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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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노란 집>을 읽고 있던 중 만난 책이다. 이 책은 박완서 작가가 출간한 도서를 망라하여 그녀가 쓴 서문과 발문을 엮은 것이다. 어느 책이든 작가의 서문과 발문에는 작가가 책을 쓰며 의도하는 핵심이 들어있다. 어떤 경우는 책을 다 읽고도 나의 부족으로 인하여 작가가 의도한 바를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의도한 바가 내 나름의 결론과 다르기도 하다. 책이란 결국 독자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작가의 생각과 해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초창기 작품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부터 최근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까지의 발문과 서문에 담긴 그녀의 사상 및 생각의 흐름을 알 수 있고 그래서 마치 아주 짧은 수필의 느낌이다.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가 20년만에 재출간되기도 하고 박완서의 첫 작품인 <나목>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여러 번의 재출간을 거치며 절절하게 묻어나기도 한다. <창밖은 봄> 서문에서 스스로 밝힌 그녀의 가족사와 소설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알 수 있었고 <목마른 계절> 발문을 통해 1.4후퇴 이후 우리 나라의 상황과 작가 개인의 경험이 픽션으로 적절히 버무려진 소설임을 알 수 있어 읽어보고 싶게 한다.
<서 있는 여자> 발문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생각과 그 당시만 해도 어색했을 남녀평등에 대한 과감한 가치관이 드러난다.
<부숭이는 힘이 세다>는 박완서의 손주 중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때문에 생긴 어린이 동화다. 이 손주가 이제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비슷할 터... 고학년이 되면 읽어주고프다. 그때도 내 아이가 이야기를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아이라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나 <아주 오래된 농담>같은 사회적 메시지가 짙은 소설도 있고, <두부>나 <호미>같이 박완서의 생각을 엮은 산문집도 있고, 티베트와 네팔을 다녀온 후 쓴 기행산문집 <모독>과 개정증보판인 <잃어버린 여행가방>까지 읽고 싶게 만드는 책들의 서문, 발문 만으로도 궁금함을 자아낸다. 내가 읽은 책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노란 집> 정도 인데, 전자는 너무 오래전에 읽은 터라 기억도 가물가물한 지경이다. 여기 소개된 잠깐의 줄거리 혹은 작가의 서문, 발문만으로도 박완서의 책을 찾아 읽고 싶다.

뒷부분에는 박완서 작가 연보와 작품 연보, 작품 화보가 나와 있다. 이렇게보니 정말 많은 작품을 냈던 작가다. 서문과 발문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읽어 보지 않은 박완서 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읽고 싶은 욕구가 넘친다. 쏟아지는 요즘의 현대 문학과는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이고 197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인지라 현대 문학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로 그녀가 살던 시대적 배경이나 생각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 통용되겠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고 후반기의 작품들은 노년을 그린 작품이 많아 젊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역사를 오롯이 거치며 그 흔적을 작품에 담아내며 과거를 잊고 살거나 겪지 않은 현재의 사람들에게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있음을 얘기하고 있는 듯하고, 젊은이들에게 나이듦에 대한 자연스러움을 따뜻하게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 박완서의 소설, 산문을 좋아하거나 박완서에 대해 많이 들어왔지만 잘 몰라 박완서 세계에 입문하고픈 많은 독자들에게 길잡이가 될만한 박완서 작품 세계 소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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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은 논어 - 나의 첫 『논어』읽기
이강엽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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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은 논어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막연히 생각해왔던 것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작가의 책을 읽고 고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는데 동양고전은 특히 접근이 쉽지 않았다. <도덕경>을 최근에 읽었는데 한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고 해석본을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나같은 고전 초입이 상당히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의 향기, 삶의 중심, 배움의 길, 큰사람을 찾아, 실행의 기술, 최선을 다한 후'의 6장으로 주제별로 구성되어 논어에서 공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각 주제에 맞는 구절을 끌어와 현대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1장은 사람의 향기라는 주제로, 공자에 대한 오해 아닌 오해를 풀어주고 공자의 마음 됨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을 소개한다. 맹인 악사를 대하는 공자의 예의는 인간 대 인간으로 악사를 존중해주는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고, 예술도 좋아했던 것 같다. 공자는 그 일 하나면 다른 괴로움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한 것 하나를 가지고 살라고 얘기하고 있다.

2장은 삶의 중심을 잡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균형, 배움과 생각의 균형, 옛것과 새것의 균형 등 모든 일과 관계에는 서로 간의 균형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엄격한 원리주의자일 것 같은 공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너그러운 면모를 보인다. 자기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에게 비추어 남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기 쉽지 않은데, 이 두 가지인 충과 서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여기서는 인과 예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인이 채워져도 예가 없거나 인이 없이 겉만 챙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어렵게 생각되는 한자어를 풀어서 뜻을 설명하고 현실에도 적용시키는 본문 .해설 덕에 이해하기가 쉽다.

3장은 배움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을 나만 알고 있지 말고 남에게 베풀고, 모르는 건 자꾸 질문하며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것. 군자가 아니라도 모든 배움의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는 내용들이다.

4장은 큰사람이란 어떤 덕목을 가져야 하는지를 주로 논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대인배'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이고 '소인배'는 있다고 한다. 대인은 '배' 즉, 패거리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건데, 소인이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패거리를 짓고 대인은 늘 올바른 도리를 따라 움직이므로 패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공자의 대화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런 자잘한 사람들은 따져서 뭣하냐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현재의 정치인들이 논어를 읽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이 정치라는 대의를 펼치기 위해 꼭 한 번 깊이 되새기며 읽어봤으면 좋겠다. 특히 4장을 말이다. 말 한마디로 신뢰를 얻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람들은 논어에서 얘기하는 '말의 어려움'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

5장 실행의 기술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불치하문의 정신과 함께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나 너무 아둔한 사람은 굳이 가르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공자의 엄격한 면모가 돋보인다.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잘못은 라는 공자의 말에서 섣부른 실행보다 깊이 있게 아는 것의 중요성과 역량을 역설하고 있다.

6장은 정리하는 느낌이다. 일이든 공부든 뭔가에 최선을 다하고 난 후에도 지혜를 잃지 않는 마음가짐, 과유불급을 맘에 새기고, 마음은 편히. 그리고 조금 너그럽게 말이다.

부록엔 공자의 생애와 논어 특징, 공자 제자들에 대한 얘기가 나와 있다. 각 장의 말미에는 공자의 이야기가 서양의 학자들과 연결되는 순간들도 자주 등장한다. 동서양의 생각이 하나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이르며 철학과 고전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낀다. 논어는 한 번도 안 볼 수는 있지만 한 번만 보기는 어려운 고전이다. 왜냐하면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는 것과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편안한 해설과 더불어 나와 같은 논어 초임자가 읽기에 더도 없이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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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리듬의 과학 - 밤낮이 바뀐 현대인을 위한
사친 판다 지음, 김수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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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몸 상태가 바닥까지 떨어진 걸 느낀다. 아이들이 클 때까진 어쩔 수 없다 쳐도 첫째를 임신하고부터 지금까지 망가져버린 수면패턴과 어깨, 허리 등의 근육 통증, 그로부터 야기되는 만성 두통은 직장에서의 일의 효율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육아에 힘을 쏟기가 쉽지 않다.(첫째는 내 머리카락을 아직도 새벽에 최소 한 두번은 깨서 잡고서야 안심하고 자고 둘째는 자기 몸을 나와 밀착시키고서야 안심하고 잔다. 대체 왜...)
나는 수면으로부터 모든 내 망가진 몸의 원인이 있다고 믿어왔다. 세 시간 이상 푹 자본적이 없고 늘 두시간 후엔 깼다가 다시 자거나 못자거나를 반복한지 5년째 접어들었다. 어떻게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책을 선택했다.

유럽 공식 규정 '교대근무자'는 밤 열시부터 새벽 다섯시 사이에 세 시간 이상 깨어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주말에 늦게 자고 평소보다 두 시간 이상 늦게 일어나는 '사회적 시차증'을 포함하여 다양한 교대근무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저녁활동(6시부터 자정까지)이 생체리듬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며, 밤에 지속적으로 빛에 노출되면 생체리듬 교란이 야기되어 수면에 방해가 됨을 과학적 증거를 대어 제시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청색 빛은 우리 생체시계를 아침으로 인식하고 주황 빛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수면등이 주황 빛인 이유가 드러나는 것이다. 청색 등이 환한 곳에서 잠을 청하는 건 생체리듬상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시상하부에 위치하는 시교차 상핵(SCN)이라 불리는 세포는 기준 생체시계로 빛과 시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이 세포는 다른 신체 곳곳의 세포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신체리듬을 관장한다.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7시간 이상의 수면(성인기준) 시간 확보(단, 밤낮 바뀌면 안됨)-이 책에서는 10시부터 5시까지 정도의 밤잠을 권장하는 듯 하다.

2. 공복 끝과 공복 시작(첫 식사~ 마지막 식사)의 간격이 12시간 이내여야 함.

3. 적당한 신체활동을 해야 함.(햇빛 쐬기가 좋음)​

우리 몸이란 참 신기하게도 자야하는 일곱 시간을 못자고 여섯 시간 자게 되면 하루 한 시간의 수면 부채를 갖게 되고 그 부채를 갚으려고 주말 몰아자기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 깨고 한낮이후 카페인 섭취를 줄이며 햇빛을 쬐는 신체활동을 함으로써 수면욕을 상승시켜 일찍 잠에 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요즘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에 근거를 제공해주는 사실들이 서술되어 있다.(하다가 실패했는데 다시 해야겠다...) 시간제한 식사법이 더 깊은 잠을 자게 한다니 진짜 도전해 볼 일이다. 특히 8시간 동안 먹고 16시간 공복 유지하기를 시행할 때 건강효능이 최적이 된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질좋은 수면의 중요성, 섭식타임의 중요성, 신체활동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그 곁가지로 물 섭취, 일할 때 가장 효율적 시간(AM10시~PM3시), 좋은 과일 및 채소 등을 소개한다. 뒷부분에는 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아침과 늦은 오후 운동이 좋은 이유, 그리고 하다못해 저녁에라도 우리가 운동해야하는 이유를 제시하여 운동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과학적 근거를 대 채찍질한다. 또한 빛의 색깔이 수면이나 활동에 주는 영향을 분석하고, 장내미생물의 중요성과 그것을 보호하는 식품을 소개하고 있으며 결국 생체리듬의 교란이 미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 시간제한 식사법으로 회귀하여 이것이 염증 통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병을 역전시키거나 증상 완화를 위한, 혹은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생체주기 코드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 책은 결국 우리의 건강한 생활 유지를 위한 생체주기 코드 강화법을 아주 세밀하게 소개하고 과학적으로 근거를 제시하여 최상의 컨디션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얘기한다.

수면, 섭식, 활동에 관한 신체의 비밀, 그리고 그 비밀을 알아낸 사람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건강한 삶의 조건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인체에 대한 많은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고 좀 더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다는 강한 의식을 심어주었으며 다양한 실험 결과가 신뢰성을 높였다. 수면의 경우 나는 그동안 많이 뒤틀린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섭식, 활동 등 내 생활 전반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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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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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는 영화로도 2005년 소개된 적 있는 풍자소설이다. 당시 화려했던 영국과 수도 런던의 뒤에서 펼쳐진 극심한 빈부격차와 그로 인해 생긴 경제적 서열화, 계층 간 갈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구빈원에서 고아로 자란 9세 소년 올리버 트위스트가 매순간 역경을 이겨내고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이 소설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선사하는 특유의 우연과 그것이 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주인공이 겪는 고난과 뚜렷한 권선징악이 촘촘히 짜여져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다음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어리고 가진 것 없고 든든한 보호자가 없는 가난한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끼리에서조차 생기는 서열화와 약육강식의 세계는 자연적인 인간의 본능인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함과 정직함, 기개를 잃지 않았던 올리버 트위스트의 타고난 기질은 환경도 그를 바꿔놓을 수 없었다.

가난한 악당들로 묘사되는 유대인 노인 페이긴, 그리고 그의 심복이거나 전략적 파트너였던 미꾸라지 잭 도킨스, 나중에 살아서 죄를 뉘우치는 유일한 인물인 찰리 베이츠, 섬뜩하고 거친 사익스, 사익스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암흑의 소굴에서 유일하게 따뜻함과 동정심을 잃지 않았던 낸시 등 뒷골목 암울한 배경을 주도한 소매치기 도둑들은 결국 거의 대부분 올리버를 괴롭힌 대가로 교수형 또는 죽임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된다. 만약 저들도 유복한 집에서 따뜻한 부모 아래 자랐다면 저런 삶을 살았을까. 올리버의 경우처럼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올곧은 마음을 지니며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 바른 예시가 있을테지만 실제로 그런 기질을 날 때부터 보유한 아이가 얼마나 될까.

결국 작가인 찰스 디킨스가 의도한 풍자와 해학의 주된 타깃은 도둑들이 아니라 그 도둑을 만들어낸 사회 구조에 있다. 급격한 산업혁명의 바람으로 자본주의가 판을 치면서 돈이 곧 권력인 시대를 거치며 급격한 빈부격차가 낳은 고아와 구빈원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허와 실을 우스꽝스럽게 낱낱이 드러낸다. 말단 교구원 버블 씨나 간호부장 코니 부인은 그 참혹한 계급의 중간 지점에서 누군가에겐 말단이지만 고아들에겐 최상단의 권력을 뽐낸다. 법도 시스템도 모두 돈과 권력 앞에서 평등하지 않으며, 이 소설이 출간된 지 백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넘어야할 많은 불평등의 산이 존재한다. 미꾸라지 잭 도킨스보다 더한 법꾸라지들이 얼마나 고귀한 윗분들 중에 많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실제로 구빈원같은 곳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교구원 버블 씨에 빗댈 수 있는 공무원들이나 관련 업무자들이 행정 집행자이자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버블 씨는 자신이 도로 구빈원에 들어간 말년이 되어서야 자기가 하대했던 이들의 삶을 느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돈 앞에서의 불평등 뿐만 아니라 여성을 짓눌러버리는 남성들의 잘못된 성 인식에 대해서도 수시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소설에 나오는 '여자란 말이야...' 와 같은 식의 대사는 고정된 성 역할과 잘못된 성 인식에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며, 사익스에게 맞고 고통받으면서도 끝까지 사익스에게 돌아가려 한 낸시의 경우가 그 성 착취의 대표적 예이다. 그녀는 올리버를 구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을 막 대하면서도 애증관계였던 사익스에게 돌아가 죽임을 당하였는데, 소설 전체에서 개인적으론 올리버보다 더 안타까웠던 인물이다.

올리버는 소설 속 주인공 답게 우연에 의해 위기가 행운이 되는 아름다운 줄거리 속에 살고 있다. 하필 도킨스와 베이츠가 소매치기한 사람이 올리버 아버지의 절친인 브라운로 씨였고, 하필 사익스가 털려고 하다가 올리버가 총을 맞은 곳이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의 핵심 인물이 있는 집이라니. 그리고 올리버는 꽤 괜찮은 아버지에게 유산도 좀 받았고 브라운로씨같은 멋진 양아버지를 두게 되었으니. 그런데 만약 올리버에게 그런 우연의 행운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올리버가 끝까지 올곧게 자랄 수 있었을까, 소설 밖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한 줄기 희망을 얻고자 한 작가의 마음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소설 중간중간 삽입된 흑백삽화는 실제 등장인물이 존재한다면 저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번역이 상당히 매끄러워 두꺼운 책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혔다.

어쨌든, 그래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건 올리버의 진실된 눈을 알아본 브라운로 씨나 로즈 양같은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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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4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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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니 정말 어렸을 때 내가 책을 안 읽긴 안 읽었구나 싶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나의 작은 아씨들'이란 서메리씨의 에세이를 읽고 난 후였다.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는 서메리 작가로 인해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각기 다른 매력과 네 자매의 우애를 엿볼 수 있었고 좋은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워낙 많은 출판사에서 책이 출판되었는데,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에서 이번에 <작은 아씨들>을 번역하여 출간했다. 읽기 쉽게 번역되어 있는 게 이 컬렉션의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글자가 커서 시원하게 읽힌다.

우리의 짐은 바로 지금 여기에, 우리가 가야 할 길도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야. 참됨과 행복을 갈구하는 마음을 길잡이 삼아 수많은 어려움과 실수를 헤치고 진정한 '천상의 도시'에 이르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순례자 놀이'란다.
p21 엄마 마치가 네 자매에게

네 자매는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고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며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들의 아침을 기꺼이 베풀 줄 알고, 크리스마스 연극 무대를 꾸미며 즐길 줄도 알며 엄마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정 많은 아이들이다. 늘 사랑을 베풀고 자매를 위하는 마치 부인이 있었기에 이런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간접적으로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걸 아이를 키우며 늘 느끼는데 마치 부인은 이 부분에서 탁월했다.

자매들 사이에 남자가 끼지 않을리 없다. 가드너 부인의 파티에 초대받은 메그와 조는 거기서 춤추는 걸 피하다가 소년 로렌스(로리)를 만나 얘기를 나눈다. 로리는 조를 오랜 시간 사랑하지만, 동생 베스가 로리를 좋아한다고 느낀 조가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기 위해 뉴욕으로 일자리를 얻어 나가고 거기서 나이는 좀 많지만 사려 깊은 바에르 교수를 존경하고 후일 사랑하게 된다. 결국 조에게 차인 로리가 매력적인 막내 에이미와 잘 되어 다행이긴 했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못내 조가 로리와 잘 되길 바랐는지, 아님 왠지 한국 드라마같이 여기 저기 엮이다가 언니도 동생도 모두 사랑하게 되는 로리가 못마땅했는지 결말이 조금 갑작스럽긴 했다. 나는 차라리 조가 결국 바에르 교수를 그냥 인간으로 존경하고 사랑의 감정에 빠지지 않으며 당당히 홀로 서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네 자매는 정말 다양한 매력이 있는 여성들이다. 가장 현모양처 스타일에, 사랑 받는 여자이고 싶으면서도 돈에 대한 현실적 갈망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메그, 선머슴같고 뭐든 확실하며 여성스럽지는 않아도 아버지를 위해 선뜻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허약한 베스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따스한 조, 사랑 받기 좋아하고 집안일을 열심히 하며 수줍음이 많고 인형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며 음악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잘 챙기며 자신이 성홍열에 걸려도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베스, 명랑하고 쾌활하며 그림에 소질이 많은 솔직한 막내 에이미.
서로 다른 색깔의 매력을 가진 네 자매가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을 위한 우애 있는 모습은 가족의 의미가 점차 상실되어가는 현대 사회에 아름다운 본보기가 된다.

이웃의 정도 빼놓을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난한 이웃을 돕는 마치부인과 베스도 그렇지만, 로렌스 할아버지는 베스가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피아노를 좋아하는 베스가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베스는 할아버지에게 슬리퍼를 선물하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손녀가 치던 피아노를 선물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구들을 초대해 연극놀이를 하고 로리와 네 자매의 우정과 사랑은 이웃의 사랑 그 이상이다.

이 소설은 특별한 대사건이나 기승전결이 뚜렷하진 않지만, 시련을 이겨내는 그들만의 방법, 함께 더불어 사는 자매의 모습, 사랑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그렇게 자녀들을 교육하는 부모님의 일상적인 모습이 독자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읽으면서 어떤 특별한 사건이 기다릴까라는 긴장감보단 그 다음엔 어떤 행복하고 평범한 일상이 그려질까라는 따뜻함이 다음 장을 넘기는 힘이었다.

자신의 삶을 온통 부모님께 헌신하고 가정을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엄청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얼마나 어려운 노력을 하고 있던 것인가? 줄기차게 야심만만하던 한 소녀가 자신의 희망과 계획과 욕망을 포기하고 기꺼이 남들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p295

루이자 메이 올컷은 이 소설의 둘째 조를 자신을 모델로 하여 썼다. 그녀는 독신이었지만 그게 아쉬웠던지 조를 바에르 교수와 결혼시킨 듯하다. 작품 해제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 책은 이 땅의 부모들이 읽어야 할 소설이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물불가리지 않고 노력해라, 행복은 잠시 접어두라고 얘기하는 시대에서 이 소설이 얘기하는 바가 구시대적 발상이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자신의 성공과 야망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과 사랑이 아닐까. 나도 아직 그 힘을 믿고 있다. 내 아이들도 가족의 소중함, 사랑의 힘, 함께 하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딸들과 이 책을 읽고 함께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따뜻한 맘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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