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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역사인가 - 린 헌트, 역사 읽기의 기술
린 헌트 지음, 박홍경 옮김 / 프롬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워낙 유명한 책이라 제목만 들어도 알지만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역사에 대한 흥미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역사 내용 자체, 그러니까 스토리에만 집중했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은 어떤가 등을 고민해본 적은 없다. 이 책이 그런 고민에 완전한 해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적어도 내 머릿 속에서 역사에 대한 나름의 토론의 장을 밝혀준 책이다. 무엇보다 나의 예상과 달리 읽기 쉽게 쓰여져 있고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기르기에 충분한 책이다.
1장은 역사가 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지를 논한다.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출생지가 미국인지 아니라는 의문 제기, 홀로코스트의 부정 등 역사적 진실의 왜곡은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더 심각해졌다. 정치적 이해가 다른 역사학자는 프랑스의 미슐레처럼 정치적 보복을 당하기도 하고, 미국은 불평등하고 계급 갈등이 일어나는 땅으로 미국을 묘사했단 이유로 역사 교과서 저자 러그를 비난했다.
기념물을 놓고도 그것이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이냐 아니냐 분쟁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반달리즘(공공기물 파손)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탈레반이나 ISIS가 그런 경우이며 종교적 이유와 연결지어 성상 파괴라고 맞선다. 기념물은 과거 회상 및 존경 목적으로 제작되는데 종파, 정당, 정치적 대의 등 권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적 변화나 정권 변화 시 기념물 제작 및 파괴가 이어진다. 단, 프랑스 혁명 때는 왕, 귀족, 교회에서 압류한 물건들을 모아 세계최최 국립 박물관을 설치했는데 증오의 상징이더라도 예술로 탈바꿈시킬 수 있으면 보존가치가 있음을 말해주는 예이다. 유물의 일부는 시간을 관통하는 연결성과 연속성을 위해 보존해야한다.
한편, 일본 역사교과서는 그들이 우리 나라에 대해 저지른 만행(식민 정권, 위안부 등)을 거의 생략하고, 프랑스 역시 아프리카에서의 식민정부가 저지른 폭력, 인종주의를 경시했다. 영국은 영국의 식민지들이 식민통치 결과 개선됐다고 대답하거나 제국주의가 자랑스럽다는 의견이 아니라는 의견의 세 배에 달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여성, 이민자 등 소수 또는 약자의 고등교육 수혜율이 높아지면서 역사도 더디지만 변화하고 있으며 여러 입장이 공존하는 상태로 가고 있다.
생각하기 싫고 불편한 역사적 기억을 회복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정치적 압력에 의해 중단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도 수하르토가 실각하고 나서야 군부와 민병대가 자행한 고문, 참수 등 기억이 수집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도 수니파 전통주의자들과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와 같이 역사적 진실의 올바른 규명을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공적 역사(public history)가 최근 대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문제는 진실과 진실 규명 방법은 무엇인가다.
2장은 역사적 진실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과 해석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진실은 콘스탄티누스 증여나 히틀러 자필편지처럼 과학 등의 객관적 근거가 최적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서와 같은 증거는 작성자 의견과 관심이 반영되어 있어 중립적이지 않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사실의 해석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랑케는 유럽우월주의 속에서 성장했으며 1990년 들어서야 차크라바르티 같은 역사학자들이 유럽중심적 역사모델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역사 기록의 진실을 향한 열망은 오래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서술이 지니는 타당성을 인정하면 역사와 역사적 진실 개념이 확장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유럽의 방식은 역으로 비유럽, 반유럽 정체성을 지지하는데 활용되기도 했는데 일본이나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역사의 해석은 본질적으로 구성이 취약하고 새로운 발견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며 토론과 논쟁은 역사의 민주화가 진행되기 위해 독려되어야 한다.
3장은 역사의 정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대학교육에서 역사는 최근에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경우 역사교육을 받은 적 없는 애덤스가 세미나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태스크포스는 고대, 중세, 영국사에 집중하는 엘리트교육과 시민을 위한 교육을 결합시키고자 했으며 중등학교의 역사교육도 개혁하고자 했으나 서유럽과 미국 외의 역사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여성들이 역사학자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되지 않았으며, 소수인종 역시 마찬가지다.(이 책의 저자도 여성 역사학자다) 하지만 점점 개선되는 중이고 역사학의 무게중심도 고대에서 근대로 옮겨가면서 민족국가가 역사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접근법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관심사도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중등교육에서도 자국 역사와 세계사를 어떤 비중으로 어떻게 교수할 것인지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정부는 역사를 왜곡하고 기억을 통제하기 위해 교육에 손을 대고 있지만 역사와 기억은 돌파구를 갖추고 있다. 이런 돌파구가 민주사회를 강화시킨다.
4장은 역사의 미래를 논한다.
역사에 집착을 버리면 국가 미화에 비판적 태도를 가질 수 있고 타문화, 타민족을 개방적으로 대할 수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역사는 윤리적이다.
역사의 접근법은 전형이 될 만한 사례를 찾는(아우렐리우스에 영향받은 미 대통령들) 것에서 진보의 투영(헤겔이 대표적 예)를 거쳐 '전 지구 시간'이라 불리는 다양한 발전을 한데 묶는 방법이 움트고 있는 중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인간이 환경, 미생물 등등 다양한 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환경 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존중이고 그러한 자세에서 역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책의 말미에는 더 읽어볼 역사 관련 도서가 소개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번역된 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사실 이야기를 제시하는 역사책이 아닌 개론서의 경우 난해한데다 전문성이 반드시 있어야만 읽을 수 있다고 인식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다행히 쉽게 읽히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선사해주고, 여타 다른 책들이 너무 어렵게 쓰여지지않는지 우려하고 있다.
역사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의 뿌리를 알고 그로부터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학문이다. 역사는 정치, 종교, 사회, 문화와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시대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가지 정치적 사건들, 사회적 흐름 등을 후손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과거의 사건과 사실들은 어떻게 해석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어떤 해석이든 어떤 관점이든 열린 토론은 장려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적어도 우리 나라는) 나와 다른 시선을 편협하다고 생각하고 배척하며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그런 분위기가 질문과 토론이 없는 교육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똑같은 이를 반복한다.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해서도 다양한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 4장에서 말했듯 나를 둘러싼 주위 모든 것들에 대한 존중에서 역사의 미래가 보이는 법이니까. 적어도 이 책이 바로 그러한 민주적 토론의 장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