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의 눈물
권지예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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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추천인에 '하.정.우.' 이 세 글자만 보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읽게 된 소설이다. 권지예 작가에 대해 궁금하여 검색해보았는데 꽤 등단한 지 오래 되셨다. 벌써 올해로 60세라고 하는데 작가님 사진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은 <베로니카의 눈물>을 포함한 6편의 중,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마지막 편을 제외하고는 낯선 여행지에서 느끼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선이 주를 이룬다.

<베로니카의 눈물>은 쿠바로 여행을 떠난 한국 작가가 그 곳에 두 달 가량 머무르며 만난 집 관리인 베로니카와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의 널뛰기가 잘 그려진 소설이다. 가까운 나라도 아닌 낯선 나라, 특히 풍족하지 않은 지역을 여행하며 느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보면 아무리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의존하고 싶어지는 법일 거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에겐 그 대상이 73세의 가난한 집 관리인 베로니카다. 가스 불도 제대로 붙이기 힘들어 먹는 문제, 씻는 문제 등 기본적인 욕구도 제대로 해결하기 힘든 여행지에서 현지인 베로니카는 그녀에게 구원 같은 존재이면서도 너무나도 가난한 그녀의 사정을 뻔히 보고 있자니 연민의 감정에도 휩싸인다. 그리고는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약속을 잘 안 지키지긴 하지만 어쨌든 또 나중에 듣고 보면 그럴 법한 이유도 있다.

초록 오렌지 반쪽을 귀하게 먹는 쿠바 노인의 순수한 기쁨 앞에서 나는 미안해서 맛있는 척 한다. 하지만 맛없다. 내 혀와 내 뇌는 정확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 개구리보다 더 행복한 거 같아 살짝 질투가 나려 했다.

p67

베로니카의 삶에서 오래전 내 친구가 인도를 여행하고 온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사실 굳이, 여행하고 싶지 않은 나라 인도를 갔다오고 내 친구의 삶은 많이 바뀐 것 같다. 우리의 눈에는 그들이 매우 가난해서 연민과 동정의 감정으로 안타깝게 그들을 우리의 마음대로 재단하여 보고 행복을 결정짓지만 그들의 행복은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게 아니다. 실제로 인도에서 내 친구가 만난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충실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고 했다. 비교 대상이 많아 불만만 많은 우물 밖 개구리보다는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행복을 아는 우물 안 개구리가 더 나을 수도 있는 거였다.

아래 문장 또한 이 소설이 의미하고자 하는 주요 주제는 아닌듯 하지만 어쨌든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모니카, 중요한 일이라고 너무 집착하고 애쓰지 마. 그런 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아. 그럴수록 그 중요한 일이 너를 괴롭히는 거야. 인생은 그저 흐르는 거야. 그냥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실어. 춤출 때처럼. 우린 그래서 모두 춤을 잘 추지. 여긴 쿠바야!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어. 그냥 파도에, 리듬에, 인생의 시간에 몸을 실어.

p76

말미에는 주인공이 베로니카에 대해 쏟는 연민과 선심이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실 사건이라기보단 이 역시 주인공이 혼자 오해 또는 이해하는 거다. 베로니카는 어쩌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행동을 보고도 내 감정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변한걸까, 내 마음이 변한걸까. 어떤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일까, 안다고 믿고 싶은 내 마음일까. 베로니카의 눈물은 자신을 쿠바 엄마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이타심에 대한 감동인 것인지, 그 이타심을 무조건 손에 돈을 쥐어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눈물인지 알듯 모를듯하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는 일 때문에 파리에서 연인들의 키스 사진을 찍던 재이는 동성 커플의 키스를 몰래 찍다 혼쭐을 당한다. 전남편 진봉을 만나게 된 곳도 이곳 파리였는데, 세바스티앙이라는 프랑스어 과외 알바 교사를 더 사랑했었다. 하지만 멋지고 늘씬한 세바스티앙과 달리 작고 초라한 모습의 동양인 여자라고 생각되는 본인의 모습을 깨닫고 세바스티앙 옆에 있던 한국인 진봉과 결혼했다. 그러나 진봉의 외도를 확인한 후 충격에 휩싸여 이혼하게 된다. 배우자의 외도, 그리고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 재이의 감정에서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서 줘버리겠다는 말이 감히 이해가 되었다. 낭만적 삶이란 무엇일까. 낭만이란 왠지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것 같다는 허무주의가 내게도 온 몸에 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던 순간>은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해서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듯한 섬광같은 아름다운 순간이 공유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결국 개인의 파라다이스를 구성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고, 누군가를 완벽하게 믿으면 안된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진실같기도 하다. 믿었던 남편이 잠깐 만났던(실제로 잤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그냥 연민인지도 모를) 쿠바의 어린 여인에게 느꼈던 파라다이스의 순간을 아내인 수현은 죽은 남편 민수를 뒤로 하고 혼자 떠난 여행에서 느꼈다. 그 참담하면서도 찬란한, 오묘한 기분이 잘 표현되어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한 방송작가가 남자 연예인과의 하룻밤으로 인해 아기가 생기게 되고 오래된 연인에 대한 미안함, 자신이 더럽혀졌다는 죄책감 등에 휩싸여 미투를 선언할 것인지 말것인지 고뇌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플로리다라는 낯선 곳으로의 예기치 않은 여행, 그리고 여행에도 역시나 돈이 필요하다는 쓰디쓴 진실과 마주하게 되며 자신을 더럽힌 남자 연예인이 송금해준 천만원의 돈이 이러한 상황에 겹쳐진다. 방송가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까 정말...

단체 여행에 대한 단상이 절로 떠오르게 되는 <카이로스의 머리카락>은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뒷담화가 참 현실스러운 소설이다. 여러 개의 명함, 촌스러운 이름을 덮기 위한 필명, 결국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왔던 중장년에게 묵직한 삶을 살아온 한 남자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는 대비된다. 사진 속에 남겨진 아름다운 기억 뒤에는 그 컷 하나를 아름답게 남기기 위한 수많은 희노애락이 있었으리라. 그리스 신화의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앞머리는 길고 뒤는 휑하다고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데 기회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기에 뒷머리는 휑하다고 한다. 주인공 부부 특히 아내 시점에서의 뒷담화로 시작된 소설에서 갑작스럽게 말미에 등장하는, 인생의 기회를 잡은 한 남자의 성공 스토리가 쌩뚱맞긴 했다.

인생 허무주의의 절정이 느껴지는 소설이 바로 마지막에 수록된 <내가 누구인지 묻지마>이다. 유일하게 타국이 등장하지 않는 단편소설이면서 신문기사로만 접하는 안타까운 이들의 단면들이 살짝 드러나는 소설이다. 마지막에 이 소설이 배치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답답한 마음으로 소설을 덮었다. 남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과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때 오는 괴리감이 중간중간 엄습한다. 결국 돈이 문제인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 소설들은 쿠바나 플로리다, 발칸반도 같은 여행하기 먼 나라를 대리 여행하는 느낌을 기본으로 크게 두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우리 장착한 자본주의 프레임에 대한 재고찰이다. 우린 이미 모든 걸 자본주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행복도, 사람도, 돈이라는 잣대에서 벗어날 수 없어보인다. 베로니카가 보인 눈물에서도 그렇고, 돈이 없어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모녀도 그렇다. 있는 척, 고상한 척 하며 자신의 기준을 잣대로 남을 재고 뒷담화하기 바쁜 카이로사의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마지막 단편소설인 <내가 누구인지 묻지마>에서는 극명하게 표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베로니카가 전한 문장들이 다소 상투적일 수 있지만 되새겨지는 것이 아닐까. 둘째, 타인과의 관계와 삶의 의미에 대한 연관성 고찰이다. 인간은 사회적일 수 밖에 없고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결국 삶을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행복의 의미는 아무리 가까운 타인이라 할지라도 타인에게서 얻을 수 없다. 누가 내 삶의 주체가 될 것인가. 자신이 주체가 된 삶을 살아가야 타인도 있고 뒤돌아보는 여유도 생길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삶에서 오는 허무주의를 경계해야함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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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부자노트 - 인생이 바뀌는 진짜 돈 공부
윤성애 지음 / 프롬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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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다른 일반적인(?) 집과는 달리 신랑이 재테크 담당이다. 나와 달리 꽤 꼼꼼하고 섬세한 신랑이 보는 재테크 책들은 뭔가 심오한 책들이 많다. 가치투자... 월가의 영웅... 이런 두꺼운 책들, 보기만해도 머리 아픈. 나도 신랑이 가정 경제에 대해 의논할 때 합리적인 판단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저런 두꺼운 책말고 나같은 경제무식자, 재테크 초보에게 적합한, 재테크 전반에 관한 상식적인 책은 없을까. 좀 쉽고 재미도 있으며, 무조건 돈만 좇아가라는 얘기 말고 인생 전반의 재테크에 대해 얘기해주는 그런 책 말이다. 그런 생각이 가득했을 때 만난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먼저 꿈에 대한 마인드맵을 그려보는 것으로 첫 장을 시작한다. 이게 넘 좋았다. 단순히 돈이 최고야! 가 아니라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자유가 필요하므로. 그리하여 꿈은 비재무적 목표를 만들고 그것이 다시 재무적 목표를 만들어보게 한다. 단기목표, 1년 소득을 적어보고 불필요한 소비줄이기, 가계부쓰기 등을 통해 가정경제파악을 한다. 고정지출, 변동지출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자산상태표, 부채상태표를 만들고 새는 돈이 없는지 체크리스트를 통해 확인하는 시간도 갖게 한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게 유도하고 소비 후 만족도가 큰 소비는 장려한다. 소비 피해를 봤을 때의 팁도 수록되어 있다.
빡빡하게 예산을 잡고 강제 저축하는 건 비추한다. 생활비 통장에는 필요 최소 생활비에 여유자금을 더해두어야 하는데, 돈관리가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고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투자는 금융자산의 20프로 내외로 여유자금으로 하기를 조언하며, 목표와 그 목표가 필요한 시점에 돈이 준비될 수 있는 금융상품을 선택하게 표를 만들어보는 활동도 좋았다.

2부는 연말정산, 부동산, 대출, 보험으로 나누어진다. 연말정산 계절이 다가오면서 매년해도 복잡했는데 그 복잡한 공제항목과 궁금했던 점을 쉽게 설명해줘 이해가 정말 잘됐다. 특히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어떻게 써야 더 많이 환급 받을 수 있는지 예시로 쉽게 설명되어 있다.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면 결혼준비비용, 대출, 전월세계약 시 체크사항 및 과정, 주택 계약 시 반드시 확인할 사항, 부동산 절세지식 등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대출 상품과 대상, 기간, 한도, 조건 등이 정리되어 있어 비교하기 좋은데 맞벌이는 참... 대출이 쉽지 않다는게 다시 느껴진다. 보험은 정말 결혼 전엔 몰랐는데 건강이 젤 중요하고 그게 삐그덕했을 때 가정경제도 삐그덕하므로 점점 관심이 간다. 여기서는 보험 가입 시 알아둬야 할 사항을 정리하고 현재 내 수준에 적합한 보험료, 보험 리모델링이 필요한 건 아닌지 셀프진단할 수 있게 해준다.

3부는 노후대책에 대해 나와있는데 노후의 비재무적 목표를 계획하고 필요한 한 달 생활비, 필요노후자금을 직접 계산하게 되어 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그 일을 위해 시작해야 할 일을 적는 칸에서 멈칫했다.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도 중요하고, 그래서 유언장 적는 방식도 나와 있다.

이 책은 내가 직접 인생의 전반을 계획하도록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 돈이 수단으로 필요할 뿐이지 그것이 목적은 아니란 인상을 준다.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고 아이키운다고 직장다닌다고 한동안 없었던 목표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계획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한땐 계획녀였는데 사실 하루하루 버티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지 이 생각이었던것 같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도 느꼈고. 그렇지만 남은 긴 인생을 잘 살기 위해 다시 계획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을 앞두고 이 책을 만난게 다행이다.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독신이지만 돈 관리 잘하고 싶은 사람들, 나처럼 뒤늦게 돈공부에 눈뜨려고 맘 먹은 많은 어머니들이 본격 재테크 시작 전에 아웃라인을 잡기에 딱 좋은 책이다. 술술 읽히는 초보 돈공부책으로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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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 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의 힘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서종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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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시의 사회적 불평등과 분열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인프라의 확충과 공동체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는 사회학 책이다.

1장에서는 필수적이지만 가장 저평가된 사회적 인프라인 도서관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노인들, 육아하는 엄마들의 교류의 장이 되고 있는 이 곳에서는 '집합적 열광'과 사회적 응집성을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가 대세가 되는 요즘 시대에 좋아요 버튼 눌리기와 이웃 또는 팔로우, 팔로잉을 통한 교류와 대비되는 면대면 대화는 우리가 하는 가장 인간적인 활동이자,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2장에서는 지역사회의 범죄율이 높은 원인과 그 해결방법을 사회학적 방법으로 모색하고 있다. 적절한 환경 구조만 주어진다면 누구든 범죄자가 될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셉테드 이론에 근거하여 논의를 펼치지만 이것이 극대화된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경우처럼 상류층이 자기 보호를 위해 감시카메라 등을 설치하며 민주주의 약화, 사회적 분열 심화 현상을 겪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에서는 깨진 유리창이 아니라 버려진 건물 전체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 차이가 완전히 다른 정책을 낳는다고 말한다. 장소기반 개입이 사람기반 개입보다 범죄율 감소에 유의미한 효과를 가져오며, 젠트리피케이션이 만든 지역소매상점은 빈곤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3장은 학교의 역할을 얘기한다. 남학생 사교클럽인 플래터너티는 배타적 사회적 인프라의 전형이며 대학의 다양성을 훼손한다. 어떤 캠퍼스를 설계해야 공동체, 충성, 시민성을 촉진할 수 있는가를 얘기하면서 도서관의 중요성을 다시 언급한다.

4장은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남용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스위스 헤로인 관리구역을 예로 든다. 무조건적 금지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가운데 일정부분 마약을 허용하게 한다는 점에서 논쟁적이지만 사회적 인프라의 귀감이 된 사례다. 그로잉 홈 단체가 황량한 공터를 도시농장으로 만든다든지, 싱가포르의 산책로, 공원, 녹지ㆍ시설관리 등은 건강한 유대가 사회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꾸는지를 일깨운다.

5장은 미국의 2016대통령선거에서 보여진 모습을 통해 '결속적 사회자본'은 강화되지만 '교량적 사회자본'이 약화된 미국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 혹은 혹은 상대입장에 정기적으로 노출될 때 민주주의 정치가 더욱 잘 작동'함을 얘기한다. 집단간 경계를 허무는 공간이었던 수영장이 차별, 갈등을 야기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 현실에서 흑인 교회나 이발소가 그들의 대항적 공론장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고, 지역 사회의 운동 경기장이 인종간 계층간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6장은 허리케인, 지진 등이 일으키는 자연재해에 맞서기 위해 역시 사회적 인프라가 중요함을 말한다. 견고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잘 연결되어 있을 때 재난을 더 잘 견디고 오래산다고 한다. 기후관련 시설을 공원, 광장으로 활용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사회적 인프라를 통해 배수 인프라를 개선한 싱가포르의 예가 그것이다.

혁신과 창조의 아이콘인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이 책에서 상당히 저격당한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그의 기업운영(예를 들면 사옥을 더 크게 확장하고 지역 주민은 이용 못하는, 사원들만을 위한 문화시설)이나 기부가 사회의 통합이나 공동체적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카네기가 자신이 번 돈으로 곳곳에 카네기 도서관을 건립한 것과 대비된다고 얘기하며 트럼프대통령의 국경 장벽, 이민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등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전혀 가볍지 않은 주제가 묵직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졌다. 나는 도서관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십분 공감했다. 소셜 미디어의 한계도 공감한다. 우리 곧 만나자는 카톡의 한마디보단 직접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의 의미를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 단, 소셜미디어의 긍정적 가치는 분명히 있고 그걸 간과해선 안된다. 국가 장벽 문제는 좀 더 들어가서는 우리 나라에서도 뜨거운 감자인 난민 문제까지 생각나게 했다. 분명한 것은 당장 중요한 나의 가치, 나의 권리, 나의 소유의식을 우리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것이다.
마약성 진통제, 자연재해, 범죄, 계층간 갈등 등 사회 곳곳에 노출된 병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으로 부족하다.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하며 도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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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인생응원가 - 스승의 글과 말씀으로 명상한 이야기
정찬주 지음, 정윤경 그림 / 다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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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인 나는 종교의 세계가 굉장히 낯설다. 교회를 다니신 할머니와 함께 자랐지만 할머니가 딱히 종교를 강요하신 적 없고 우리 할머니는 그냥 사람들 만나러 가는 광장처럼 생각하신 것 같다. 나는 심지어 초등학교 시절 교회를 5년은 다닌 것 같다. 청소년 시기엔 친구들이 나를 다시 전도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무조건적인 믿음은 생기지 않았다. 불교는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자신의 수행을 초점에 맞추는 것 같아 좀 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본격 귀의나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은 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로 내려오는 예수, 석가모니, 마더 테레사, 법정스님같은 종교인의 삶은 내가 감히 따라할 수 없지만 존경받아 마땅한 이들이고 전해져 내려오는 그들의 삶과 말에서 내 삶의 미약한 점이나마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곤 한다. 특히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오래전 읽었을 때 느꼈던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 요즘 필요했는데 마침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법정스님의 재가제자인 정찬주 작가가 '마중물 생각'으로 문을 열고 '스님의 말씀과 침묵'으로 말씀을 전달하고 '갈무리 생각'으로 문을 닫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퍼뜩 읽지 않고 천천히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으면 참 좋은 구절이 많다.

적거나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p37

알면서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되새기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 행복은 내가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버리고 비우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되며,베푸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나는 스님의 말씀 중 종교에 관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는 사람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않고 배척하며, 절이든 교회든 거기에 출석하는 것이 믿음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님은 결국 뭘 믿든 알맹이가 제일 중요한 거라고 말씀하셨다. 종파의 울타리안에 갇히면 드넓은 종교의 지평을 내다볼 수 없다.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는 말아야 한다. (...) 지나친 소비는 악덕이다.
p156 157

책에 관한 이야기도 울림이 깊다. 나는 요즘 책을 사유하고 있는가 그냥 얽매여 있는가.

책을 가까이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습니다. (...)
기존의 지식이란 남의 말이요, 남이 주장한 견해일 뿐입니다. 자기 말과 자기 견해를 가지려면 반드시 자기 사유와 자기 체험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p297, 300

가정, 행복, 사랑, 나눔, 비움, 즐거움, 고난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책 한 권을 완성하고 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방향성을 상실했을 때 읽고 위로가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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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6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유혜경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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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북스의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시리즈 철학 파트의 책이다. '정치,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와 같은 저자이며 윤리 시리즈도 같은 저자이다. 정치, 철학, 윤리가 결국은 다 맞닿아 있는 것인지. 저자는 철학이 주 전공인 것 같다. 역시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아들인 아마도르에게 설명하는 친근한 형식을 취하며 전개되는 방식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의 제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이 두 철학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서술한다.

플라톤은 가장 고차원적이며, 정신적이고, 신성한 이데아를 지향한다. 이는 영원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주변, 가장 비천한 것들, 물리적인 측면의 자연, 살고 일어나고 운용하는 모든 것에 대한 관찰에 집중한다.
p70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는 '키노스' 즉, 개라고 불리었는데 정말 개같이(!) 자연적인 모습 본연에 충실하게 자신을 돌보는데 집중하고 살아서 대소변도 그냥 막 아무데나 보고 항아리에서 생활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다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에게 원하는 걸 줄 수 있으니 말하라고 했을 때, 햇볕을 쬐고 있는데 가리니까 좀 비켜달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로마에까지 영향을 미쳐 <사물의 성에 관하여>라는 서사시로 더 유명해진 에피쿠로스의 철학,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를 활용한 세네카, 그리고 세네카의 철학을 받아들이지 못한 제자 네로황제, 노예인 에픽테토스와 아우렐리우스 황제로 대변되는 스토아학파까지 흘러가는 각각의 철학과 철학자들의 세계를 읽어내려가는 것은 흥미롭다.

어지러운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기독교 교리, 신앙과 이성의 양립을 가능하게 했던(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게 했던) 아우구스티누스도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이 말한 선이 곧 하느님인 것이다. 보에티우스도 비슷한 견지를 갖고 있다.

결국 읽다보면 철학도 정치, 전쟁 상황 등에 따라 바뀐다. 모든 것이 함께 엮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읽다보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후대의 많은 철학자들에게 어떤 의미로든 영향을 많이 미쳤다. 그들을 추종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회의주의와 같은 사상도 등장하긴 했지만 베이컨, 홉스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비판하기도 하고 플라톤 이데아적 느낌의 데카르트 관념론은 후대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결국 모든 철학과 사유의 근원은 소크라테스라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이 고매한 철학자에 대해 존경심이 막 생겨났다. 내가 이 책과 더불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후반부에 이르러 소개된, 불안한 개인의 실존을 끊임없이 고뇌했던 키르케고르, 신은 죽었다던 니체, 밀의 역작 <자유론>, 하이데거 등 근대 현대 철학은 다시 더 깊게 공부해 보고싶은 철학자이다. 또한, 데카르트, 러셀, 파스칼, 라이프니츠 등 수학자들은 수학자 이전에 철학자이기도 했다.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절대적이고 반박 불가능한 수학이 철학의 입증과정에서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수학과 철학은 끊임없이 사유해야만 물음의 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닮아 있다. 옛날 철학자들이 진정한 의미의 융합교육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사유의 깊이에 다시 한 번 감탄했고, 제목처럼 아무리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해도 개개인이 오랜 고민의 끝에 도달한 생각의 결론을 간단히 습득할 수는 없음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책은 간단한 책이 아니다.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는게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철학을 깊게 공부해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윤리라는 과목에 포함되어 있지만 철학이라는 과목이 따로 중고등학생들 과목에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실제로 고등학교때 배운 윤리과목 내용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서 이해하는데 수월한 부분이 많았다.
청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삼고 저자가 썼지만, 철학을 개괄적으로 공부해보고싶은 성인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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