔다. 늘 자신의 방식으로 티피를 대하고 상대의 감정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으며, 끝내주게 사랑하다 또 이별을 선언하고 다시 맘대로 돌아오는 걸 반복하며 티피를 곤란하게 했다. 

 



티피는 저스틴이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의 감정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도 저스틴이 불현듯 생각나며 두렵고 몸과 생각이 굳어버리는 증상을 겪는다. 타인의 심리적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그 사람의 감정을 지배하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종속적 관계의 성립, 가스라이팅 이라 불리는 감정적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티피의 자존감과 독립심은 땅에 떨어졌다. 

 



소설의 중심적 인물은 아니지만 호스피스 병동의 꼬마 홀리와 죽음을 앞둔 노신사 프라이어는 티피와 리언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말이 없고 늘 조용한 리언이 실은 좋은 사람들을 위해 말을 아껴놓는 거라고 말하는 꼬마 홀리의 시선이 기특하다. 또한 프라이어 씨의 동성 애인이었던 조니 화이트를 찾기 위해 리어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고 티피와의 애정 전선이 급물살을 타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왜 작가가 티피의 직업을 DIY 책 관련 출판사 편집자로, 리언의 직업을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로 설정했는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가스라이팅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변화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아무리 다그쳐도 소용없다. Do It Yourself는 그런 깊은 뜻이 왠지 있을 것 같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리언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그들이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함께 해준다. 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건 공감과 배려, 존중이었을 거다.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 리언처럼.

이 소설은 티피와 리언의 시각이 번갈아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리언의 셰어하우스에서 그들은 단지 침대만 셰어(share)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주고받는 메모로 인해 그들은 서로를 급하지 않게, 천천히 서로를 셰어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메모를 썼다 지웠다 하기도 하고, 내 메모에 대한 답장을 기다리며 서로의 감정을 배려하고 인내하는 과정이 메모에 담겨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집(house), 그 따스한 공간의 의미에 대해서도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 모두에게 집은 친밀한 누군가와 세밀한 감정을 나누며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공간 아니던가.

겉으론 너무도 다를 것 같은 티피와 리언의 감정이 무르익는 과정, 그리고 그 달달한 연애. 그 이면에 숨겨진, 내 애인은 내꺼라는 소유욕으로 인해 시작된 가스라이팅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주는 상처, 그 와중에 끈끈한 청춘들의 진실된 우정, 조니 화이트 찾기의 결말, 리치의 억울한 수감생활의 끝, 그리고 중간중간 깨알같은 여러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까지. 

실타래같이 촘촘하게 엮어진 이 가을의 따뜻한 연애소설. 베스올리리의 셰어하우스(The flatshar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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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다른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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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과 다른 나. 제목만 보고선 이 소설의 내용을 미리 짐작할 수 없었다. 나의 존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요즘이라 이끌리듯 펼치게 되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를 보이며 굉장히 독특한 구성을 취하는 소설이었다.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1, 3, 5장은 여성화자, 2, 4, 6장은 남성화자가 말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홀수 장과 짝수 장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가 두 이야기가 묘하게 같은 듯 다른 듯 겹쳐지며 무엇이 진실인지, 뭐가 뭔지 모를 혼란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란 구절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나는 두 번 읽었다, 이 책을. 한 번은 그냥 스토리위주로 슬슬 흘러가듯 읽었는데 읽고나서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아 다시 홀수 장 먼저 읽고 짝수 장끼리 또 따로 읽었다. 결국 겹쳐지더라도 남자와 여자 따로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홀수 장의 여성 화자는 제약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건망증인지 치매인지 모를 기억 상실, 해리를 넘어, 키우지도 않은 개를 잃어버렸다며 찾아다니는 것에 혼란스러워 한다. 남편은 결혼 전 떠난 여행에서, 있지도 않은 고래가 있다며 사진셔터를 눌러대고 그 날 봤던 풍경 중 있지도 않았던 고래를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제약회사 연구실에 전화했을 때 남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남편은 누구란 말인가.

짝수 장의 남성 화자는 소설가인데 우연히 그의 아내 미양이 남편을 찾는다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고 자기 남편과 꼭 닮았다고 생각한다. 한편, 서점에 들른 남편은 어떤 낯선 여자가 자길 남편으로 생각해 따라오다가 착각했다며 남편이 실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그런데 안치소에 있던 자기 남편얼굴이 낯설더라고 얘기하는 걸 들어준다. 경찰이 얘기하는 남편도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고, 제약회사서 일한다던 남편을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서류상은 맞는...그런 얘기.
고래가 없는데도 고래가 있다고 하고 온통 거짓말뿐이었다는 그 여자의 남편. 게다가 그 남편이 미양 남편과 너무 닮았단다. 이 이야기는 미양 남편이 쓰는 소설과 흡사했다. 그 소설 첫 이야기가 이 책의 1장이다. 미양은 인터넷에 올라온 남편 찾는 글에서 자기 남편과 유사성을 발견하고 친한 선배에게 전활걸어 울고, 남편 찾는 글에 적힌 번호로 전활 건 미양남편은 자기 얼굴을 찍어 올린 초상권, 자기 소설 이야기를 여자의 일인양 올린 저작권 등을 내세우며 윽박지르려 했지만 연락을 기다렸다는 차분한 여자의 음성에 그 여자 주소지로 찾아간다. 그 여잘 찾아간 미양 남편은 자기를 남편으로 대하며 욕실에 누군가 죽어있는 것같은 뉘앙스를 취하고 밖으로 나가버린 그 여자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때 친한 선배가 전화가 와 미양이 증거를 잡았다며, 네가 어딜 들어갔냐며 다그친다. 그때 미양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내가 다봤다며, 문열라고 소리치는데서 끝이 난다.

묘하게 뒤섞인 이야기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며 형체가 불분명한 느낌이다. 범죄사건얘기 같기도 하고, 치매를 앓는 얘기 같기도 하며 이 소설 속 이야기도 소설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겹쳐진다. 나는 요즘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남들이 보는 외부의 내가 진짜 나인지 헷갈리며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라는 사람은 온전히 내가 생각하는 내가 정답일까?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가 분명하게 캐치하진 못했다. 나는 타인과 다른 나의 인식론적 본질에 대해 탐구하길 원했으나 이 소설은 존재론적 본질의 허구성에 대해 얘기하는 느낌이어서 색달랐고 그래서 더 어려웠다. 소설의 주제가 존재론적 본질이 허구일 수도 있다는 것인지 나와 같은 또 다른 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인지, 범죄에 관한 이야기인지, 초기 치매에 관한 이야기인지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라 어려웠고 작품해설을 읽었지만 단순한 내가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토리가 분명 간단한데 그 간단함이 뿌옇게 흐려지 잘 보이지 않는 느낌. 그래! 마치 드라마 W 같았다. 이종석, 한효주 주연의, 결국 만화캐릭터인 이종석이 현실과 가상, 두 개의 실존을 건드리는. 이 책은 드라마만큼의 촘촘한 서사가 아니라 독자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던지며 끝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 흐려진 뒤엉킴을 의도한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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