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에는 주인공이 베로니카에 대해 쏟는 연민과 선심이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실 사건이라기보단 이 역시 주인공이 혼자 오해 또는 이해하는 거다. 베로니카는 어쩌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행동을 보고도 내 감정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변한걸까, 내 마음이 변한걸까. 어떤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일까, 안다고 믿고 싶은 내 마음일까. 베로니카의 눈물은 자신을 쿠바 엄마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이타심에 대한 감동인 것인지, 그 이타심을 무조건 손에 돈을 쥐어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눈물인지 알듯 모를듯하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는 일 때문에 파리에서 연인들의 키스 사진을 찍던 재이는 동성 커플의 키스를 몰래 찍다 혼쭐을 당한다. 전남편 진봉을 만나게 된 곳도 이곳 파리였는데, 세바스티앙이라는 프랑스어 과외 알바 교사를 더 사랑했었다. 하지만 멋지고 늘씬한 세바스티앙과 달리 작고 초라한 모습의 동양인 여자라고 생각되는 본인의 모습을 깨닫고 세바스티앙 옆에 있던 한국인 진봉과 결혼했다. 그러나 진봉의 외도를 확인한 후 충격에 휩싸여 이혼하게 된다. 배우자의 외도, 그리고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 재이의 감정에서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서 줘버리겠다는 말이 감히 이해가 되었다. 낭만적 삶이란 무엇일까. 낭만이란 왠지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것 같다는 허무주의가 내게도 온 몸에 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던 순간>은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해서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듯한 섬광같은 아름다운 순간이 공유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결국 개인의 파라다이스를 구성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고, 누군가를 완벽하게 믿으면 안된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진실같기도 하다. 믿었던 남편이 잠깐 만났던(실제로 잤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그냥 연민인지도 모를) 쿠바의 어린 여인에게 느꼈던 파라다이스의 순간을 아내인 수현은 죽은 남편 민수를 뒤로 하고 혼자 떠난 여행에서 느꼈다. 그 참담하면서도 찬란한, 오묘한 기분이 잘 표현되어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한 방송작가가 남자 연예인과의 하룻밤으로 인해 아기가 생기게 되고 오래된 연인에 대한 미안함, 자신이 더럽혀졌다는 죄책감 등에 휩싸여 미투를 선언할 것인지 말것인지 고뇌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플로리다라는 낯선 곳으로의 예기치 않은 여행, 그리고 여행에도 역시나 돈이 필요하다는 쓰디쓴 진실과 마주하게 되며 자신을 더럽힌 남자 연예인이 송금해준 천만원의 돈이 이러한 상황에 겹쳐진다. 방송가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까 정말...
단체 여행에 대한 단상이 절로 떠오르게 되는 <카이로스의 머리카락>은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뒷담화가 참 현실스러운 소설이다. 여러 개의 명함, 촌스러운 이름을 덮기 위한 필명, 결국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왔던 중장년에게 묵직한 삶을 살아온 한 남자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는 대비된다. 사진 속에 남겨진 아름다운 기억 뒤에는 그 컷 하나를 아름답게 남기기 위한 수많은 희노애락이 있었으리라. 그리스 신화의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앞머리는 길고 뒤는 휑하다고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데 기회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기에 뒷머리는 휑하다고 한다. 주인공 부부 특히 아내 시점에서의 뒷담화로 시작된 소설에서 갑작스럽게 말미에 등장하는, 인생의 기회를 잡은 한 남자의 성공 스토리가 쌩뚱맞긴 했다.
인생 허무주의의 절정이 느껴지는 소설이 바로 마지막에 수록된 <내가 누구인지 묻지마>이다. 유일하게 타국이 등장하지 않는 단편소설이면서 신문기사로만 접하는 안타까운 이들의 단면들이 살짝 드러나는 소설이다. 마지막에 이 소설이 배치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답답한 마음으로 소설을 덮었다. 남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과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때 오는 괴리감이 중간중간 엄습한다. 결국 돈이 문제인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 소설들은 쿠바나 플로리다, 발칸반도 같은 여행하기 먼 나라를 대리 여행하는 느낌을 기본으로 크게 두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우리 장착한 자본주의 프레임에 대한 재고찰이다. 우린 이미 모든 걸 자본주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행복도, 사람도, 돈이라는 잣대에서 벗어날 수 없어보인다. 베로니카가 보인 눈물에서도 그렇고, 돈이 없어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모녀도 그렇다. 있는 척, 고상한 척 하며 자신의 기준을 잣대로 남을 재고 뒷담화하기 바쁜 카이로사의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마지막 단편소설인 <내가 누구인지 묻지마>에서는 극명하게 표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베로니카가 전한 문장들이 다소 상투적일 수 있지만 되새겨지는 것이 아닐까. 둘째, 타인과의 관계와 삶의 의미에 대한 연관성 고찰이다. 인간은 사회적일 수 밖에 없고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결국 삶을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행복의 의미는 아무리 가까운 타인이라 할지라도 타인에게서 얻을 수 없다. 누가 내 삶의 주체가 될 것인가. 자신이 주체가 된 삶을 살아가야 타인도 있고 뒤돌아보는 여유도 생길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삶에서 오는 허무주의를 경계해야함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