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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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더 아득하고 신비스런 대륙, 라틴아메리카. 다른 대륙에 비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문학적 교류나 소개도 비교적 적은 편이었던 것 같다. 특히 시 영역에서는 더욱 그런 느낌이다. 이 책은 서울대 가지 않고도 명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서가명강 시리즈 7번 책으로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김현균교수가 독자들에게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졌던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네 명의 시인을 통해 소개하는 책이다.

각 나라, 지역마다 특징이 있듯 라틴아메리카 문학에도 특징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는데 창조적 수용이 그것이다. 서구의 문학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창조적 다양성을 드러내는 오묘한 접점에 있는데, 아마도 동질성과 다양성이 혼종되는 지역적, 역사적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쿠바 혁명으로 존재성을 보여준 라틴아메리카는 붐 세대에 이르러 문학의 홍수시대를 열었지만 최근에는 거대 출판 자본의 힘에 의해 그 힘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집필한 <백년의 고독>등이 승승장구하며 소설이 날개를 달고 있을 동안 파블로 네루다,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등은 음지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시를 쓰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 네 명의 시인에 대해 다루었다. (이름조차 어렵고 생소하다.) 이들은 모데르니스모, 포스모데르니스모, 아방가르드를 거쳐 포스트아방가르드로 이어지는 단절과 균열의 역사의 기로에 서 있는 시인들이다. 한 획이 그어지고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 그들이 있었다.

니카라과라는 작은 나라 출신의 루벤 다리오는 비록 서구 중심주의의 시선에서 '카프카'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 주변부 문학에서 시작했지만 대서양을 가로질러 스페인 문단에까지 반향을 일으키며 식민 모국의 일방적 헤게모니의 종식을 가져온 대표적 인물이다. '모데르니스모' 라는 푸른 상징주의 문학 운동의 시작점에 있기도 하며 탈영토화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미래를 예견하는 상징적 작가다. 시가 번역되면서 그들 언어가 지니는 리듬감(우리의 운율같은)을 살리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쉽기는 하다. 라틴아메리카 근대시의 출발점이 루벤 다리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하고, 자국민도 아닌데 칠레에서 그의 우표까지 발행할 정도로 문화적 독립을 이룬 인물이라하니 그의 영향력을 얕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 일부인 '시가 내게로 왔다'는 네루다의 시집에 실린 구절이라 한다. 영화<일 포스티노>를 통해 네루다의 삶이 더 알러졌다. 기회가 되면 꼭 보고싶다. 우리 나라 시인들도 네루다를 많이 인용했는데 김용택 시인이나 황지우 시인 등이 네루다를 언급했고 2002년 영화 <연애소설>에도 영화 일 포스티노의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그의 시는 민중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담고 있으며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사랑, 자신에 대한 시에서 현실에 눈뜬 시로의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 비교적 많이 알려진 시인이다.

페루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던 인물로 그 고통이 그의 시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약했고, 마흔 여섯의 나이에 말라리아 재발로 죽었지만 단 세 권의 시집으로 최정상에 선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고통과 번뇌에서 점차 희망과 연대로 나아가는 양상을 보인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고 적힌 시처럼 애초에 고통을 타고난 운명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며 가난으로 힘든 삶을 살았고 여자관계도 복잡했지만 그걸 관조하는 단계에 다다라 결국 현실적이고 인류 보편 가족애를 그린 시를 많이 탄생시켰다.

니카노르 파라는 칠레의 시인이다. 칠레는 네루다와 미스트랄과 같이 노벨상 수상자를 두 번이나 낸 문화강국이다. 파라는 다른 시인들과 논쟁을 벌이며 네루다와도 논쟁하며 존중하며 교류했다. 기존 시와 다른 경향을 보이며 '시만 빼고 모든 게 다 시다!'라는 표현도 했다하니 그의 시에 대한 관점이 그 한 마디에 다 느껴진다.

라틴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역사적 배경이나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그들이 어떤 어둠 속에서 시를 쓰며 고뇌했는지, 우리의 식민지 시절처럼 그들도 어둠 속에서 얼마나 고뇌하며 시를 쓰고 처절했을지 미약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정리를 좀 해두던가. 시의 배경, 깊은 곳까지 이해하기에는 이과적 성향이 짙은 나로서는 한 번 읽곤 책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시를 만난 느낌이 꽤 신선했다.

책을 덮고는 이상하게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여행을 가고싶어졌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남미 여행을 하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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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생상담소 - 인생의 본질에 대한 니체의 12가지 통찰과 조언
페이허이스 돌 지음, 이서연 옮김 / 성안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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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으로도 유명하고 '신은 죽었다.'라는 명언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철학과 사상은 심오할 것 같다는 생각에 깊게 공부해보지는 않았다. 이 책은 열두 가지의 니체의 인생 철학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탐구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살펴보고자 하는 책이다.

총 12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다시 여러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호흡이 짧아 편안하게 읽힌다.

1장은 '나 자신'이 인생을 대하는 즐겁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2장은 목표를 가진 삶과 그 실천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자신의 능력보다 조금 더 높은 원대한 목표를 세우되, 실천을 위해 단계적 계획을 세우는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3장은 자기통제에 관한 것이다. 분노, 실망 등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감정적 위기를 잘 헤쳐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기 통제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4장은 바로, 지금 행동하는 삶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또한, 그런 삶을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니체의 명언을 토대로 얘기해준다.
5장은 열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해야 함을 얘기한다. 공공의 이익을 동력으로 삼거나 의도적 행동을 통해 열정을 통제할 수 있다.
6장은 몰입, 집중력의 중요성을, 7장은 혁신적인 사고, 창의적 생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런 것들이 내부 바탕이 되어도 외부의 인간관계를 잘 정립하지 못하면 안된다. 8장은 인생에서 중요한 친구, 적당한 융통성을 지닌 인간관계에 대해 얘기한다.
어떤 일을 하다보면 두려움과 열등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실패의 상황이 오기도 한다. 9장은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10장은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는데 타인과 함께, 또는 스스로 이를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얘기한다. 11장은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으므로 이를 극복할 용기를 장착하고 실패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볼 것을 얘기하며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 장은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식, 지혜를 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또한 성공한 사라의 정신과 덕성을 용기와 정의와 절제와 지혜로 연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니체의 개인적 사상이 짙은 책은 아니다. 니체가 남긴 수많은 명언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뼈때리는 니체 명언집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니체의 명언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누구나 다 알법한 당연한 내용도 실천이 뒤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목표를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말고 자신감있게 나를 믿으며 나아가라는 말은 굳이 누군가가 언급하지 않아도 당연한 말이다. 그렇지만 그걸 실행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실행하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이 책에도 언급되었듯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지만 정말 어머니로 생각하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예가 몇 되겠는가. 이 책은 그 어려운 실행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여러 스토리와 함께 간략하고 쉽게 소개되어 있다.

목표를 다잡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 인생에 대한 니체의 명언을 읽어보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가볍게 읽고 무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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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알고 싶다 : 낭만살롱 편 -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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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 <여덟 단어>에서 저자 박웅현은 이런 말을 했다. 클래식을 당신 밖에 살게 하지 말고, 깊게 보고 들으라고. 창의력 있는 아이로 기르기 위해서 느끼게 해달라고.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피커를 가져다놓고 비발디의 음악을 들려주라고 말이다. 그 중 반 이상은 감동을 받아 소름이 돋을 것이고 느끼게 되면 그 이후는 스스로 찾아서 듣게 된다던 책 속 구절이 생각났다.

"클래식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즐길 대상입니다. (중략) 명품은 클래식입니다. 고가품과 명품을 헷갈리지 말고, 진정한 명품의 세계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여덟 단어, p97

클래식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에 이견은 없겠지만 박웅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클래식 강조에도 불구하고 왠지 어렵게 느껴져서 공부해 볼 생각이 쉬이 들지 않았다.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성장하는데 아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니 자연히 클래식과 가까울 기회를 잡지 못했다. 태교하며 들었던 것과, 어린 시절 아침 쓰레기수거차에서 울리던 클래식을 알람소리처럼 들었던 것을 제외하면 나는 아주 유명한 몇몇 곡과 작곡가를 빼고는 거의 아는게 없는 부끄러운 인간이었다.

이 책은 이런 나같은 클래식 문외한들이 좀 더 클래식과 가까워지고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정말 예술과 관련이 코딱지만큼도 없고 관심도 없던 내가 클래식이란 명품을 친구삼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인 피아니스트 안인모는 이미 클래식 팟캐스트 [클래식이 알고 싶다]로 유명한 인물이라 한다. 관심이 없으니 이런 팟캐스트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다른 작곡가도 관심이 생겨 찾아보게 되었다. 책 자체가 편안한 아는 언니가 옆에서 말해주는 것 같이 쉽게 읽히고 딱딱하지 않아 팟캐스트 듣는 것 같은 효과가 있다.
(헉. 인물 검색하다보니 이분이 유명 통역가이자 방송인인 안현모씨 언니란다.)

일단, 책의 구성이 매우 알차서 참 좋았다.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 슈만, 클라라, 브람스, 멘델스존까지. 들어본 작곡가도 있고 부끄럽게도 첨 들어보는 작곡가도 있다. (클라라는 그... 시구의 여왕 밖에 생각 안했다;;)각 장의 첫 페이지는 각 작곡가의 대표적 작품을 QR코드에 실었다. 작곡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 삶의 희노애락이 담긴 음악을 곳곳에서 QR코드로 만날 수 있다.

'래알꼭알'에서는 클래식 입문자들이 꼭 알아야 할 용어들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래알깨알'에는 작곡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날 수 있어 읽는 재미가 배가 된다. 각 장의 마지막은 작곡가들의 음악적 삶에서 중요한 키워드를 뽑아 정리해두었고, 앞서 본문에 등장했던 음악들을 플레이리스트로 다시 모아 정리해두어 한꺼번에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가 수록되었다.

예술가의 삶은 면면이 평범하진 않다. 결혼을 했다가 이혼하고 또 사랑에 빠지길 반복하기도 한다. 예술가들에겐 그 지점이 가장 위대한 곡을 만들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랑에 충만할 때, 이별과 죽음 앞에서 생에 없을 고독을 느낄 때, 모든 생의 순간 순간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루어진 것 같다. 클라라는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슈만과의 사랑을 이루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더 음악적 내공의 힘을 쌓았을 것이며, 끝내 정신질환을 극복하지 못한 슈만과 그런 슈만, 클라라를 바라보는 슈만의 제자 브람스. 그런 모든 얽히고 섥힌 실타래들이 왠지 음악속에 복잡하게 녹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왜 안 그럴까. 음악이 곧 그들의 인생인데.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는 그 시간은 작곡가들의 인생길을 따라 때로는 웅장하게 때로는 고독하게 아름답고 찬란한 클래식의 바다에 빠질 수 있는 시간, 클래식을 알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깊어지는 시간일 것이다. 삶을 좀 더 풍요롭고 깊게 가꾸고 싶은 사람들, 클래식에 빠지고 싶지만 왠지 모를 거리감에 선뜻 들어보지 못했던 모든 클래식 초보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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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재판 이야기 속 지혜 쏙
김인자 지음, 배철웅 그림 / 하루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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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부쩍 토끼에 빠진 첫째다. 토끼가 등장하는 책만 골라 읽어달라고 하는데 오늘 <토끼의 재판> 책이 우리 집에 왔다.

재판이라는 단어를 잘 모르는 첫째지만 표지를 보고 토끼 표정이 어때보이냐고 물으니 걱정하는 표정이라고 한다. 호랑이랑 아저씨가 싸운 것 같다고도 하고.

표지만 보고 내용을 추측하는 활동을 해보며 토끼는 무엇때문에 걱정스럽거나 고민이 있는 표정을 하고 있고, 호랑이와 아저씨(나그네)는 왜 싸웠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해본다.

이 책은 어릴적 한번은 들어본 바로 그 이야기다.

호랑이가 길가다가 구덩이에 빠졌다. 나그네가 무서움을 무릅쓰고 살려줬더니 배고파서 배은망덕하게 잡아먹으려고 한다. 나무와 소에게 도움을 청하였으나, 함부로 나무를 베고 지칠 때까지 소에게 일만 시키는 인간의 편을 들리 없다. 지나가던 토끼에게 마지막 재판을 부탁한다.

토끼는 어떻게 된 일이냐 묻고 호랑이는 성급한 마음에 직접 구덩이에 빠지는 시연을 한다. 토끼가 통나무를 치워버려 호랑이가 빠져나올 수 없게 됨은 당연한 이치.

자신을 구해준 나그네를 잡아먹으려고 한 호랑이가 다시 구덩이에 빠지는 권선징악의 내용. 우리 아이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나는 중간에 소를 힘들게 하는 인간이나 나무를 베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간단히 예를 들어주었다. 이해했는가는 모르겠지만 어린이집에서 했던 식목일 행사도 다시 얘기해보고 나무를 지켜주는 건 아주 소중하고 커다란 일이라고 말해줬다. 아직 소를 모는 인간에 대한 경험이 없는 아이를 위해 강아지를 예로 들어 우리가 강아지를 예뻐하듯이 살아있는 모든 것은 예쁘고 또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직 더 깊은 얘기는 무리일 것 같아서.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인간의 입장에서 행해지는 행동들이 자연이나 동물에게 해가 될 수 있음을 논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인간의 행동을 모든 인간의 행동으로 일반화시켜 죄없는 나그네를 잡아먹어도 괜찮다는 식의 결론은 지혜롭지 못한 판단이다. 아이는 이미 직관적으로 호랑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왕이 되었을 호랑이보다 힘은 약하지만 지혜롭고 현명한 토끼가 이길 수 있음을 결론은 말해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뜯어보면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모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의 자연훼손, 자기보다 힘이 약한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것, 자기를 살려준 나그네의 마음을 생각할 줄 아는 것 등은 모두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되새기게 한다. 아이들 책에서 어른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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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일러스트와 헤세의 그림이 수록된 호화양장
헤르만 헤세 지음, 한수운 옮김 / 아이템비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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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 본질을 찾기 위한 한 소년의 처절한 고뇌의 과정을 담은 아름다운 소설.

사실 이렇게 한 줄로 칭하여 보았으나 감히 한 줄 요약으론 이 소설의 깊이를 다 표현할 수 없다. 또한, 한 번 읽어서 이해하기는 힘들어서 다시 재독해야 할 소설이다.

1. 선과 악의 공존. 모두 선한 세상은 없다.
부르주아 집안의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싱클레어가 열 살 무렵 만난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의 지점을 이끄는 인물이다. 만약 싱클레어가 크로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평범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싱클레어가 고작 열 살에 만난 크로머는 아늑하고 따뜻한 세계와는 정반대인 어둠과 흑의 세계로 대변되는 인물이다. 돈을 빼앗으려는 크로머의 협박과 술수에 고통받고 있던 싱클레어는 막스 데미안을 만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젊은 날의 인생에 끊임없이 나타나 고통받거나 고뇌에 빠진 싱클레어에게 깨달음을 주는 형이다. 싱클레어가 크로머로부터 느끼는 감정은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볼 법하다. 선의 세계를 지향하면서도 악의 세계에 빠졌을 때 느끼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어둠의 매력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는 싱클레어는 스스로를 자책하지만, 그 때 나타난 데미안은, 신 아브락사스에게도 선과 악이 공존할거라고 얘기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벌로 표적이 생긴게 아니라 비범함의 표적이 먼저 생긴 것 아니냐는, 성서와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카인이 악, 아벨이 선으로 대비되던 기존 성서를 뒤집고, 과연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된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선의 알을 깨고 나오면 또다른 악의 세계가 있지만 알을 깨면 알 속 세계와 알 밖 세계는 결국 하나다. 크로머는 구원같은 존재 데미안에 의해 사라진 후 단 한 번도 의식적으로 등장하지 않다가 마지막 무렵에 데미안이 크로머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을 싱클레어에게 던진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크로머라는 악의 세계는 다시 마음 속에서 꺼내기 힘든 최초의 단단한 알이었을거다. 꽁꽁 묵혀놓은 그 기저를 건드려야만 도약할 수 있다는 것. 결국 선악은 공존하고 악이 선이 되기도, 선이 악이 되기도 하는, 그 모든 걸 아우르는 것에 본질이 숨어 있다.

2. 데미안의 의미1
전학 후 만난 불량친구 베크를 만난 곳에서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라는 여성을 한눈에 짝사랑하게 된다. 싱클레어가 성에 눈을 뜨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며 베아트리체를 흠모하며 베크와 자연히 멀어지고 정신 못차리고 있던 싱클레어가 다시 삶의 기력을 되찾고 그녀에게 매달린다.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고 나서 그것이 결국 데미안임을 알아차린다. 데미안은 중간중간 의외의 순간 혹은 당연한 순간에 마법처럼 등장한다. 베크를 만났던 악의 시초에서 다시 선에 대응되는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그것이 합쳐져 결국 데미안으로 수렴되는. 결국 데미안은 선과 악을 모두 품은 그 세계 자체다.

3. 타인을 통해 보는 나, 나를 통해 보는 타인
오르간연주가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 그리고 그와의 대화는 싱클레어를 한층 성숙한 세계로 이끈다.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는 마치 쳇바퀴도는 것 같지만 그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벽, 피스토리우스의 벽을 보고 느끼게 된다. 한편, 크나우어에게는 싱클레어가 데미안같은 신적인 존재다. 싱클레어는 크나우어와 주 대화주제였던 성욕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상상 속의 여인 그림을 그려본다. 크나우어와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가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자신과 비슷한 듯한 피스토리우스의 모습에서 벽을 발견하고, 자신보다 연약한 크나우어의 자살 시도를 어떤 이끌림에 의해 막았던 자신의 모습에서 자신 속에 데미안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4. 싱클레어의 이상향, 에바 부인
중성적이고 뭔가 전지전능한 느낌으로 묘사되는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가 그렇게 찾아 헤멘 이상향이다. 에바 부인은 자신이 그렇게 갈망하고 찾던 데미안의 어머니였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어머니이자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자 신과 같은 존재다. 데미안보다 더 먼 곳에 있는, 상위의 존재인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내면 속 데미안을 일깨워주는 등불과도 같다.

5. 데미안의 의미2
데미안은 종말에 이르러 차갑고 죽어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계의 종말이라는 운명을 예견하며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전쟁터에 징집된다. 전쟁터라는 극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의 진정한 내면과 본질을 경험한 싱클레어는 폭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는다. 깨었을 때 데미안이 옆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데미안은 피를 흘리며 에바 부인의 키스를 싱클레어에게 전해주며 사라진다.
데미안은 크로머란 악의 세계에서 힘들어하던 싱클레어의 첫 위기상황부터 전쟁으로 인한 삶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까지 위기의 순간마다 싱클레어를 지켜냈다. 데미안의 사라짐(혹은 죽음), 그리고 에바 부인의 키스는 싱클레어가 이제는 스스로 알에서 깨어나올 수 있고, 그렇게 해야한다는 암시다. 데미안은 결국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고통받던 소년이 청년이 되는 과정에서 부단히 자기 존재의 가치와 본질, 내면을 쓰다듬고 때론 깨뜨리고 성숙시키는 과정 전체라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에바 부인에 대응되는 중성적 이상향은 신인 아브락시스의 여성과 남성의 공존, 선악의 공존, 욕구와 금지가 공존한 세계 전체를 의미한다.

* 해석이 다양할 수 있고, 내가 느낀 것이 헤르만 헤세의 지향점이 전혀 아닐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단지 나의 데미안에 의거하여 읽었을 뿐이다.
지금이 아니라 더 어렸을 때 읽었다면, 더 나이들어 읽는다면 또 다른 시각으로 읽혀질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삽화와 헤르만 헤세의 수채화가 함께 있는 책이어서 더 뜻깊었는데 데미안의 그림을 보고 상상하며 읽으니 더 생생하게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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