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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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가끔씩 선명하게 기억날 때가 있다. 스토리의 흐름이 아니라 사진처럼 잔상으로 남아 문득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몽글몽글 솟아오르기도 한다. 아이에게는 최초 삼년이 제일 중요하다고 많이 들어왔지만, 나의 경우는 그 이후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아이가 말을 하고 듣고 이해하게 되고 소통하는 그 순간부터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이 이후의 삶의 중간중간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1967년, 주인공 윌라가 열한살이 1977년, 1997년, 2017년에 이르러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 그리고 그것이 주는 그녀 삶의 변화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소설이다.

1. 1967년. 11살 윌라와 그녀의 여동생 6살 일레인의 엄마는 아빠와 싸운 후 집에 이틀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윌라 엄마는 매우 다혈질적이어서 윌라에게 화가 나 서빙수저로 뺨을 갈겨 눈에 멍이 들게 했다거나 일레인의 인형을 벽난로에 집어던진다든가, 그래놓고 다시 용서해달라고 울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 등이 윌라의 기억으로 묘사된다. 다정하고 따뜻하던 아빠가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순간,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던 순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말했다면, 윌라의 삶은 바뀌었을까?

2. 1977년. 연인관계인 스물 한살 윌라와 스물 세살 데릭은 윌라의 부모님에게 인사드리러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낯선 남성이 윌라를 향해 겨눈 총구 사건으로 인해 윌라는 예민해져 있다. 게다가 자신의 학업을 이어나가고픈 욕구와 데릭의 청혼으로 인해 오는 갈등, 가족의 민낯(특히 엄마)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등을 느낀다. 데릭과 윌라 엄마의 언쟁으로 엄마의 가식이 드러나는 카타르시스에 윌라는 알듯모를듯한 황홀감을 느끼기도 한다. 만약 윌라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로 하면서 학업을 포기하던 순간으로 되돌아가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냈다면 어땠을까? 삶이 달라졌을까?

3. 1997년. 데릭은 달리는 고속도로 안에서 윌라와 둘째 아들 이안의 학업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예민해져 보복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 죽게 된다. 이때 장례식에 참석한 동생 일레인의 말은 윌라와 일레인이 어린 시절부터 느꼈을 엄마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괴팍한 엄마 밑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제일 슬픈 게 뭔지 알아?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 벌리고 다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거야. 정말 불쌍하지 않아?
p100

윌라는 10 여년전 먼저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홀로 남은 아빠와 식사를 했다.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며 그녀는 션과 이안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는 언제나 '예측 가능한' 엄마였다. 자식들이 엄마 기분이 어떤지 몰라서 노심초사하지 않게 하겠다고, 아침마다 방문을 살짝 열고 엄마 기분을 살피며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하겠다고 윌라는 굳게 다짐했었다.
p110

4. 2017년. 61살이 된 윌라는 피터라는 남자와 재혼해 애리조나로 거처를 옮겼다. 첫째 아들 션과 한때 사귀던 드니즈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는데 그녀의 딸 셰릴을 봐줄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드니즈의 이웃 칼리에게 듣게 된다. 우연히 드니즈가 예전에 남긴 번호로 인해 윌라가 시어머니인줄 알고 칼리가 연락한 것인데, 이제는 아들과 사귀지도 않아 아무 관계도 없고, 셰릴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이끌리듯 그곳으로 향한다.

션과 바람나 도망가버린 엘리사의 남편 할, 마을 한 켠에 작은 진료실을 둔 의사 벤, 도움주는 걸 좋아하는 이웃 소년 얼랜드와 옆집 밍튼 부인, 셰릴을 돌봐줬던 칼리 부인, 사설탐정 데이브, 게이커플인 배리와 리처드, 얼랜드의 이복 형제인 마초 느낌의 서 조 등은 다들 배우자와 사별, 이혼하거나 우리가 익히 아는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진 않지만 무심한듯 서로 걱정하고 위해주는 이웃들이다. 임신과 동시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엄마로서의 삶을 살았던 드니즈와의 공통점에 대해 공감하기도 하고, 드니즈를 도우며 자신을 많이 사랑했던 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하며 윌라는 애리조나에서 아무 일 없는 무료한 삶을 살 때보다 감정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낀다.
무뚝뚝한 아들들과 지나치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이성적인 피터, 어린 시절의 상처때문인지 교류가 거의 없는 동생 일레인 등 진짜 가족들에게서 찾지 못한 가족적 정과 따스함을 드니즈의 이웃들이 있는 볼티모어에서 느끼며 점점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드는 모습은 풍족하지 않아도, 늘 행복하지는 않아도 괜찮게 살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제는 드니즈의 이웃같은 모습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철저히 방음하고 초인종 소리는 택배 이외에는 잘 울리지 않는다. 서로 마주치고 소통하며 낮은 문턱을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시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한편, 드니즈의 총상사건 범인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생긴 마찰로 인해 다시 인생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해야하는 순간 윌라가 내린 소설의 마지막 결론은 마치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련하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많은 윌라들을 응원하고 싶어 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육아로 인해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아이키우는 일에 매달리며 평생을 살았을 우리의 부모님 세대의 엄마들이 생각났다. 남동생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를 포기하고 뒷바라지했거나,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던진 수많은 우리의 엄마들이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자신의 인생을 찾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날개를 펼쳤으면 좋겠다.

이웃의 정겨움, 부모의 역할, 유아ㆍ아동기의 중요성, 개인의 존재성과 행복의 의미, 일상의 소중함 등을 일깨워준 따뜻한 소설. 그런데, 클락 댄스, 즉 시계 바늘 댄스가 이 책의 제목인 이유는 뭘까? 이 소설에서 클락댄스가 등장하는 대목은 두 군데다. 셰릴의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추는 클락댄스를 몰래 윌라가 구경하며 웃음짓던 장면,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윌라가 마음을 다치며 생각했던 다음 대목이다. 아직 제목이 왜 클락댄스인지 이해하진 못했다. 한 번 더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만약 윌라가 클락댄스를 만든다면 세 소녀가 보여준 춤과는 다른 춤일 거라고 생각했다. 윌라의 춤에는 한 여자가 무대 왼쪽에서 등장해 무대 오른쪽 끝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 눈에는 오로지 빠르게 도는 흐릿한 색깔만 보이다가 어느 순간 '펑!' 무대 끝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진다.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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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 파란만장한 삶이 남긴 한 문장의 위로
유영만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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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편지는 커녕 메일로라도 편지를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sns가 발달하고나서 놀란 부분은 내가 한 번 스친 인연이거나 일적으로 한 번 연락만 했는데도 친구 추천으로 다 뜨는 거였다. 내 이름이 타인의 공간에 불쑥 출현하기도 하고 그들도 나에게 그렇고. 소통 한 번 없이 쉽게 이웃이 되고 끊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면서 인간관계는 넓어졌지만 깊이는 얕아진 느낌이 든다. SNS의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 또한 크다고 생각하여 블로그를 제외하고는 페북이나 인스타는 이용하지 않고 있다. 요즘 시대에 역행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아예 모르는 사람의 나에 대한 엿보기가 나를 아는 사람의 엿보기보다 편하고 더 솔직할 수 있는데다, 나 지금 행복해요 느낌의 일상 공유가 나도 모르게 남과의 비교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던 것 같다.
쉽게 감정을 내뱉을 수 있는 SNS식 감정 전달보다 꾹꾹 손으로 눌러쓰는 아날로그식 감성이 점점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글을 쓰는 동안은 편지의 주인공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러고보니 나는 편지 써 본 적이 얼마나 됐던가.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편지나 엽서를 자주 써서 친구들과 교환하고 했었는데 최근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엽서나 편지를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을 일정 부분 떼어야 하는 것이고 그만큼 그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이 된다. 신랑은 한 번씩 편지를 써서 주곤 하는데 나는 나와 신랑 둘만을 오롯이 생각할 수 있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출퇴근길 말고는 없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그런 저런 생각 와중에 내게 온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저자가 붓글씨로 꾹꾹 눌러쓴 투박한 캘리그라피 글씨가 아날로그 감성에 부쩍 어울린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생각하기 위해 많은 고뇌를 했다고 한다. 저자는 지식생태학자라는 다소 독특한 명함을 가진 교수다. 자존과 자유, 일상과 상상, 관심과 관계, 배려와 존중, 희망과 용기, 반성과 성찰, 통찰과 지혜, 독서와 창조라는 주제로 나누어 엽서 하나에 하나씩 문장을 담고 있다.

뒷면은 비어 있어 엽서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 장씩 떼어 내어 엽서를 쓸 수도 있고 내 맘에 쏙 드는 문장은 따로 액자에 넣어두거나 책상 한 켠에 붙여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엽서집을 한 장 한 장 뜯어서 각 문장이 필요할 것 같은 지인들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써서 나누어주고 싶다. 길고 긴 조언보다 간단하지만 가슴에 꽂히는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도 있기에.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한 시간을 내어 그들을 생각하며 추워지는 날씨에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녹이는 편지를 써야겠다. 일단 제일 먼저 늘 솔선수범하고 고생하는 신랑에게, 그리고 딸의 직장생활을 지원해주기 위해 고생자처하는 부모님께 먼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런 아날로그 감성이 좋아지고 그리워진다. 겨울 길목에서 만난 선물같은 이 엽서집이 그래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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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게 말을 걸다 - 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이소영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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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문외한이면서 미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나는 최근에 고전이나 클래식같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미술에도 관심이 생겼다. 근무지 근처에 현대미술관이 생겨서 학생들과 같이 가보았는데, 당연히 미술에 대해 알 길이 없는 나는 학생들이 무심코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 구조물이 뭔 의미냐고 물어보면, 글쎄 심오한 의미가 있겠지, 하며 대답은 우주 저편에 보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돌파구같은 느낌이었다.

1장의 제목 '저만 미술이 어려운가요?'는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음악과 달리 미술은 대중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클래식이나 국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서로 콜라보하기도 하고 대중이 접할 기회가 많아졌는데도 미술은 미술관에 가서 봐야하고 전문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많은게 사실이다. 이 점을 저자는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는 첫 장이 굉장히 시원스럽게 느껴졌다. 편견없이 작품보는 법으로 뮤즈게임의 질문유형을 제시하거나 미술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책목록도 상당히 쓸모있을 것 같다.

2부는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에 대한 응답이다. 언젠가 <방구석 미술관>에서 많은 미술가들의 압생트라는 술 중독에 대한 일화를 본 적이 있는데 압생트를 주제로 한(정확히는 압생트에 취한 사람) 미술들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스타벅스 로고의 주인공인 세이렌, 고디바 초콜릿에서의 명화 등 일상에 녹아있는 명화의 사례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좋아하는 작가 한 명을 정해 그의 삶을 탐구해보는 것도 미술 공부의 좋은 예라 하였다. 그래서 고흐나 수잔 등 유명화가의 삶을 조명해주기도 하고 유명한 작품인 모나리자에 얽힌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동양의 미술을 건드려준 부분도 좋았다. 휴버트 보스가 그린 당시의 서울 풍경이나 고종황제 초상에서는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그대로 얼굴에 묻어나오는 것 같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처럼 얼굴이 길고 뾰족한, 의외의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미술을 공부하는 방법이다. 신이 난 피카소의 자화상은 그 옛날 배운 입체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 엿보인다.

이 책은 미술을 바라보는 미술 문외한들에게 미술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어 대중들의 교양을 쌓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글 자체가 딱딱하지 않고 쉽고 재밌게 쓰여져 가독성도 뛰어난데다 많은 작품들이 실려 있어서 다양한 미술작품을 책으로나마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생각보다 미술이 주위 곳곳에 널려있는데도 관심이 없고 잘 모르면 그것이 주는 삶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없다. 이 책 한 권 제대로 읽으면 미술작품을 제대로 보는 눈이 생길 것 같다. 미술을 즐길 줄 아는 교양인의 모습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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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권성우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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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나는 이 제목에서 말하는 비정성시가 뭔지 몰랐다. 시의 한 종류인가? 찾아보니 1989년 제작된 대만 영화다. 꽤 작품성 있는 영화라 하니 한번 보고 싶어진다.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영화라고 하는데, 저자가 왜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을 제목으로 정했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숙명여대 권성우 교수의 에세이다. 11월에 만난 두번 째 산문집이다. 세번 째로 읽었던 오길영 교수의 <아름다운 단단함>과 비슷한 결의 산문집이고, 두 책에서 다루는 주제도 겹치는 게 있다. 신경숙 표절 논란이라든지 영화에 대한 얘기, 노포의 장사법, 그리고 김석범의 <화산도> 등이다. 굳이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감성을 건드리는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에세이라기보다 진한에스프레스 커피같은 느낌이 강한 게 두 책들이다. <아름다운 단단함>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산문에는 비판과 지성의 사유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책도 그런 결을 같이 하고 있다. 또한 두 책 모두 작가의 뚜렷한 정치적 소신이 엿보인다.

이 책에서는 자이니치 문학의 성과로 일컬어지는 김석범 작가의 <화산도>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12권의 장편소설이라 한다.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과 자이니치, 서경식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언급된다.
1부와 달리 2부는 작가의 습작이라할지, 어떤 것에 대해 떠오른 짤막한 단상 모음이 수록되어 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이다. 정치, 책, 영화, 사람 등 그가 겪고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한 단상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작은 수첩이나 일기장에 혹은 블로그같은 곳에라도 꼭 매일은 아니더라도 단상을 적고싶어 진다. 이렇게 몇 년간 모인 단상은 내 사고의 흐름과 삶의 방향성을 말해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그런 단상이 그냥 내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지성의 사유장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보고 느껴야한다. 아직 그러기에 많이 부족함을 책을 읽으면서 더더욱 느낀다. 이런 통찰력, 내공은 하루 아침에 쌓이진 않으리라.

3부와 4부는 문학/정치, 대학,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석영과 김학범같은 자이니치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고 화산도 배경지역 탐방 소회, 재일한인문학의 매력을 주로 얘기한다. <화산도>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된 작품인데 꼭 읽고 싶다. 읽어보고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더 감회가 남다르리라. 아직 내 독서력이 부족하여 언급된 책을 거의 대부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읽어보고 싶게끔 소개한 책들이 많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신경숙 표절 사건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고, 정치에 대한 얘기도 가감없다. 뚜렷한 정치적 소신을 내뱉을 수 있는 건 그만큼 지식적으로도 충만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이 많다는 방증이라고 생각된다. 내 생각이 남들과 같다 혹은 다르다를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논박할 수 있는 그 정신적 여유가 부럽다.

책을 읽으며 첫 번째로, 나는 물론 문학 평론가나 관련업종 종사자는 아니지만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다고 몇번이고 생각했다. 소프트아이스크림같은 에세이가 아니라 진한 에스프레스같은 에세이말이다. 두 번째로,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일전에 <파친코 구슬>이라는 소설을 읽었음이 다행이었다. 아마 그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디아스포라 문학이 가지는 특별한 느낌을 지금보다 덜 느꼈을 것 같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가 느끼는 감정을 어딘가에 붙박이처럼 소속된 누군가 완전히 공감하긴 힘들지만 공감의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세 번째로, 언급된 영화들이 보고 싶었다. <비정성시>를 비롯하여 영화 <김군>같은 것들은 그냥 보고 마는 영화가 아니라 더 무겁고 뜨겁게 느껴지는 영화다.

오길영교수의 <아름다운 단단함>과 결이 비슷한 산문집이라 찾아봤더니 두 분이 책을 같은 시기에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했다고 인터뷰도 했다. 이 두 책이 모두 나에게 와서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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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렇게 말하라 - 내 아이를 변화시키는 최고의 한마디
치엔스진.치엔리 지음, 김진아 옮김 / 제이플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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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말을 할 줄 알기 시작하면서 내 언어습관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 명 한 명 보면 예쁜 학생들을 집단으로 만나게 될 때, 어쩔 수 없이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 체득한 강한 어투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어느 순간 그런 어투를 내 아이들에게도 쓰고 있음을 깨달았고, 한창 말을 배우는 시기인 첫째가 내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걸 보면서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언어 습관은 긴 시간 내 몸에 배인 것이므로 한 번에 고칠 수 없어서 지금도 매일 고치는 중이고 그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에는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는 예쁜 말 100가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 챕터별로 그러한 말을 했을 때 변화한 사례 등이 함께 설명되어 있다. 일단, 이렇게 많은 예쁜 말이 있는데 그동안 나는 매일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줬을까 돌이켜보니 너무 부족한 엄마였던듯 싶다. 새벽별보고 나가서 저녁별보고 들어오는 엄마가 아이를 볼 수 있는 하루 단 두어시간 정도에, 왜 물을 쏟느냐, 왜 옷을 빨리 입지 않느냐, 장난 치지 마라 다그치기만 한 것 같다. 하루를 다 보내고 둘째와 다함께 잠자리에 누워 그제서야 오늘 하루가 끝났음에 조급함이 사라지고 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대뜸 내뱉는 사랑한다는 말에 아이가 사랑을 온전하게 느꼈을지도 의문이다.
이 책에 나왔던 말 중 내가 자주 하지 못하는 말은 '네 마음을 알아', '나도 잘못이 있구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네가 선택하렴' 등이다. 아이의 마음을 아이의 눈에서 이해하는 건 정말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분명 나도 잘못이 있는데도 그걸 아이에게 '엄마가 잘못했어'라고 말하는게 어려웠다. 또, 지금 에릭슨의 발달단계에 의하자면 자율성의 단계를 거쳐 주도성의 단계로 나아가는 아이에게 조금 서툴다는 이유로, 어지른다는 이유로 엄마인 내가 다 해주려하고 하고싶은 대로 하는 걸 막았던 적이 많았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적절한 반응이 바로 나오려면 나 역시 육아에 있어서 엄마의 말을 공부해야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루를 마감하며, 아이가 했던 기특한 행동을 떠올리며 '오늘 진짜 잘했다'라고 하거나 '최고야', '너 때문에 즐거워' 등의 말을 해주면 아이의 기분이 어떨까 상상해본다.

나는 이 책으로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는 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음은 크지만 표현은 다소 부족했던 집에서 자란 내가 그동안 하기 힘들었던 (내 기준에 오글거리는) 말이나, 잘못 사용하고 있던 무조건적인 칭찬 어투를 수정하여야 함을 깨달았다. 또한 고등학생들에게도 쓸 수 있는 말이 꽤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나 '잘해낼거라 믿어', '네가 해낼거라 믿어'같은 독려의 말을 자주 해주면 파김치된 아이들이 좀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건 결국 그들을 양육하는 양육자의 몫이다. 내 언어생활에 변화가 있어야 함을 알아차리게 해준 책이고 각 챕터가 쉽고 간단하고 짤막해서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어쨌든 결국 실천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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