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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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책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과 대강의 줄거리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저 걸리버가 자기보다 훨씬 더 작은 사람들만 사는 소인국에 표류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 기행문 정도로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실제로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성인이 된 지금, 새삼 어릴 때 무수히 많이 들어봤던 '걸리버 여행기'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다. 어릴 때 내가 이 책을 아동문학으로 접했다면 나는 아마 성인이 되고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어린 시절 내가 책을 무진장 싫어해 걸리버의 여행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성인이 되어 이 책을 읽고픈 마음이 생겼고, 나는 읽으면서 이 책의 실체(?)를 알고 나서는 더욱 호기심이 커졌다. 그리하여 책읽는 중간중간 부가정보들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첫째, 이 책이 출간된 연도는 1726년이다. 이토록 오래된 소설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사랑을 받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로 내려오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그 이유를 명확히 깨달았다.

둘째, 이 책은 소인국 여행기만 수록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아동문학이 아니다!! 실제로 이 소설은 풍자소설로 유명한 성인 소설이며 총 4부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소인국 릴리펏 여행기는 그중 1부에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2부는 거인국인 브롭딩낵 여행기, 3부는 라퓨타, 발니바비, 럭낵, 글럽덥그립, 일본 여행기, 4부는 후이늠국 여행기가 수록되어 있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이 방대하고 해학 가득한 풍자소설이 아동문학으로만 읽혔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1부는 릴리펏(소인국) 여행기다. 어쩌다 가게된 이 나라는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계획적이고 질서가 정연한 국가다. 이 나라는 징벌보다 포상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이방인인 걸리버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최대한 존중한다. 예를 들면, 걸리버를 석방할 때, 석방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맹세를 할 때도 걸리버의 조국의 방식대로 먼저 맹세하고 이후에 소인국나라의 방식대로 맹세하라고 명한다. 신민 1728명분에 해당하는 고기와 음료를 날마다 제공하고 이에 대해 백성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낯선 이방인에 대한 예의다.
걸리버는 상대적인 크기의 우위에 의해 소인국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시선을 던진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에도 어떤 그들만의 법률과 상식이 존재하고 걸리버는 어쨌들 그 나라의 규칙을 최대한 존중한다. 공직을 뽑을때 도덕성을 높이 보는 부분이나 공공육아학교에 대한 내용은 우리 현대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어이는 낯선 곳에서 상실된다. 달걀을 갸름한 부분부터 깨느냐 넓적한 부분부터 깨느냐로 또 다른 소인국인 블레푸스코와 전쟁 중인데, 꼭 우리의 국회 일부분과 닮은 곳이 느껴져 씁쓸한 웃음이 지어지는 대목이다. 결국 걸리버는 누역죄 누명을 씌우려는 자들에 의해 도망치듯 그 나라를 빠져나오게 된다.


2부는 거인국인 브롭딩낵 여행기다. 모든 것은 역지사지,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졸지에 소인이 된 걸리버는 거인국에서 장난감 취급 당하며 하루 종일 공연하는 신세에 처하고, 그를 하찮게 여기는 거인국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거인이 되어 릴리펏에 있었을 때를 떠올리게 된다.
거인국의 왕은 걸리버와 이야기하길 즐겨하며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는데 이 질문들은 그 당시 영국 사회를 꼬집는 것으로 생각된다. 왕이 입법자 자격을 얻기 위한 필수 요소가 무지, 나태, 악덕이라고 생각한다든가 걸리버가 설명한 영국에 대해 '자네 나라의 국민 대부분은 가장 해로운 벌레같은 족속'이라고 묘사한 부분은 직설적으로 영국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걸리버가 화약을 제조해주겠다 해도 거인국 왕은 이를 거절하며 옥수수 이삭이나 풀잎을 더 자라게 하는 사람이 어떤 정치인보다도 더 귀중한 봉사를 하는 것이라 말하는데 저자가 무엇을 인간의 덕목으로 여기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3부는 라퓨타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여행기가 서술된다.
날아다니는 섬인 라퓨타의 사람인들은 수학, 음악을 제외한 모든 주제에는 서툴며 지나치게 추상과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 때문에 여자들은 외지인과 바람도 쉽게 핀다.
라퓨타가 왜 떠다니는지 설명하기 위한 내용은 상당히 과학적이다. 심지어 케플러의 법칙까지 등장하는데 나는 이 법칙까지 등장하는 걸보고 저자인 #조너선 #스위프트 의 학문적 깊이를 실감했다. 어쨌든 이건 그만큼 이 나라가 천문학에 발전했다는 증거로 제시된다.
아이러니하게 이 나라의 수도 라가도는 사람들이 학문에 정진하고 학술원이 발달했지만 정사를 돌보지는 않는다. 8년 동안 오이에서 햇빛추출계획에 매진하다든가 똥을 음식으로 다시 되돌린다든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계획과 실험만 가득하여 도시가 추상적, 사변적인 사람들로만 가득하고 실현가능한 것은 없다.
라가도를 떠나 도착한 글럽덥드립은 과거 죽은 사람들을 소환할 수 있는 마법의 나라이고, 이어 도착한 럭낵은 죽지 않는 사람인 스트럴드브럭이 존재하는 나라다. 영원한 삶이 주는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끝이 있는 삶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4부는 후이늠국 이야기다. 야후와 후이늠 두 종족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걸리버와 비슷한 인간의 모습을 한 야후가 타락하고 이성이 거의 없는 피지배층이고 이들을 지배하는 말과 비슷한 후이늠들이 지배층이다. 걸리버같은 야후가 어떻게 이성적일 수 있는지 놀란 후이늠들에게 걸리버는 조국인 영국에 대해 설명하는데 후이늠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부분은 당시 영국 사회를 꼬집으면서 현재 우리 사회도 되돌아보게 된다.


"모든 이를 지키고자 만들었다는 법이 왜 누군가를 몰락하게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걸리버 여행기, p.304, 현대지성


말의 입장에서 본 야후들, 즉 인간은 빛나는 돌(돈), 먹을 것, 각자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싸워대는 어리석한 존재며 이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인간이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결점이 말의 시선을 빌려 드러나는 순간은 걸리버도 독자도 모두 일명 '웃픈'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지점이다. 왜 하필 후이늠은 말이었던걸까? 어쨌든 우정과 박애가 미덕인 후이늠을 존경하며 급기야 영국으로 돌아가서도 야후들(인간)과 함께 지내는 걸 고통스러워 하며 고결한 후이늠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끝맺는 부분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조건과 그 시대의 사회적 병폐 및 현 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곱씹어보게 한다. 왜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지 3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저 책을 읽고 웃지만은 못할까. 웃음 뒤에 오는 쓴 맛, 그 쓴 맛이 인간의 양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렸다면 이 소설은 그 의미를 다했다고 본다.


덧1. 어릴 적 열심히 하던 대항해시대 라는 게임이 순간순간 생각나던 걸리버의 항해 여정도 재미를 선사한다. 해적을 만나거나 표류하는 과정에 이입하다보면 내가 처음 신대륙을 발견했다면 느낄 수 있을 것같은 나름의 박진감도 느낄 수 있다.


덧2. 책은 각 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 장의 줄거리가 간단히 몇 줄로 요약되어 있어 내용을 읽고 다시 정리하고 좋게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주가 달려있어 저자인 조너선 스위프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이 내용을 썼는지 알 수 있었으며, 생소한 지명이나 간단한 설명을 요하는 곳에도 각주로 인해 이해가 쉬웠다.


덧3. 아직 작품 해설은 읽지 않았다. 한 번 더 읽고 난 후 해설을 보고 싶어서.


덧4. 첫 장에서 걸리버가 아버지가 준 돈을 모아 항해술과 그와 관련된 수학 지식을 배우는 데 사용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말이 왜 이렇게 좋을까. 수학은 항해에도 쓰인다!! 게다가 걸리버에게 매일 제공될 식량을 계산할 때에도 신장이 소인들의 12배이므로 부피는 12×12×12=1728배라는 결론을 얻었고 이는 소인국 수학자들의 계산이며 이것만 보더라도 릴리펏 소인국의 수학 수준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에는 라가도에서를 제외하고는 수학을 실용적 학문으로 여긴다. 라가도가 그 많은 학술원을 가지고도 실패한 나라였던 이유는 학문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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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역사인가 - 린 헌트, 역사 읽기의 기술
린 헌트 지음, 박홍경 옮김 / 프롬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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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워낙 유명한 책이라 제목만 들어도 알지만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역사에 대한 흥미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역사 내용 자체, 그러니까 스토리에만 집중했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은 어떤가 등을 고민해본 적은 없다. 이 책이 그런 고민에 완전한 해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적어도 내 머릿 속에서 역사에 대한 나름의 토론의 장을 밝혀준 책이다. 무엇보다 나의 예상과 달리 읽기 쉽게 쓰여져 있고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기르기에 충분한 책이다.


1장은 역사가 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지를 논한다.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출생지가 미국인지 아니라는 의문 제기, 홀로코스트의 부정 등 역사적 진실의 왜곡은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더 심각해졌다. 정치적 이해가 다른 역사학자는 프랑스의 미슐레처럼 정치적 보복을 당하기도 하고, 미국은 불평등하고 계급 갈등이 일어나는 땅으로 미국을 묘사했단 이유로 역사 교과서 저자 러그를 비난했다.
기념물을 놓고도 그것이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이냐 아니냐 분쟁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반달리즘(공공기물 파손)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탈레반이나 ISIS가 그런 경우이며 종교적 이유와 연결지어 성상 파괴라고 맞선다. 기념물은 과거 회상 및 존경 목적으로 제작되는데 종파, 정당, 정치적 대의 등 권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적 변화나 정권 변화 시 기념물 제작 및 파괴가 이어진다. 단, 프랑스 혁명 때는 왕, 귀족, 교회에서 압류한 물건들을 모아 세계최최 국립 박물관을 설치했는데 증오의 상징이더라도 예술로 탈바꿈시킬 수 있으면 보존가치가 있음을 말해주는 예이다. 유물의 일부는 시간을 관통하는 연결성과 연속성을 위해 보존해야한다.
한편, 일본 역사교과서는 그들이 우리 나라에 대해 저지른 만행(식민 정권, 위안부 등)을 거의 생략하고, 프랑스 역시 아프리카에서의 식민정부가 저지른 폭력, 인종주의를 경시했다. 영국은 영국의 식민지들이 식민통치 결과 개선됐다고 대답하거나 제국주의가 자랑스럽다는 의견이 아니라는 의견의 세 배에 달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여성, 이민자 등 소수 또는 약자의 고등교육 수혜율이 높아지면서 역사도 더디지만 변화하고 있으며 여러 입장이 공존하는 상태로 가고 있다.
생각하기 싫고 불편한 역사적 기억을 회복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정치적 압력에 의해 중단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도 수하르토가 실각하고 나서야 군부와 민병대가 자행한 고문, 참수 등 기억이 수집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도 수니파 전통주의자들과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와 같이 역사적 진실의 올바른 규명을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공적 역사(public history)가 최근 대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문제는 진실과 진실 규명 방법은 무엇인가다.


2장은 역사적 진실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과 해석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진실은 콘스탄티누스 증여나 히틀러 자필편지처럼 과학 등의 객관적 근거가 최적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서와 같은 증거는 작성자 의견과 관심이 반영되어 있어 중립적이지 않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사실의 해석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랑케는 유럽우월주의 속에서 성장했으며 1990년 들어서야 차크라바르티 같은 역사학자들이 유럽중심적 역사모델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역사 기록의 진실을 향한 열망은 오래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서술이 지니는 타당성을 인정하면 역사와 역사적 진실 개념이 확장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유럽의 방식은 역으로 비유럽, 반유럽 정체성을 지지하는데 활용되기도 했는데 일본이나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역사의 해석은 본질적으로 구성이 취약하고 새로운 발견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며 토론과 논쟁은 역사의 민주화가 진행되기 위해 독려되어야 한다.


3장은 역사의 정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대학교육에서 역사는 최근에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경우 역사교육을 받은 적 없는 애덤스가 세미나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태스크포스는 고대, 중세, 영국사에 집중하는 엘리트교육과 시민을 위한 교육을 결합시키고자 했으며 중등학교의 역사교육도 개혁하고자 했으나 서유럽과 미국 외의 역사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여성들이 역사학자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되지 않았으며, 소수인종 역시 마찬가지다.(이 책의 저자도 여성 역사학자다) 하지만 점점 개선되는 중이고 역사학의 무게중심도 고대에서 근대로 옮겨가면서 민족국가가 역사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접근법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관심사도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중등교육에서도 자국 역사와 세계사를 어떤 비중으로 어떻게 교수할 것인지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정부는 역사를 왜곡하고 기억을 통제하기 위해 교육에 손을 대고 있지만 역사와 기억은 돌파구를 갖추고 있다. 이런 돌파구가 민주사회를 강화시킨다.


4장은 역사의 미래를 논한다.
역사에 집착을 버리면 국가 미화에 비판적 태도를 가질 수 있고 타문화, 타민족을 개방적으로 대할 수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역사는 윤리적이다.
역사의 접근법은 전형이 될 만한 사례를 찾는(아우렐리우스에 영향받은 미 대통령들) 것에서 진보의 투영(헤겔이 대표적 예)를 거쳐 '전 지구 시간'이라 불리는 다양한 발전을 한데 묶는 방법이 움트고 있는 중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인간이 환경, 미생물 등등 다양한 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환경 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존중이고 그러한 자세에서 역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책의 말미에는 더 읽어볼 역사 관련 도서가 소개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번역된 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사실 이야기를 제시하는 역사책이 아닌 개론서의 경우 난해한데다 전문성이 반드시 있어야만 읽을 수 있다고 인식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다행히 쉽게 읽히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선사해주고, 여타 다른 책들이 너무 어렵게 쓰여지지않는지 우려하고 있다.
역사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의 뿌리를 알고 그로부터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학문이다. 역사는 정치, 종교, 사회, 문화와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시대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가지 정치적 사건들, 사회적 흐름 등을 후손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과거의 사건과 사실들은 어떻게 해석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어떤 해석이든 어떤 관점이든 열린 토론은 장려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적어도 우리 나라는) 나와 다른 시선을 편협하다고 생각하고 배척하며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그런 분위기가 질문과 토론이 없는 교육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똑같은 이를 반복한다.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해서도 다양한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 4장에서 말했듯 나를 둘러싼 주위 모든 것들에 대한 존중에서 역사의 미래가 보이는 법이니까. 적어도 이 책이 바로 그러한 민주적 토론의 장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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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불통이다 -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소통을 방해하는가?
손정 지음 / 한국표준협회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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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가족이든 동료든 타인과의 관계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순간마다 원활하게 소통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때로는 불통인 순간이 찾아와서 곤란에 빠지기도 한다. 의사소통 시 화자는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만들어 잘 전달해야하고 청자는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공감해야하는데, 이 책은 우리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밝히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위와 같이 화자와 청자의 관점으로 나누어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1장에서는 의사소통의 기본적인 과정이 설명되고 있다.
의사소통 프로세스 중 재료, 부호화, 전달 통로, 소통 환경은 충분히 바꿀 수 있지만 지각은 바꾸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재료가 청자가 원치 않는 것일 경우는 행동 변화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청자가 갖게 하면 된다. 그러나 지각은 선택해서 조직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역사적 관념에 지배받기 때문에 바꾸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러한 지각 오류와 그 해결법을 모색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먼저, 화자는 객관적인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걸 방해하는 여러 가지 오류들에 대해 이 책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각 조직 오류인 투사는 내 감정이 다른 대상에게 투영되거나 내가 느낀 걸 남도 느낄거라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성에서 일어난다. 행위자-관찰자 편향은 '내로남불'이다. 타인과 자신의 행동을 볼 때의 차이인데 결국 처음부터 내 잘못을 인식하고 싶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가 생기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이다.
지각 해석의 오류로는 귀인오류, 고정관념, 확증편향, 후광효과, 대비효과, 피그말리온 효과가 있다.
잘되면 내탓, 못되면 남탓인 귀인오류는 문제 상황의 원인을 나로 돌리면 쉽게 해결가능할 수 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을 위해 로고스(논리성), 파토스(감정적 동화), 에토스(화자의 인격)를 갖춰야한다고 했는데 이 에토스를 올바르게 인지해야 로고스, 파토스가 작동한다. 에토스를 올바로 인지하지 못해 생기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접촉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주장을 바꿀 생각이 없는 확증편향은 읽으면서 뜨끔했다. 나는 일명 '답정너' 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각근접성, 지각유사성, 지각불변성, 회상용이성과 같은 휴리스틱은 직관에 의해 신속하게 대상을 판단함으로써 상대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메시지가 객관적이어도 잘 전달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크기, 강도를 조절하고 필요에 따라선 반복도 필요하다. 청자의 신뢰가 부족할 경우 신뢰를 먼저 쌓는 것도 중요하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이 화제였던건 독립선언서가 부도수표라고 했던건 은유에서 오는 힘 때문이었다. 또는 대조나 수사도 지각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상세한 상황 묘사나 청자가 해법을 찾게 유도하는 질문도 좋다.


화자가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전달해도 청자가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불통이 된다.
억압은 지각 선택의 오류다. 책에 제시된 '사막에서 살아남기'와 같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소통에서 억압하는지, 심지어 자기 자신도 변화하지 않고 스스로를 억압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 대상을 쉽게 해석해버리는 인지적 구두쇠를 범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기 부정으로 극복해야한다. 때로는  51을 100으로 생각해버리거나 불만족이 제거된 것을 만족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지각 조직 오류인 지각 폐쇄가 불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상대의 페르소나를 인정하고 적절한 맞장구와 함께 경청해준다면 더 나은 소통을 기대할 수 있다. 소통할 때의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를 관리하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여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감성의 리더십'이란 책에서 언급된 것이지만 소통으로 확장시킬 수도 있다. 타인의 감정을 축소전환하거나 억압, 방임한다면 소통이 힘들 것이다. 이럴 때는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나 행동 한계는 규정하고 스스로 해법을 찾고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정보를 터놓고 대화에 임하는 자세, 첫 말을 부드럽게 시작하는 자세, 남에겐 너그럽게 나에게는 엄격한 자세. 이런 모든 것들이 모여 소통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1957년에 만들어진 영화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을 보라고 권한다. 12명의 배심원이 한 소년의 유무죄를 만장일치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서로 토론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담긴 영화라고 한다.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법정 영화일 듯하다. 이 책에서는 처음 시작부터 중간중간 각 배심원들 중 어떤 배심원이 좋은 소통인이고 불통인인지 각 사례에 맞게 소개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은 책에서 다루어진 용어에 대한 색인이 나와 있어 편리하게 각 용어를 찾아볼 수 있게 해준다. 의사소통에 대해 공부하면서 심리학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가능했다. 책 표지에는 소통이 뇌에 달려있다고 되어있지만 결국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심리, 즉 마음이다. 결국 소통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연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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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영건 지음 / 피와이메이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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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심리학을 좋아한다. 예전에 공부할 적에도 교육심리학이 정말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마음을 학문이란 영역으로 파헤치는 것도 즐거웠고, 내가 어쩌지 못하는 타인의 행동도 심리학적으로 생각하면 이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좋은 사람의 향기가 마음에서 비롯되며 이를 위해 심리학에 근거한 인생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우리가 잘 아는 여러 인물들의 전기를 통해 그 인물의 심리를 분석하고 위인이 된 계기를 만들어준 심리적 작용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쓰여진 책이다. 국내외 시기를 막론하고 다양한 인물들의 대략적인 삶을 통해 심리학 여행을 떠나는 길은 매우 즐거웠다.


오드리햅번은 우리가 아는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과 달리 투사로 더해진 불우했던 청소년기가 있었는데 노년기에 이타주의라는 성숙한 기제로 봉사활동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마무리했다.
기이했던 버나드 쇼는 어릴적 공상이라는 기제에 사로잡혔으며 수동공격성이 강한 아이이자 청년이었지만 샬롯 페인 타운셴드를 만나며 독설가득했던 그의 작품이나 강연에 유머가 가미되고, 자신의 열등감을 승화시켜 '피그말리온'과 같은 역작을 써냈다. 비슷하게 마리 퀴리도   수동공격성으로 인해 내면의 분노를 자살시도 암시같은 간접적 방식으로 표현했지만 과학에서의 그녀의 업적은 승화와 이타주의의 표본이다.

추사 김정희가 주위 사람들에게 초기에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던 기제는 반동형성이었지만 역시 승화를 통해 세한도와 같은 명작을 남겼다. 생텍쥐페리도 그의 아내 콩쉬엘로와 서로 반동형성으로 인해 실제 마음과 달리 지나치게 겉으로 서로를 위하는 부부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승화로 어린왕자를 집필하여 세기의 소설가가 되었다.
혼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행동화로 표현하며 문제아가 되었고 스피드를 광적으로 즐기는 해리(의식 상태를 변경해 일시적 스트레스 탈피)로 인해 응급실로 실려가 평생 흉터를 남겼다. 그러나 역시 승화를 통해 혼다 커브라는 모터사이클을 개발해 혁신을 일으켰다. 로빈윌리엄스 또한 해리로 인한 알코올중독, 마약 등으로 황폐화된 삶을 살았지만 연기로 승화시킨 부분은 혼다와 비슷하다. 단지 루이바디 치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했던 부분은 큰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부모에 대한 감정이 부정적 심리 기제를 발현시킨 경우도 많았다.
찰스 다윈은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해 mother이란 단어도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는 억압기제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뿌리인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해도 진화론 즉, 인류의 뿌리를 알아내는 업적을 달성한 것은 역시 승화로 인한 것이다.
앙드레김은 어릴적 계모(물론 일반적인 계모의 이미지(?)와 달리 정말 좋은 분이셨지만)와 살아야했던 시기가 남근기, 즉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시기였고 여기서 내현적 히스테리로 인해 여성성이 강조된 스타일을 했던 것으로 추측했다. 화장에 대한 질문에 유독 예민했던 것은 젊은 시절 노란머리를 사랑했던 그가 아버지의 꾸중을 반동형성이 되었기 때문. 백색 옷은 어머니가 그에게 입혔던 하얀 옷을 통해 그리움을 씻어내고자 한 것이 아닐까 추측되는 부분을 읽으며 그의 따뜻했던 웃음 이면에 숨겨진 안타까운 그림자를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마더 테레사, 페라가모, 톰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 아이젠하워, 철강왕 박태준은 이타주의, 승화, 유머, 예상 등의 기제로 자신의 약점을 커버한 예로 소개되었다.


유일하게 낯설었던 인물은 중국의 주광치앤이었다. 주광치앤은 억제를 통해 수용소에서의 끔찍했던 곤욕을 견뎌냈는데 외양간에서 태극권을 연마하고 미학자로서 생각의 깊이를 더해갔다. 자신의 문제와 갈등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억압, 이지화, 반동형성, 해리와는 달리 억제는 부분적으로 자신의 문제와 갈등을 의식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심리학이라는 소스를 가미해 그동안 이름만 들었던 위인들의 삶을 한층 재미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삶이 더 궁금하거나 심리학 용어에 대한 추가적 이해를 위해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더 검색해보기도 했다. 항상 좋기만 삶은 없지만 여기 등장한 인물들은 대부분 어릴적 가난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부모와의 애착 형성 실패로 심적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다. 비범한 삶의 이면에는 고통과 슬픔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긍정적 심리 기제가 발동했던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 소개된 인물들이 투사, 반동형성, 수동공격성, 행동화, 신체화 등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냈던 주요 심리 기제는 승화, 유머, 억제, 예상, 이타주의였다.

"행복의 본질은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쁨에 있으며, 쾌락 강도나 만족 빈도가 아니라 기쁨을 경험하는 깊이에 있다."

책의 서문에 나와있던 문구다. 심리학에 대한 가벼운 이해, 위인들의 삶, 더불어 행복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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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감사 - 잠시 감사하고 가실게요
윤슬 지음, 이명희 사진 / 담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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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감사
(자유롭게, 꾸준하게! 잠시 감사하고 가실게요~!)

감사일기를 써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다. 매일매일 쳇바퀴 흘러가듯 단조로운 일상이라고 느껴질 때 찾아왔던 위기는 그 단조롭고 평화로운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하루였는지 느끼게 해주었다.
하루의 감사함을 매일 블로그에 기록해볼까 했지만, 그것도 결국 작심삼일. 결국 일기는 손으로 끄적이며 펜을 꾹꾹 눌러가며 종이에 써야 그 느낌이 전해지는 것 같다.
(게다가 디자인까지 너무 예쁘니 더 쓰고 싶게 만든다.)

또 다시 감사를 잊고 살며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선물같이 이 책이 나에게 왔다. 기록 디자이너 김수영(윤슬)님의 자꾸, 감사. 감사일기.

왼쪽에는 예쁜 배경과 가슴에 새겨지는 글귀들.
오른쪽에는 매일 감사일기를 쓸 수 있는 란이 있다.

나는 오늘로 감사일기 이틀차다. 하루를 감사로 마무리하고 내일 다짐과 오늘의 반성을 아래의 해시태그란에 간단히 적어본다. 거창한 일기나 나의 자조섞인 한탄이 아니라, 오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는 걸 적어내며 하루가 더 없이 소중해진다.

한때 내가 적었던 일기에는 온통 하루에 대한 후회와 나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찼었다. 그때 왜 그랬지, 이랬으면 어땠을까, 오늘 난 왜 그렇게 게을렀을까 등등.
그렇게 일기를 적고 나면 이상하게 화이팅 넘치지 않고 다시 힘이 쭉 빠져버리곤 했다. 나는 고칠 점밖에 없고 짜증만 가득찬 사람이 된 것 같아 적다가 그만둬버렸다.
그런데, 감사로 가득찬 일기를 한 번 써보니
1. 내가 이렇게 행운아였나 싶다.
2. 나도 의외로 잘하는게 꽤 많은 사람임이 느껴진다.
3. 일상이 너무나도 소중해졌다.
4. 감사할 거리를 자꾸 찾게되는데 찾다보니 계속 나온다.
5. 사소한 것에도 눈길이 간다. 세심한 사람이 된다.
6. 긍정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7. 하루를 마무리하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8. 나를 돌아보고 내일의 계획도 생각하며 발전적인 사람이 된다.
9. 나 자신 뿐만아니라 내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생긴다.
10. 일기를 쓰니 선생이 아니라 학생이 된 것같아 회춘한 느낌이다.


이렇게 나의 첫 감사일기, 스타트.
이 책이 고스란히 백일간 채워지고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있을까.
백일간 이 감성 뿜뿜한 책에 채워질 나의 감사스토리가 너무나도 기대된다.
자유롭게, 그리고 꾸준하게.
나의 백일을 함께할, 내 손때 가득 묻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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