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 파란만장한 삶이 남긴 한 문장의 위로
유영만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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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편지는 커녕 메일로라도 편지를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sns가 발달하고나서 놀란 부분은 내가 한 번 스친 인연이거나 일적으로 한 번 연락만 했는데도 친구 추천으로 다 뜨는 거였다. 내 이름이 타인의 공간에 불쑥 출현하기도 하고 그들도 나에게 그렇고. 소통 한 번 없이 쉽게 이웃이 되고 끊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면서 인간관계는 넓어졌지만 깊이는 얕아진 느낌이 든다. SNS의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 또한 크다고 생각하여 블로그를 제외하고는 페북이나 인스타는 이용하지 않고 있다. 요즘 시대에 역행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아예 모르는 사람의 나에 대한 엿보기가 나를 아는 사람의 엿보기보다 편하고 더 솔직할 수 있는데다, 나 지금 행복해요 느낌의 일상 공유가 나도 모르게 남과의 비교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던 것 같다.
쉽게 감정을 내뱉을 수 있는 SNS식 감정 전달보다 꾹꾹 손으로 눌러쓰는 아날로그식 감성이 점점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글을 쓰는 동안은 편지의 주인공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러고보니 나는 편지 써 본 적이 얼마나 됐던가.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편지나 엽서를 자주 써서 친구들과 교환하고 했었는데 최근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엽서나 편지를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을 일정 부분 떼어야 하는 것이고 그만큼 그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이 된다. 신랑은 한 번씩 편지를 써서 주곤 하는데 나는 나와 신랑 둘만을 오롯이 생각할 수 있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출퇴근길 말고는 없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그런 저런 생각 와중에 내게 온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저자가 붓글씨로 꾹꾹 눌러쓴 투박한 캘리그라피 글씨가 아날로그 감성에 부쩍 어울린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생각하기 위해 많은 고뇌를 했다고 한다. 저자는 지식생태학자라는 다소 독특한 명함을 가진 교수다. 자존과 자유, 일상과 상상, 관심과 관계, 배려와 존중, 희망과 용기, 반성과 성찰, 통찰과 지혜, 독서와 창조라는 주제로 나누어 엽서 하나에 하나씩 문장을 담고 있다.

뒷면은 비어 있어 엽서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 장씩 떼어 내어 엽서를 쓸 수도 있고 내 맘에 쏙 드는 문장은 따로 액자에 넣어두거나 책상 한 켠에 붙여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엽서집을 한 장 한 장 뜯어서 각 문장이 필요할 것 같은 지인들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써서 나누어주고 싶다. 길고 긴 조언보다 간단하지만 가슴에 꽂히는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도 있기에.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한 시간을 내어 그들을 생각하며 추워지는 날씨에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녹이는 편지를 써야겠다. 일단 제일 먼저 늘 솔선수범하고 고생하는 신랑에게, 그리고 딸의 직장생활을 지원해주기 위해 고생자처하는 부모님께 먼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런 아날로그 감성이 좋아지고 그리워진다. 겨울 길목에서 만난 선물같은 이 엽서집이 그래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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