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락 UNLOCK - 내 안의 가능성을 깨우는 6가지 법칙
조 볼러 지음, 이경식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그리고 아이들을 보면서도 한 인간이 가진 잠재력을 얼마나 될까,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여러 번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어그러졌던 경험도 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뜻밖의 능력이 발휘되었던 순간도 있다. 내가 가진 잠재력을 백프로 아니 그 이상 발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하면 주어진 일을 잘 성취할 수 있을까. 한 인간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열쇠를 풀어내는 책, 바로 <언락>이다.

나는 수학 머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고 믿어왔으며, 나는 그 중 수학 머리가 없는 사람에 해당하고 그걸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실제로 아주 머리가 좋은 대학 동기들과 내가 수학 문제를 풀거나 아이디어를 얻는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차이난다는 것을 알았고 정말 힘들게 그 사실을 인정했으며 다행스럽게도 수학을 포기는 하지 않았다. 그들이 1시간 걸려 도달할 양을 3시간이 걸려 도달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양적인 시간을 투자한 결과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단, 그걸 인정한 후 노력하면 언젠가는 도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왔다. 그런데 책의 서문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제시했다.

사람의 능력은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며, 어떤 학생이 특정 과목에서 최고 점수를 받는 것도 선대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덕이 아니다. 뇌는 고정되어 있고, 특정 분야에 소질이 없을 수 있다는 견해는 과학적으로 틀린 것이다. 뇌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과 우리의 인생을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믿음을 떨쳐내고, 뇌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응력이 높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어떤 것을 배울 때마다 우리 뇌가 새롭게 조직된다는 사실은 최근 10년 동안 가장 중요하다고 꼽을 만한 신경가소성, 즉 뇌의 유연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 확립되었다.

p11

이 서문은 내가 그간 생각했던 뇌와 유전자와 완전히 다른 결론이었다. 이 책에서는 여섯 가지 법칙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법칙1. 타고난 재능을 믿지 마라!

법칙 1에서는 신경가소성이라 불리는 뇌의 작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수준별 수업의 위험성도 언급한다. 우리 나라에서 아직도 일부 학교에서 자행되는 수준별 수업은 학생을 A, B, C로 나누고 그들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하자는 취지로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읽었던 <수준별 집단편성의 비판적 이해>라는 책에서도 언급되었듯, 이러한 수업은 최상위권 일부를 제외하고는 효과가 없었으며 오히려 학생들에게 낮은 정의적 태도만 길러줄 뿐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부분도 그와 같다. C반에 속한 아이가 A반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미 C반에 들어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의 뇌에 제한을 가하기 때문인 것이다. 뇌가 변하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학습 형태를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1장에서는 특히 수학 과목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 역시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 잘못된 관념을 심어준 것은 아닌지 반성할 수 있었다.



법칙2. 실패를 사랑하라

틀릴수록 뇌가 성장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신선했다. 성공의 경험이 뇌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틀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학생이 틀리지 않도록 학습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오류를 발견하고 여기서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학습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 틀리고 실패할 때가 뇌가 성장하는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도전적인 문제를 제시해주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칙3.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어라

생각을 바꾸면 신체와 뇌가 바뀐다는 사실. 생각이 뇌를 결정한다는 것은 뇌가 그만큼 변동성이 크고 유동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음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것. 그렇다면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린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믿으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성장 마인드셋을 장착하고 가능하다고 믿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인 과학적 연구자료와 함께 제시하니 더욱 믿음이 갔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이러한 믿음에 입각해서 지도할 때와 고정 마인드셋을 장착한 후 지도할 때 그 학생의 역량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법칙4. 다양한 방법의 솔루션을 찾아라

사실 말은 쉽지만 어떻게 다양한 방법의 솔루션을 구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 손가락과 관련하여 대학생 손가락 인지 수준으로 계산 시험 점수를 예측하고 악기 연주와 수학 성취도 사이의 상관성이 오랫동안 입증되었다는 사실 등은 상당히 신선했다. 이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다차원적 접근법을 알려주고 있다. 어떤 질문을 교사가 던져야 하는지 예시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런 방법을 통한 학습이 비약적 성장을 이끈다는 것이다.



법칙5. 문제 해결을 서두르지 마라

빨리빨리가 입에 익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마저도 얼마나 빠른 시간안에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시험이니만큼 시간과 속도는 학습에서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빠른 생각이 능력이 척도는 아니며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학습 능력을 빠르게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빨리빨리 스타일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가중시키며 반복연습이 창의성을 죽인다고 얘기한다. 이 책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수학이니 만큼 나는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시간을 재놓고 문제를 풀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수능이든 내신이든 주어진 시간안에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살 때 읽기를 배우고 네 살 때 바흐를 연주하며 여섯 살 때 미적분 문제를 척척 풀어서 영재 대우를 받던 미국 학생들 가운데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 인물은 거의 없다"는 문장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우리는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법칙6.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연결하라

타인과 경험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사실은 나 역시 세미나나 토론 학습 등을 통해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이러한 경험이 이루어지도록 수업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 나라같이 주어진 단위 수안에 주어진 내용을 모두 학습해야하는 빠듯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내 경험을 공유하고 열린 마음과 자세로 협력 학습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이 학생을 교육하는 입장에 있는 모든 학부모, 교사, 교수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수학에 대한 유전자 결정론적 관점이 우위에 있다는 사시을 알게 되었고 수학 학습에 대한 어려움에 공감하였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교육을 하다보면 고정 마인드셋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기억하고 교육에 임한다면 한 명의 학생일지라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강렬한 시작으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쉼표 하나, 번역된 글자 하나하나에 원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전달되기도 하고 조금 의미가 변형되기도 한다. 영어를 우리 말로 번역했을 때 그 의미가 어색해져버리는 것처럼. 이 책은 그런 부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번역을 다시 했고,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직역 위주의 번역이라 원작을 번역 없이 읽을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를 양로원에 맡긴 후 양로원에서 알려온 엄마의 죽음.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연애를 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듯 하지만 주인공 뫼르소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그가 이웃 레몽을 만나게 되고 그 우연이 우연한 살인으로 이어졌다기엔, 소설에서 주는 냉정하고 차가우며 스산한 느낌의 뫼르소와 배경들이 심상치 않았다. 레몽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만나 또 다른 우연을 만나게 되었어도 사고를 쳤을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엄마의 부재로부터 이어진 케케묵은 감정의 터뜨림이었는지 그에게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살인은 어쨌든 뫼르소를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가 어머니를 생각하고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부분, 삶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죽음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소설은 아주 건조하게 이어진다. 그 건조함이 카뮈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이방인>은 실존주의 문학으로 분류되며 해석하는 사람에 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삶의 실존에 대한 의미 부여, 혹은 반대로 그러한 실존 자체에 대한 허무주의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이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끔찍한 살인의 이면에는 분노로 점철된 인간의 모습, 혹은 또다른 인간의 부류로 분류되는 사이코패스적 인간 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삶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실존 자체의 허무주의에 빠진(사실 살인에 대해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는 것도 우습고 또 하나의 변명을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에서 비롯된 살인과 점점 그러한 사건들에 무감각해져가는 현대의 모습을 알베르 카뮈가 이미 예견하고 <이방인>의 뫼르소로 탄생시킨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소설의 모습은 현대의 일부와 닮아 있다.

마지막 단락은 죽음의 앞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듯한 뫼르소의 모습으로 끝을 맺으며 묘한 여운을 띄운다. 죽음 앞에서 비로소 세상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자기 자신을 열고, 형제처럼 느꼈고, 행복했었으며, 여전히 행복함을 느낀다는 문구가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그래서 자신의 사형 집행이 있는 그날 거기에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자신을 맞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에서 한편으로는 고독과 무관심이 낳은 인간의 외로움, 그리고 감정의 부재가 한 인간을 파멸로 이끌었다고 생각되어 차분한 마지막 단락이 더 저릿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역자노트 부분에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이방인 깊이 읽기 부록은 단순히 소설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원작자 알베르 카뮈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고 번역하려는 번역자의 노고가 느껴진다. 가끔 번역이 너무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원작자의 소설 자체가 어려운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은데 이번 책은 번역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이 읽으면서 느껴졌다.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으로 이 소설을 이해해도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 첫째는 자기 전마다 자꾸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이야기를 해줘야 자기가 잘 것 같다면서 말이다. 고민스러운 매일 밤, 이야깃거리가 떨어져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이어령 선생은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고 커가는 과정, 그 순간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지 저력이 대단함을 느낀다.

목차 이름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태명고개-배내고개-출산고개-삼신고개-기저귀고개-어부바고개-옹알이고개-돌잡이고개-세살고개-나들이고개-호미고개-이야기고개까지. 아이를 낳는다는 그 힘든 순간의 고개를 넘으면 또 키우는 매순간의 역경의 고개들이 기다리고 있다. 분명 우리 나라의 전통 육아에는 서양과는 다른 한국인만의 지점이 있는 듯하다. 그 출산, 육아의 순간의 고개들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풀어놓은 이야기가 이 책이다.

아이를 갖고 태명을 지어주며, 작은 생명에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하나의 행위를 가지고도 김춘수의 <꽃>이나 김소월의 <초혼>, 그리고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가 송아지에게 이름을 붙이는 장면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어령 작가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느껴지며 예를 들어 출산 고개에 대한 이야기에도 고전 문헌, 성경, 의학적 내용 등 다양한 문헌과 참고 자료들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생일날이 왜 귀빠진 날로 불리는지, 삼신 고개에서 몽고반점에 대한 이야기들, 오줌싸개가 왜 키를 쓰고 소금을 얻어와야 했는지, 최근 유행하는 스와들업 등 스와들링에 대한 내용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이 특히 궁금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새삼 언어의 힘에 대해서도 느낀다. 한국의 의성, 의태어는 콜콜, 쿨쿨처럼 양모음 대 음모음의 조화로 구성되어 있다든가, 아이들의 언어 시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내온 인간의 발달 단계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의성어, 의태어가 만들어지게된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다.

한국인의 탄생과 육아,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녹아 있는 이 책은 이어령 작가가 정말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숙고해서 엮어낸 책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또한 수많은 탄생 중 한국인에 초점을 맞춰 써내려가 우리 민족의 긍지도 느낄 수 있다. 다른 민족과 차별화된 우리만의 육아특색(이를테며 포대기나, 오줌 싼 후 키 쓰기 등)을 읽어내려가며 한 아이가 탄생하고 자라는 매 순간의 이야기가 얼마나 경이롭고 다채로운지 느낄 수 있었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지식 자체가 넓어진다. 한 주제로 방대한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저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중간중간 '샛길'로 표현된 이야기들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주 샛길로 빠지게 되는데 그게 어쩌다보면 더 재미난 경우도 많지 않은가. 스와들링을 비판한 루소의 에밀 읽기나, 할로우 부부의 원숭이 실험, 일본 자장가 고모리 등 꽤나 흥미로운 샛길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나의 늘어난 배경지식만큼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도 많을텐데. 딸들이 조금 더 크면 너희들이 이렇게 탄생했노라고 이 책 속의 이야기를 덧보태도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 번의 산책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한 사색
에디스 홀 지음, 박세연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철학은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철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으로부터 쓸모를 찾는 것이 철학자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 삶에 쓸모 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철학은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쓸모란 물질적 대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쓸모를 의미한다. 나의 정신적 속박과 고뇌, 번뇌로부터의 해방에 철학책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특히 서양철학에 있어서 많은 철학가들의 사상을 접하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플라톤에 이은 서양 철학의 선구자이며, 행복, 중용 등 굵직한 단어들로 표현가능한 대체 불가 철학자이다. 그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로 '행복'을 꼽을 수 있겠는데,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특히 행복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는 내 정신적 쓸모에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인간의 삶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이며, 행복이란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를 발견하고 최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행복에 대한 고대의 철학자의 견해가 현대인의 행복에 대한 생각과 매우 일치한다는 것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 소크라테스와 달리 현실에 입각한 철학론을 펼쳤으며 선한 의지의 토대 위에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삶이 행복의 길임을 얘기한다.
그에 의하면 살아 있는 것은 잠재력(디나미스)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성숙한 형태로 성장이 가능하다. 잠재력은 질료인, 작용인, 형상인, 목적인 중 목적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것은 존재의 근거이자 인간 스스로 통제가능한 동인이다. 특히, 인간만이 가진 이성적 잠재력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왜 원하는지 확인하고 이를 실현(에네르게이아)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행복으로 보았다. 또한, 집단지성을 중시하며 교육을 통해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잠재력의 연장선상에서 내 삶은 내가 결정하고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는 것에서 행복이 온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개인의 주체적 인식을 엿볼 수 있으며 오늘날의 행복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하지 않음으로써도 부당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는 폭력에서 친구의 피해를 목격하고도 모른 체하는 친구, 아동학대를 알리지 않는 이웃, 가난한 이들을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부자의 방임이 얼마나 큰 도덕적 결함에서 비롯되는지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행위뿐 아니라 외면에 관해 중시하는 것은, 사회적 존경과 인정을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
p179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며 우정에도 잦은 만남과 충분한 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우정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는데, 효용 우정, 즐거움에 기반을 둔 우정, 그리고 행복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리고 친척이 아닌 노력하는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상호적인 사랑으로 나누었으며 마지막 우정의 형태를 가장 최고로 보았다. 또한, 나의 변함없는 자질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내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말자고 얘기한다.
그는 특히 동물에 대한 연구에 큰 관심을 보이며 각 동물 특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나아가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모색하며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끊임 없이 얘기한다. 모두는 전체의 선함을 공유한다는 상호의존성을 말하며 도덕적 경제학의 개념으로부터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말한다.
여가나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특히 충분한 여가는 잠재력 발휘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행복의 길이 된다. 또한 죽음에 대한 성찰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되짚어보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대에 살았어도 전혀 위화감없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사상은 고전적이면서도 진보적이며 현대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는 철학이 왜 필요한지 알려준다. 철학은 결국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아내기 위한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힘의 역전 - Turn the Power Around 힘의 역전 1
정혜승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각 분야의 전문가 8인이 모여 8가지 주제로 시대의 질문을 살펴보는 책이다. 지난 12월, 대화와 토론을 통해 공론장을 만들고 주요 의제를 점검하는 형태의 메디치포럼이 열렸고 이 포럼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 <힘의 역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책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 시간상 거리상 듣기 힘든 전문가들의 각 분야에 대한 얘기들과 현안들이 오가는 것을 책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느끼면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시선을 배웠고 내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첫 주제는 디스커션(숙의)다. 우리는 디스커션을 토론으로 더 익숙하게 번역하고 있다. 토론 문화가 자리잡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대를 제압하고야 말겠다는 논쟁으로 토론을 잘못 생각하는 것 때문이라는 것, 즉 토론은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나와 생각이 다른지 고민하고 생각을 다듬는 자리라고 했던 최재천 교수의 말이 아주 인상 깊다. 토론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소그룹으로 쪼개서 토론 후 다시 모여 얘기하는 것도 방법. 결국 갈등과 분열 대신 사회적 소통을 통해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섭형 인재가 필요한 시점이며 모더레이터나 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사실 토론의 '토'에도 싸움의 의미가 있으므로 디스커션은 숙의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숙의가 늘수록 공동체의 저력이 쌓일 것이고 우리 사회는 앞으로 분열과 싸움을 멈추고 그런 성숙한 숙의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천관율 기자의 민주주의 역전 관련 글에서는 어떤 경제학자가 말한 '트릴레마', 즉 전면적 세계화, 국가 주권,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뤄내긴 어렵다는 것을 되새겼다. 현재 우리나라는 2020년 총선을 통해 리얼라인먼트(realignment)라고 정치 체제를 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암흑 유권자(기자는 고졸 유권자 30%로 예측하는 듯)를 불러내는 것, 그들 블록을 호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정치에 대해 전체적으로 꿰뚫는 힘을 가진 글을 보는 듯했다.

홍성국 대표의 수축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신자유주의에서 국가중심자본주의로 이데올로기를 전향한 듯한 미국을 비롯하여 향후 우리 나라가 나아가야 할 경제적 방향에 대해 심도있게 고찰하고 있다. 세계의 흐름을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수축사회 시류가 우리 나라에 미칠 영향과 4차 산업 육성의 필요성 등을 광범위한 시각에서 제시하고 있다.

헤이조이스 이나리 대표는 여성이 남성처럼 당당하게 일하고 자기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업을 운영하며 여러 데이터를 제시하여 여성이 아직 차별받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녹색어머니회가 없어지면 좋겠다. 어머니들은 그 시간에 당연히 집에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케케묵은 생각들이 이어져온 이름이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기업 CEO여서 더 공감하며 읽었던 챕터고 내가 우리 딸들의 학교에 녹색어머니로 참여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할 수 밖에 없는 구조는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유명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피의자의 인권이 중시되는 현 상태에서 피해자의 인권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함을 얘기하며 성문제, 특히 여성을 타겟으로 한 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웠다. 힘의 역전이라는 제목에 딱 맞는 챕터다.

김경수 도지사의 경남권 메가시티 플랫폼 문제는 하이닉스의 용인 부지 선택을 계기로 하여 출생율, 지역 발전, 지역 인재 양성을 거쳐 교육, 교사 양성에까지 논의를 넓히고 있다. 지방자치, 지방분권의 이야기는 지방에 사는 내가 몹시 공감한 부분이다. 친척이며 친구며 전부 수도권으로 가고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들, 혹은 결혼한 전업친구들만이 외로이 이 곳을 지키고 있다. 부울경이 더더 발전하면 좋겠다.

사실 사법농단, 사법개혁에 대해 관심이 많이 없었다. 류영재 판사의 강의를 읽고 우리 나라의 사법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며 나와 괴리된 그들만의 세상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분업으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벌어지는 '사법농단'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시도를 발견하고 사표를 던진 이탄희 판사로부터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에 대한 재판거래 의혹까지 많은 사건들이 엮여 있다. 정치적인 문제까지 확대될 수 있어 깊은 판단이 필요한 챕터다.

신수정 부사장의 리더십 전환 이야기는 실패를 동력으로 삼는 성장 마인드셋, 일의 가치를 따라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목적 중심 마인드셋,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라는 외향적 마인드셋을 가진 리더십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요지로 균형있는 리더십을 제안한다.

이러한 생산적 포럼이 많이 진행되고, 시간상 참석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이런 강연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얕은 지식에 구멍을 메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