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일러스트와 헤세의 그림이 수록된 호화양장
헤르만 헤세 지음, 한수운 옮김 / 아이템비즈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 본질을 찾기 위한 한 소년의 처절한 고뇌의 과정을 담은 아름다운 소설.

사실 이렇게 한 줄로 칭하여 보았으나 감히 한 줄 요약으론 이 소설의 깊이를 다 표현할 수 없다. 또한, 한 번 읽어서 이해하기는 힘들어서 다시 재독해야 할 소설이다.

1. 선과 악의 공존. 모두 선한 세상은 없다.
부르주아 집안의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싱클레어가 열 살 무렵 만난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의 지점을 이끄는 인물이다. 만약 싱클레어가 크로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평범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싱클레어가 고작 열 살에 만난 크로머는 아늑하고 따뜻한 세계와는 정반대인 어둠과 흑의 세계로 대변되는 인물이다. 돈을 빼앗으려는 크로머의 협박과 술수에 고통받고 있던 싱클레어는 막스 데미안을 만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젊은 날의 인생에 끊임없이 나타나 고통받거나 고뇌에 빠진 싱클레어에게 깨달음을 주는 형이다. 싱클레어가 크로머로부터 느끼는 감정은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볼 법하다. 선의 세계를 지향하면서도 악의 세계에 빠졌을 때 느끼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어둠의 매력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는 싱클레어는 스스로를 자책하지만, 그 때 나타난 데미안은, 신 아브락사스에게도 선과 악이 공존할거라고 얘기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벌로 표적이 생긴게 아니라 비범함의 표적이 먼저 생긴 것 아니냐는, 성서와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카인이 악, 아벨이 선으로 대비되던 기존 성서를 뒤집고, 과연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된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선의 알을 깨고 나오면 또다른 악의 세계가 있지만 알을 깨면 알 속 세계와 알 밖 세계는 결국 하나다. 크로머는 구원같은 존재 데미안에 의해 사라진 후 단 한 번도 의식적으로 등장하지 않다가 마지막 무렵에 데미안이 크로머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을 싱클레어에게 던진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크로머라는 악의 세계는 다시 마음 속에서 꺼내기 힘든 최초의 단단한 알이었을거다. 꽁꽁 묵혀놓은 그 기저를 건드려야만 도약할 수 있다는 것. 결국 선악은 공존하고 악이 선이 되기도, 선이 악이 되기도 하는, 그 모든 걸 아우르는 것에 본질이 숨어 있다.

2. 데미안의 의미1
전학 후 만난 불량친구 베크를 만난 곳에서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라는 여성을 한눈에 짝사랑하게 된다. 싱클레어가 성에 눈을 뜨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며 베아트리체를 흠모하며 베크와 자연히 멀어지고 정신 못차리고 있던 싱클레어가 다시 삶의 기력을 되찾고 그녀에게 매달린다.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고 나서 그것이 결국 데미안임을 알아차린다. 데미안은 중간중간 의외의 순간 혹은 당연한 순간에 마법처럼 등장한다. 베크를 만났던 악의 시초에서 다시 선에 대응되는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그것이 합쳐져 결국 데미안으로 수렴되는. 결국 데미안은 선과 악을 모두 품은 그 세계 자체다.

3. 타인을 통해 보는 나, 나를 통해 보는 타인
오르간연주가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 그리고 그와의 대화는 싱클레어를 한층 성숙한 세계로 이끈다.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는 마치 쳇바퀴도는 것 같지만 그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벽, 피스토리우스의 벽을 보고 느끼게 된다. 한편, 크나우어에게는 싱클레어가 데미안같은 신적인 존재다. 싱클레어는 크나우어와 주 대화주제였던 성욕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상상 속의 여인 그림을 그려본다. 크나우어와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가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자신과 비슷한 듯한 피스토리우스의 모습에서 벽을 발견하고, 자신보다 연약한 크나우어의 자살 시도를 어떤 이끌림에 의해 막았던 자신의 모습에서 자신 속에 데미안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4. 싱클레어의 이상향, 에바 부인
중성적이고 뭔가 전지전능한 느낌으로 묘사되는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가 그렇게 찾아 헤멘 이상향이다. 에바 부인은 자신이 그렇게 갈망하고 찾던 데미안의 어머니였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어머니이자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자 신과 같은 존재다. 데미안보다 더 먼 곳에 있는, 상위의 존재인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내면 속 데미안을 일깨워주는 등불과도 같다.

5. 데미안의 의미2
데미안은 종말에 이르러 차갑고 죽어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계의 종말이라는 운명을 예견하며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전쟁터에 징집된다. 전쟁터라는 극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의 진정한 내면과 본질을 경험한 싱클레어는 폭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는다. 깨었을 때 데미안이 옆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데미안은 피를 흘리며 에바 부인의 키스를 싱클레어에게 전해주며 사라진다.
데미안은 크로머란 악의 세계에서 힘들어하던 싱클레어의 첫 위기상황부터 전쟁으로 인한 삶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까지 위기의 순간마다 싱클레어를 지켜냈다. 데미안의 사라짐(혹은 죽음), 그리고 에바 부인의 키스는 싱클레어가 이제는 스스로 알에서 깨어나올 수 있고, 그렇게 해야한다는 암시다. 데미안은 결국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고통받던 소년이 청년이 되는 과정에서 부단히 자기 존재의 가치와 본질, 내면을 쓰다듬고 때론 깨뜨리고 성숙시키는 과정 전체라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에바 부인에 대응되는 중성적 이상향은 신인 아브락시스의 여성과 남성의 공존, 선악의 공존, 욕구와 금지가 공존한 세계 전체를 의미한다.

* 해석이 다양할 수 있고, 내가 느낀 것이 헤르만 헤세의 지향점이 전혀 아닐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단지 나의 데미안에 의거하여 읽었을 뿐이다.
지금이 아니라 더 어렸을 때 읽었다면, 더 나이들어 읽는다면 또 다른 시각으로 읽혀질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삽화와 헤르만 헤세의 수채화가 함께 있는 책이어서 더 뜻깊었는데 데미안의 그림을 보고 상상하며 읽으니 더 생생하게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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