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4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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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니 정말 어렸을 때 내가 책을 안 읽긴 안 읽었구나 싶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나의 작은 아씨들'이란 서메리씨의 에세이를 읽고 난 후였다.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는 서메리 작가로 인해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각기 다른 매력과 네 자매의 우애를 엿볼 수 있었고 좋은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워낙 많은 출판사에서 책이 출판되었는데,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에서 이번에 <작은 아씨들>을 번역하여 출간했다. 읽기 쉽게 번역되어 있는 게 이 컬렉션의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글자가 커서 시원하게 읽힌다.

우리의 짐은 바로 지금 여기에, 우리가 가야 할 길도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야. 참됨과 행복을 갈구하는 마음을 길잡이 삼아 수많은 어려움과 실수를 헤치고 진정한 '천상의 도시'에 이르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순례자 놀이'란다.
p21 엄마 마치가 네 자매에게

네 자매는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고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며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들의 아침을 기꺼이 베풀 줄 알고, 크리스마스 연극 무대를 꾸미며 즐길 줄도 알며 엄마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정 많은 아이들이다. 늘 사랑을 베풀고 자매를 위하는 마치 부인이 있었기에 이런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간접적으로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걸 아이를 키우며 늘 느끼는데 마치 부인은 이 부분에서 탁월했다.

자매들 사이에 남자가 끼지 않을리 없다. 가드너 부인의 파티에 초대받은 메그와 조는 거기서 춤추는 걸 피하다가 소년 로렌스(로리)를 만나 얘기를 나눈다. 로리는 조를 오랜 시간 사랑하지만, 동생 베스가 로리를 좋아한다고 느낀 조가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기 위해 뉴욕으로 일자리를 얻어 나가고 거기서 나이는 좀 많지만 사려 깊은 바에르 교수를 존경하고 후일 사랑하게 된다. 결국 조에게 차인 로리가 매력적인 막내 에이미와 잘 되어 다행이긴 했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못내 조가 로리와 잘 되길 바랐는지, 아님 왠지 한국 드라마같이 여기 저기 엮이다가 언니도 동생도 모두 사랑하게 되는 로리가 못마땅했는지 결말이 조금 갑작스럽긴 했다. 나는 차라리 조가 결국 바에르 교수를 그냥 인간으로 존경하고 사랑의 감정에 빠지지 않으며 당당히 홀로 서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네 자매는 정말 다양한 매력이 있는 여성들이다. 가장 현모양처 스타일에, 사랑 받는 여자이고 싶으면서도 돈에 대한 현실적 갈망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메그, 선머슴같고 뭐든 확실하며 여성스럽지는 않아도 아버지를 위해 선뜻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허약한 베스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따스한 조, 사랑 받기 좋아하고 집안일을 열심히 하며 수줍음이 많고 인형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며 음악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잘 챙기며 자신이 성홍열에 걸려도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베스, 명랑하고 쾌활하며 그림에 소질이 많은 솔직한 막내 에이미.
서로 다른 색깔의 매력을 가진 네 자매가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을 위한 우애 있는 모습은 가족의 의미가 점차 상실되어가는 현대 사회에 아름다운 본보기가 된다.

이웃의 정도 빼놓을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난한 이웃을 돕는 마치부인과 베스도 그렇지만, 로렌스 할아버지는 베스가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피아노를 좋아하는 베스가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베스는 할아버지에게 슬리퍼를 선물하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손녀가 치던 피아노를 선물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구들을 초대해 연극놀이를 하고 로리와 네 자매의 우정과 사랑은 이웃의 사랑 그 이상이다.

이 소설은 특별한 대사건이나 기승전결이 뚜렷하진 않지만, 시련을 이겨내는 그들만의 방법, 함께 더불어 사는 자매의 모습, 사랑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그렇게 자녀들을 교육하는 부모님의 일상적인 모습이 독자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읽으면서 어떤 특별한 사건이 기다릴까라는 긴장감보단 그 다음엔 어떤 행복하고 평범한 일상이 그려질까라는 따뜻함이 다음 장을 넘기는 힘이었다.

자신의 삶을 온통 부모님께 헌신하고 가정을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엄청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얼마나 어려운 노력을 하고 있던 것인가? 줄기차게 야심만만하던 한 소녀가 자신의 희망과 계획과 욕망을 포기하고 기꺼이 남들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p295

루이자 메이 올컷은 이 소설의 둘째 조를 자신을 모델로 하여 썼다. 그녀는 독신이었지만 그게 아쉬웠던지 조를 바에르 교수와 결혼시킨 듯하다. 작품 해제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 책은 이 땅의 부모들이 읽어야 할 소설이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물불가리지 않고 노력해라, 행복은 잠시 접어두라고 얘기하는 시대에서 이 소설이 얘기하는 바가 구시대적 발상이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자신의 성공과 야망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과 사랑이 아닐까. 나도 아직 그 힘을 믿고 있다. 내 아이들도 가족의 소중함, 사랑의 힘, 함께 하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딸들과 이 책을 읽고 함께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따뜻한 맘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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