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다른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과 다른 나. 제목만 보고선 이 소설의 내용을 미리 짐작할 수 없었다. 나의 존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요즘이라 이끌리듯 펼치게 되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를 보이며 굉장히 독특한 구성을 취하는 소설이었다.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1, 3, 5장은 여성화자, 2, 4, 6장은 남성화자가 말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홀수 장과 짝수 장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가 두 이야기가 묘하게 같은 듯 다른 듯 겹쳐지며 무엇이 진실인지, 뭐가 뭔지 모를 혼란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란 구절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나는 두 번 읽었다, 이 책을. 한 번은 그냥 스토리위주로 슬슬 흘러가듯 읽었는데 읽고나서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아 다시 홀수 장 먼저 읽고 짝수 장끼리 또 따로 읽었다. 결국 겹쳐지더라도 남자와 여자 따로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홀수 장의 여성 화자는 제약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건망증인지 치매인지 모를 기억 상실, 해리를 넘어, 키우지도 않은 개를 잃어버렸다며 찾아다니는 것에 혼란스러워 한다. 남편은 결혼 전 떠난 여행에서, 있지도 않은 고래가 있다며 사진셔터를 눌러대고 그 날 봤던 풍경 중 있지도 않았던 고래를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제약회사 연구실에 전화했을 때 남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남편은 누구란 말인가.

짝수 장의 남성 화자는 소설가인데 우연히 그의 아내 미양이 남편을 찾는다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고 자기 남편과 꼭 닮았다고 생각한다. 한편, 서점에 들른 남편은 어떤 낯선 여자가 자길 남편으로 생각해 따라오다가 착각했다며 남편이 실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그런데 안치소에 있던 자기 남편얼굴이 낯설더라고 얘기하는 걸 들어준다. 경찰이 얘기하는 남편도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고, 제약회사서 일한다던 남편을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서류상은 맞는...그런 얘기.
고래가 없는데도 고래가 있다고 하고 온통 거짓말뿐이었다는 그 여자의 남편. 게다가 그 남편이 미양 남편과 너무 닮았단다. 이 이야기는 미양 남편이 쓰는 소설과 흡사했다. 그 소설 첫 이야기가 이 책의 1장이다. 미양은 인터넷에 올라온 남편 찾는 글에서 자기 남편과 유사성을 발견하고 친한 선배에게 전활걸어 울고, 남편 찾는 글에 적힌 번호로 전활 건 미양남편은 자기 얼굴을 찍어 올린 초상권, 자기 소설 이야기를 여자의 일인양 올린 저작권 등을 내세우며 윽박지르려 했지만 연락을 기다렸다는 차분한 여자의 음성에 그 여자 주소지로 찾아간다. 그 여잘 찾아간 미양 남편은 자기를 남편으로 대하며 욕실에 누군가 죽어있는 것같은 뉘앙스를 취하고 밖으로 나가버린 그 여자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때 친한 선배가 전화가 와 미양이 증거를 잡았다며, 네가 어딜 들어갔냐며 다그친다. 그때 미양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내가 다봤다며, 문열라고 소리치는데서 끝이 난다.

묘하게 뒤섞인 이야기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며 형체가 불분명한 느낌이다. 범죄사건얘기 같기도 하고, 치매를 앓는 얘기 같기도 하며 이 소설 속 이야기도 소설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겹쳐진다. 나는 요즘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남들이 보는 외부의 내가 진짜 나인지 헷갈리며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라는 사람은 온전히 내가 생각하는 내가 정답일까?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가 분명하게 캐치하진 못했다. 나는 타인과 다른 나의 인식론적 본질에 대해 탐구하길 원했으나 이 소설은 존재론적 본질의 허구성에 대해 얘기하는 느낌이어서 색달랐고 그래서 더 어려웠다. 소설의 주제가 존재론적 본질이 허구일 수도 있다는 것인지 나와 같은 또 다른 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인지, 범죄에 관한 이야기인지, 초기 치매에 관한 이야기인지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라 어려웠고 작품해설을 읽었지만 단순한 내가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토리가 분명 간단한데 그 간단함이 뿌옇게 흐려지 잘 보이지 않는 느낌. 그래! 마치 드라마 W 같았다. 이종석, 한효주 주연의, 결국 만화캐릭터인 이종석이 현실과 가상, 두 개의 실존을 건드리는. 이 책은 드라마만큼의 촘촘한 서사가 아니라 독자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던지며 끝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 흐려진 뒤엉킴을 의도한 게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